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포스코 1고로'의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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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포스코 ‘포항 1고로(高爐·용광로)’. 태어난 날은 1973년 6월 8일이야. 그날 오전 10시30분, 포스코 설립자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이 상공부 장관과 함께 내 몸에 첫 불을 지폈지. 이후 48년째 세계 최장수로 쇳물을 만들고 있어.
고로가 쇳물을 만들 만큼 뜨거워지려면 섭씨 1200도까지 몸을 달궈야 하는데 그게 21시간이나 걸려. 첫날 밤 사람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지. 다음날 오전 7시30분, 내가 벌겋게 달궈진 입을 열자 펑 하는 굉음이 울렸고 오렌지색 섬광이 허공으로 치솟았어. 드디어 용암처럼 뜨거운 쇳물이 흘러나왔지.
모두들 만세를 외치며 눈물을 흘렸어. 그러나 박 회장 얼굴은 굳어 있었지. 모두가 불가능하다던 제철소 건설에 성공했고 온갖 산고 끝에 출산의 기쁨을 맛봐야 하는 순간이지만 이 제품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 외국에 팔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야.
허허벌판에 제철소와 고로를 동시에 건설하는 과정부터 난관의 연속이었지. 모든 나라와 세계은행이 “무모하다”며 지원을 거부하는 바람에 대일(對日) 청구권 자금을 끌어다 써야 했어. 이에 반대하는 일본 지도자들에게 박 회장은 “북한의 붉은 깃발이 부산에 휘날리면 일본도 위험하다”는 ‘부산적기론(釜山赤旗論)’을 펼치며 설득했지.
그만큼 비장했기에 “조상의 핏값으로 짓는 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우리 모두 ‘우향우’ 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어야 한다”고 했어. 다행히 첫해 매출 1억달러에 순이익 1200만달러를 달성해 가동 첫해부터 이익을 낸 유일한 제철소가 됐지. 전 세계가 ‘영일만의 기적’이라고 칭송했고 한국에 ‘산업 철기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어.
내가 달군 쇳물로 국산 자동차와 배를 만들고 건설업과 기계공업까지 발전할 수 있었지. 그동안 내가 생산한 쇳물은 5000만t이 넘어. 타이타닉호를 1000척 이상 건조할 수 있는 양이지. 보통 고로의 수명이 15년인데 내가 오래 건강할 수 있었던 건 포스코의 탄탄한 기술과 철저한 관리 덕분이야.
올해 말에는 나도 은퇴해. 종풍(終風·고로가 수명을 다하고 쇳물 생산을 마치는 과정)식이 끝나면 철강역사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날 거야. ‘제철보국’의 상징으로 미래의 꿈을 키우는 젊은이들과 함께 다음 역사의 장을 펼친다면 이 또한 가슴 뜨거운 일이지 뭔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고로가 쇳물을 만들 만큼 뜨거워지려면 섭씨 1200도까지 몸을 달궈야 하는데 그게 21시간이나 걸려. 첫날 밤 사람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지. 다음날 오전 7시30분, 내가 벌겋게 달궈진 입을 열자 펑 하는 굉음이 울렸고 오렌지색 섬광이 허공으로 치솟았어. 드디어 용암처럼 뜨거운 쇳물이 흘러나왔지.
모두들 만세를 외치며 눈물을 흘렸어. 그러나 박 회장 얼굴은 굳어 있었지. 모두가 불가능하다던 제철소 건설에 성공했고 온갖 산고 끝에 출산의 기쁨을 맛봐야 하는 순간이지만 이 제품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 외국에 팔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야.
허허벌판에 제철소와 고로를 동시에 건설하는 과정부터 난관의 연속이었지. 모든 나라와 세계은행이 “무모하다”며 지원을 거부하는 바람에 대일(對日) 청구권 자금을 끌어다 써야 했어. 이에 반대하는 일본 지도자들에게 박 회장은 “북한의 붉은 깃발이 부산에 휘날리면 일본도 위험하다”는 ‘부산적기론(釜山赤旗論)’을 펼치며 설득했지.
그만큼 비장했기에 “조상의 핏값으로 짓는 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우리 모두 ‘우향우’ 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어야 한다”고 했어. 다행히 첫해 매출 1억달러에 순이익 1200만달러를 달성해 가동 첫해부터 이익을 낸 유일한 제철소가 됐지. 전 세계가 ‘영일만의 기적’이라고 칭송했고 한국에 ‘산업 철기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어.
내가 달군 쇳물로 국산 자동차와 배를 만들고 건설업과 기계공업까지 발전할 수 있었지. 그동안 내가 생산한 쇳물은 5000만t이 넘어. 타이타닉호를 1000척 이상 건조할 수 있는 양이지. 보통 고로의 수명이 15년인데 내가 오래 건강할 수 있었던 건 포스코의 탄탄한 기술과 철저한 관리 덕분이야.
올해 말에는 나도 은퇴해. 종풍(終風·고로가 수명을 다하고 쇳물 생산을 마치는 과정)식이 끝나면 철강역사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날 거야. ‘제철보국’의 상징으로 미래의 꿈을 키우는 젊은이들과 함께 다음 역사의 장을 펼친다면 이 또한 가슴 뜨거운 일이지 뭔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