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여행자들은 왜 '나치 독일' 눈치채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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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
줄리아 보이드 지음
이종인 옮김 / 페이퍼로드
688쪽│3만3000원
줄리아 보이드 지음
이종인 옮김 / 페이퍼로드
688쪽│3만3000원
오늘날 독일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관광지로서의 이미지가 덜하다. 하지만 1920~1930년대에는 얘기가 달랐다. 해외여행을 떠날 여력이 있던 선진국 미국과 영국의 관광객이 가장 선호한 여행지가 독일이었다. 많은 사람이 휴가를 보내기 위해 독일을 찾았다. 나치의 그림자가 점점 짙어가고 있었지만 독일 문화에 대한 갈망, 순수한 호기심, 가문의 근원을 찾고자 하는 열망은 뿌리가 깊었다.
《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은 1차 세계대전 종결부터 2차대전 발발까지의 전간기(戰間期) 독일을 둘러봤던 여행자의 시선으로 재구성한 히틀러 시대의 ‘초상화’다. 당시 여행자의 일기와 편지, 언론 기사 등을 파헤친 이 책은 2017년 출간 이후 영미권 주요 언론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높은 관심을 받았다.
나치의 광기가 하루가 다르게 심해지던 시기, 독일의 실체와 관광객이 받은 인상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여행객에겐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눈에 들어왔다. 그들에게 독일은 한적한 중세도시, 깨끗한 마을, 청결한 호텔, 인심 좋은 주민, 아름다운 바그너 음악, 시원한 맥주 거품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베를린의 대로는 독일 가정주부처럼 깨끗했고 청년은 생기가 넘쳤다. “청결함, 효율성, 유능함, 질서의식, 나는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는 미국 극작가 마틴 플레빈의 감상은 빈말이 아니었다.
당대인들이 주목한 제3제국의 형상은 오늘날과 크게 달랐다. 민주주의가 퇴조하고 실업률이 치솟던 시기, 사람들이 일터로 향하고 날마다 새로운 인프라가 들어선 ‘성공한 독재국가’에서 교훈을 얻길 바란 이가 적지 않았다. 그들에게 독일인은 근면하고 진취적인 사람이었고, 나치 체제는 질서와 절도가 있는 효율성 높은 조직이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국민의 자부심을 회복시킨, 영감이 가득한 지도자이자 실존하는 초인이었다.
오늘날 중국을 방문하는 대다수가 티베트와 위구르의 인권 탄압을 거론하지 않는 것처럼 20세기 초 독일을 여행한 이들도 잔인한 폭력과 반(反)유대주의의 실상에 눈을 감았다. 때론 보고도 못 본 체했다. 모두 ‘역사의 목격자’였지만 진실을 직시한 이는 소수에 불과했다. 악명 높은 분서 행위조차도 “마르틴 루터에 의해 시작된 전통이며, 사람을 타락시키는 책을 불태운 것”으로 손쉽게 미화됐다. 사회적·경제적 상황이 좋아지면 나치의 광기도 자연히 줄어들 것으로 순진하게 기대했다.
눈앞의 진실을 외면한 것은 평범한 이들만이 아니었다. 히틀러가 격찬한 오버라머가우의 ‘수난극’을 관람한 5만 명의 미국인 중에는 반유대주의자였던 헨리 포드도 있었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 램지 맥도널드 전 영국 총리도 공연에 감명받았다. 에즈라 파운드와 윈덤 루이스, 크누트 함순, T S 엘리엇, W B 예이츠 등 파시즘에 매혹된 저명한 문인도 나치 구호에 공감을 나타냈다.
나치 역시 해외에서의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하는 선전 도구로 관광을 유용하게 활용했다. 다하우의 강제 노동수용소조차 영미 관광객에게는 관광 명소가 됐다. 나치도, 독일을 방문하는 여행객도 모두 독일인이 정치 분야만 빼놓고 보면 아주 마음이 따뜻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길 원했다.
이후 역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아는 후대인의 시선에선 이처럼 당시의 여행자가 남긴 기록은 황당하기도 하고, 어리석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하다. 그들은 머릿속에 있는 ‘진짜 독일’을 찾아 나섰지만, 정작 그들이 만난 것은 가식적인 ‘허상’에 불과했다. 그나마 그 일면의 기억조차 곧 잊혔다.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책이지만 역자가 독일어와 독일사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고유명사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것은 흠이다. ‘퀴르퓌스텐담’(쿠르퓌르스텐담, 괄호 안이 정확한 표기), ‘크레디탄슈탈트 은행’(그레디트안슈탈트 은행), ‘프리드리히샤펜’(프리드리히스하펜), ‘바르타임 백화점’(베르트하임 백화점), ‘스포트팔라스트·스포츠팔라스트’(슈포르트팔라스트), ‘페스트스 필하우스’(페스트슈필하우스)처럼 원의(原意)를 모르거나 배경 지식이 없어 잘못 옮겨진 단어들은 열거하기도 힘들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은 1차 세계대전 종결부터 2차대전 발발까지의 전간기(戰間期) 독일을 둘러봤던 여행자의 시선으로 재구성한 히틀러 시대의 ‘초상화’다. 당시 여행자의 일기와 편지, 언론 기사 등을 파헤친 이 책은 2017년 출간 이후 영미권 주요 언론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높은 관심을 받았다.
나치의 광기가 하루가 다르게 심해지던 시기, 독일의 실체와 관광객이 받은 인상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여행객에겐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눈에 들어왔다. 그들에게 독일은 한적한 중세도시, 깨끗한 마을, 청결한 호텔, 인심 좋은 주민, 아름다운 바그너 음악, 시원한 맥주 거품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베를린의 대로는 독일 가정주부처럼 깨끗했고 청년은 생기가 넘쳤다. “청결함, 효율성, 유능함, 질서의식, 나는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는 미국 극작가 마틴 플레빈의 감상은 빈말이 아니었다.
당대인들이 주목한 제3제국의 형상은 오늘날과 크게 달랐다. 민주주의가 퇴조하고 실업률이 치솟던 시기, 사람들이 일터로 향하고 날마다 새로운 인프라가 들어선 ‘성공한 독재국가’에서 교훈을 얻길 바란 이가 적지 않았다. 그들에게 독일인은 근면하고 진취적인 사람이었고, 나치 체제는 질서와 절도가 있는 효율성 높은 조직이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국민의 자부심을 회복시킨, 영감이 가득한 지도자이자 실존하는 초인이었다.
오늘날 중국을 방문하는 대다수가 티베트와 위구르의 인권 탄압을 거론하지 않는 것처럼 20세기 초 독일을 여행한 이들도 잔인한 폭력과 반(反)유대주의의 실상에 눈을 감았다. 때론 보고도 못 본 체했다. 모두 ‘역사의 목격자’였지만 진실을 직시한 이는 소수에 불과했다. 악명 높은 분서 행위조차도 “마르틴 루터에 의해 시작된 전통이며, 사람을 타락시키는 책을 불태운 것”으로 손쉽게 미화됐다. 사회적·경제적 상황이 좋아지면 나치의 광기도 자연히 줄어들 것으로 순진하게 기대했다.
눈앞의 진실을 외면한 것은 평범한 이들만이 아니었다. 히틀러가 격찬한 오버라머가우의 ‘수난극’을 관람한 5만 명의 미국인 중에는 반유대주의자였던 헨리 포드도 있었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 램지 맥도널드 전 영국 총리도 공연에 감명받았다. 에즈라 파운드와 윈덤 루이스, 크누트 함순, T S 엘리엇, W B 예이츠 등 파시즘에 매혹된 저명한 문인도 나치 구호에 공감을 나타냈다.
나치 역시 해외에서의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하는 선전 도구로 관광을 유용하게 활용했다. 다하우의 강제 노동수용소조차 영미 관광객에게는 관광 명소가 됐다. 나치도, 독일을 방문하는 여행객도 모두 독일인이 정치 분야만 빼놓고 보면 아주 마음이 따뜻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길 원했다.
이후 역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아는 후대인의 시선에선 이처럼 당시의 여행자가 남긴 기록은 황당하기도 하고, 어리석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하다. 그들은 머릿속에 있는 ‘진짜 독일’을 찾아 나섰지만, 정작 그들이 만난 것은 가식적인 ‘허상’에 불과했다. 그나마 그 일면의 기억조차 곧 잊혔다.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책이지만 역자가 독일어와 독일사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고유명사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것은 흠이다. ‘퀴르퓌스텐담’(쿠르퓌르스텐담, 괄호 안이 정확한 표기), ‘크레디탄슈탈트 은행’(그레디트안슈탈트 은행), ‘프리드리히샤펜’(프리드리히스하펜), ‘바르타임 백화점’(베르트하임 백화점), ‘스포트팔라스트·스포츠팔라스트’(슈포르트팔라스트), ‘페스트스 필하우스’(페스트슈필하우스)처럼 원의(原意)를 모르거나 배경 지식이 없어 잘못 옮겨진 단어들은 열거하기도 힘들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