캐나다서 교통사고 목격 계기
'B급 감성'으로 삶과 죽음 묘사
'어떻게 하면 잘 죽을까' 고민 담아
38세 중년 둘리 만화책 낼 계획
‘아기공룡 둘리’는 한국인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알고 있는 ‘국민 만화’다. 1980년대 둘리를 보고 자란 어린이가 성장해 부모가 될 만큼 세대를 아우르는 작품이기도 하다. 둘리를 그린 김수정 작가(71·사진) 역시 오랜 세월 ‘둘리 아빠’로 통했다.
그런 그가 20년 만에 신작을 냈다. 제목은 언뜻 그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사망유희(四亡遊)’로 정했다. 대놓고 B급 감성을 넣었다고 밝히면서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유머와 함께 풀어냈다.
무거운 주제로 신작을 내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김 작가는 “70년을 살다 보니 죽음과 친근해지는 시간이 왔다”며 “이번 작품을 통해 어떻게 하면 ‘잘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삶과 죽음’을 깊게 고민하게 된 계기로 3년 전 캐나다 밴쿠버에서 있었던 교통사고를 꼽았다. 당시 밴쿠버 외곽도로를 지나가던 김 작가는 가로수를 들이받아 사경을 헤매고 있던 운전자를 목격했다. 너무 놀란 바람에 도와주지 못하고 지나갔지만 양심의 가책은 계속 남아 있었다.
김 작가는 “당시엔 알 수 없는 무서움 탓에 현장을 빨리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며 “그때 내가 느낀 ‘죽음 앞에 선 나약함’을 탓하면서 이번 작품을 그리게 됐다”고 말했다.
‘사망유희’는 이렇듯 생사(生死)를 다루는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었다. 교통사고로 죽은 남자가 저승에서 원수들을 만나는 ‘어둠의 느와르’, 죽은 지 오래돼 자신의 원한조차 잊은 귀신들을 다룬 ‘귀신 되기 잘했다’ 등 네 가지 이야기를 담았다. 주인공들은 죽어서 몸에 칼이 꽂혀 있거나,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걸쭉한 욕설을 실컷 퍼붓는다. 지난해 논란이 된 ‘아동학대’를 다루는 등 사회풍자도 곳곳에 넣었다. 블랙코미디에 가까웠던 초창기 ‘아기공룡 둘리’의 맛을 되살린 것이다. ‘아동만화’라는 대중의 인식 때문에 그동안 자제했던 ‘표현의 자유’를 거리낌 없이 풀었다는 게 김 작가의 설명이다.
그는 “스스로 제 인생을 ‘B급’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만화도 B급으로 자유롭게 그리려 했다”며 “만화를 그려오면서 짊어진 심의라는 짐을 내려놓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김 작가가 탄생시킨 둘리는 올해로 38살이 됐다. 현실 나이로 중년에 접어들었지만 둘리는 최근 10~20대 젊은 층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둘리를 다룬 패러디 만화가 온라인에서 유명해진 덕분이다. 김 작가 역시 이 만화를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는 “최근엔 유튜브를 통해서도 둘리 패러디가 쏟아지고 있다”며 “패러디를 통해 새로운 문화가 확대 재생산되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고, 저 역시 매우 재밌게 봤다”고 말했다.
20년 만에 만화가 활동을 재개한 만큼 김 작가는 앞으로 내고 싶은 책도 많다. 우선 둘리를 소재로 한 만화책부터 출판할 계획이다. 그는 “2013년 무산된 둘리 장편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만화를 그리고 있다”며 “이후에는 제가 쓴 소설 ‘모두 어디로 갔을까’를 만화책으로 낼 것”이라고 말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