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교수 등 민간인 4명 탑승
버진갤럭틱·블루오리진 이어 성공
575㎞…지구서 가장 멀리 날아
우주에서 3일간 체류하며 여행
10여분에 불과했던 타사 압도
가장 높은 고도까지 비행
스페이스X의 얼굴인 머스크는 지난 7월 굴욕을 당했다. 영국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이 창립한 우주탐사기업 버진갤럭틱과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세운 우주탐사업체 블루오리진이 연달아 우주관광을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오후 8시3분(현지시간) 민간인 4명을 태운 크루드래건이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서 발사되면서 머스크는 치욕을 말끔히 씻어냈다.크루드래건의 목표 고도는 약 575㎞다. 7월 11일 발사된 버진갤럭틱 우주선(86㎞)과 9일 뒤 쏘아올려진 블루오리진 우주선(106㎞)보다 훨씬 높은 고도를 향해 비행하고 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이 떠있는 420㎞ 고도와 지구를 내려다보는 허블 우주망원경이 머무르는 540㎞보다도 높다.
우주에 체류하는 시간도 압도적으로 길다. 버진갤럭틱과 블루오리진의 우주선이 우주에 머무른 시간은 고작 10여 분이지만 크루드래건은 3일간 우주여행을 한다. 10여 분간 우주를 빠르게 훑어봐야 했던 앞선 우주비행보다 훨씬 넉넉한 시간이다.
크루드래건은 발사 후 2분45초가 지나 1단계 추진체와 분리됐다. 발사 12분15초 후엔 2단계 추진체와 승무원 4명을 태운 크루드래건 캡슐이 떨어져 나갔다. 크루드래건은 사흘간 음속의 22배인 시속 2만7359㎞로 지구 궤도를 비행한다. 1시간30분마다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셈이다. 비행을 마친 우주선은 플로리다주 인근 대서양에 내려오는 방식으로 지구로 귀환한다.
조종사 없이 민간인만 탑승
탑승객들의 인생사도 앞선 우주비행보다 인상적이라는 평가다. 탑승자 중 가장 어린 헤일리 아르세노(29)는 어렸을 때 골수암에 걸렸지만 병마를 이겨내고 자신을 치료한 세인트주드어린이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지구과학 교수인 시안 프록터(51)는 2009년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비행사 최종 후보에 올랐던 인물이다. 록히드마틴의 데이터 엔지니어인 크리스 셈브로스키(42)는 NASA 산하 우주체험시설 스페이스캠프에서 우주 왕복선과 관련된 업무를 맡았을 정도로 우주에 대한 관심이 높다. 2000년대 중반에는 공군으로 이라크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탑승자들에 대해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사람들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이들 세 명은 우주행 티켓을 직접 구입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공짜 표를 쥐여준 건 억만장자 제러드 아이잭먼(38)이다. 그는 10대 때부터 사업에 뛰어들어 신용카드 결제처리업체 시프트4페이펀트를 세운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2억달러(약 2344억원)를 내고 티켓 4장을 모두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가족과 지인들에게 나눠주지 않았다. 대신 감명 깊은 삶의 궤적을 그려온 사람들에게 티켓을 선물했다. 아이잭먼은 4개의 좌석에 각각 리더십 희망 관대함 번영이란 이름을 붙였다.
‘부자들의 리그’란 비판을 받기도 한 버진갤럭틱과 블루오리진의 우주관광과는 결이 다르다는 평도 있다. 앞서 버진갤럭틱과 블루오리진엔 창업자인 브랜슨과 베이조스가 탑승했다. 또 블루오리진 최연소 탑승자가 투자회사 CEO인 아버지로부터 티켓을 받아 우주선에 오르는 기회를 얻었던 것과도 비교된다. 그린 숏웰 스페이스X 회장은 “우주에 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해 길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민간인의 우주여행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다음달엔 영화 촬영을 위해 러시아 감독 클림 시펜코, 배우 율리아 페레실드 등이 우주로 향한다. 스페이스X는 내년 초에도 우주선을 쏘아올린다. 전직 NASA 우주비행사와 사업가 3명이 우주정거장에서 1주일간 머무를 예정이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