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오래 살면 위험"이 일깨운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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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뒤 2명이 노인 1명 부양"
인구감소·고령화 심각함 일깨운
"이래서 오래 사는 건 위험"
시니어는 '짐' 아닌 '국가자산'
발상 대전환과 제도 혁신해야
이학영 논설고문
인구감소·고령화 심각함 일깨운
"이래서 오래 사는 건 위험"
시니어는 '짐' 아닌 '국가자산'
발상 대전환과 제도 혁신해야
이학영 논설고문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64)은 정보기술(IT)업계에서 ‘투자 천재’로 불린다. 번뜩이는 통찰력으로 될성부른 신생 기업들을 찾아내고 거액을 투자해 도약을 이끌었다. 2000년에 창업 초기였던 중국 알리바바의 마윈을 단 5분간 면담한 뒤 지분 25%를 투자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 사람이 큰 오판(誤判)으로 연거푸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사업 투자 얘기가 아니다. 50대 중반 시절 “나이 들면 일을 그만둬야 한다”며 60세 은퇴를 공언했다가 주워 담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60세 생일을 1년 앞둔 2016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좀 더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며 후계자로 영입한 부사장을 전격 해고하기까지 했다. “5~10년 더 일하기 위해서”라고 하더니 그 말을 또 뒤집었다. 지난 6월 주주총회에서 “최근 의학이 발전했고 일을 향한 의욕이 남아 있기 때문에 70대가 돼서도 계속해서 남을 수 있다”고 했다.
“늙으면 용퇴”를 호기롭게 외쳤다가 뒤집은 사람이 손정의만은 아니다. 일본 패션업체 유니클로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72)도 54세였던 2003년 “60~65세 사이에 은퇴하고 그 이후에는 투자자로서 살겠다”고 하더니 7년 뒤 “은퇴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두 아들에게 경영을 맡길 생각은 없다”며 ‘종신경영 선언’으로 말을 바꿨다. 나이에 민감한 동양과 달리 능력주의 사고방식이 퍼져 있는 미국에서는 80세를 넘긴 경영자가 수두룩하다.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시크릿을 보유한 리미티드브랜드그룹의 레슬리 웩스너 회장(84)은 “최고경영자(CEO)가 때가 되면 물러나야 한다는 통념은 바보 같은 생각”이라며 은퇴 시기를 물은 투자자를 면박했다.
얼마 전 101세 철학자의 현 정부 비판 발언을 놓고 친여(親與) 성향 변호사가 “이래서 오래 사는 게 위험하다”는 야유를 퍼부어 한동안 소란을 빚었다. ‘패륜 발언’ 논란이 일었지만 당사자인 철학자는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넘겼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의 변호사가 “적정 수명은 80세가 한도”라는 취지로 내놓은 후속 발언은 여러모로 부적절했다. 아무리 전문가가 내팽개쳐지고 선무당이 판치는 시대라고 해도,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법률기술자가 함부로 내뱉을 말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의 발언에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의도했건 아니건, 우리 사회가 더는 외면해서는 안 될 화두(話頭)를 일깨워줬기 때문이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출생률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노인 1인당 부양 생산인구가 2014년 5.26명에서 2036년 1.96명으로 낮아질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두 명의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65세 이상 고령자 한 명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임박했다는 얘기다.
인구 감소 속 고령화는 개인은 물론 국가재정에도 엄청난 타격을 준다. 세금 내는 사람이 줄어드는데 재정으로 챙겨줘야 할 노인이 늘어나면 감당이 쉽지 않다. “북한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게 저출산·고령화”(전재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5년 전 55세에서 60세로 늦춰진 직장 정년을 65세 이상으로 더 미뤄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배경이다. 그러나 정년연장은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청년세대의 취업 관문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한 세대 간 다툼이 불가피하다. 정년 폐지를 포함한 고용유연성 강화가 돌파구가 될 수 있지만, 정년제도가 없는 나라는 미국과 영국 등 일부에 불과하다. 일자리 탈락자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주는 사회안전망 구축이 쉽지 않아서다. 기존 수혜자들을 달래가며 복지제도를 비롯한 재정지출 구조 전반을 재편하는 일은 난제 중의 난제지만, 한국은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년 대통령 선거 후보들에게 필요한 게 이 문제에 대한 온전한 인식이다. 당장의 표에 눈이 멀어 이것저것 더 퍼주겠다는 타령을 늘어놓을 때가 아니다. 풍전등화의 나라를 이끌 지도자라면 국정의 큰 그림을 제대로 그리고, 정책 우선순위를 확실하게 다잡아야 한다. 건강하고 능력도 있는 고령자들을 나라의 ‘짐(liability)’이 아니라 ‘자산(asset)’으로 활용하는 정치가로서의 안목과 발상의 대전환, 제도 혁신이 시급하다.
“늙으면 용퇴”를 호기롭게 외쳤다가 뒤집은 사람이 손정의만은 아니다. 일본 패션업체 유니클로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72)도 54세였던 2003년 “60~65세 사이에 은퇴하고 그 이후에는 투자자로서 살겠다”고 하더니 7년 뒤 “은퇴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두 아들에게 경영을 맡길 생각은 없다”며 ‘종신경영 선언’으로 말을 바꿨다. 나이에 민감한 동양과 달리 능력주의 사고방식이 퍼져 있는 미국에서는 80세를 넘긴 경영자가 수두룩하다.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시크릿을 보유한 리미티드브랜드그룹의 레슬리 웩스너 회장(84)은 “최고경영자(CEO)가 때가 되면 물러나야 한다는 통념은 바보 같은 생각”이라며 은퇴 시기를 물은 투자자를 면박했다.
얼마 전 101세 철학자의 현 정부 비판 발언을 놓고 친여(親與) 성향 변호사가 “이래서 오래 사는 게 위험하다”는 야유를 퍼부어 한동안 소란을 빚었다. ‘패륜 발언’ 논란이 일었지만 당사자인 철학자는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넘겼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의 변호사가 “적정 수명은 80세가 한도”라는 취지로 내놓은 후속 발언은 여러모로 부적절했다. 아무리 전문가가 내팽개쳐지고 선무당이 판치는 시대라고 해도,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법률기술자가 함부로 내뱉을 말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의 발언에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의도했건 아니건, 우리 사회가 더는 외면해서는 안 될 화두(話頭)를 일깨워줬기 때문이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출생률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노인 1인당 부양 생산인구가 2014년 5.26명에서 2036년 1.96명으로 낮아질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두 명의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65세 이상 고령자 한 명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임박했다는 얘기다.
인구 감소 속 고령화는 개인은 물론 국가재정에도 엄청난 타격을 준다. 세금 내는 사람이 줄어드는데 재정으로 챙겨줘야 할 노인이 늘어나면 감당이 쉽지 않다. “북한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게 저출산·고령화”(전재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5년 전 55세에서 60세로 늦춰진 직장 정년을 65세 이상으로 더 미뤄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배경이다. 그러나 정년연장은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청년세대의 취업 관문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한 세대 간 다툼이 불가피하다. 정년 폐지를 포함한 고용유연성 강화가 돌파구가 될 수 있지만, 정년제도가 없는 나라는 미국과 영국 등 일부에 불과하다. 일자리 탈락자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주는 사회안전망 구축이 쉽지 않아서다. 기존 수혜자들을 달래가며 복지제도를 비롯한 재정지출 구조 전반을 재편하는 일은 난제 중의 난제지만, 한국은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년 대통령 선거 후보들에게 필요한 게 이 문제에 대한 온전한 인식이다. 당장의 표에 눈이 멀어 이것저것 더 퍼주겠다는 타령을 늘어놓을 때가 아니다. 풍전등화의 나라를 이끌 지도자라면 국정의 큰 그림을 제대로 그리고, 정책 우선순위를 확실하게 다잡아야 한다. 건강하고 능력도 있는 고령자들을 나라의 ‘짐(liability)’이 아니라 ‘자산(asset)’으로 활용하는 정치가로서의 안목과 발상의 대전환, 제도 혁신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