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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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지방정부)가 예산을 탈털 털어 '최상위 부자 12%'에게만 생활비를 나눠주는 해괴한 정책이 기어코 현실이 됐다. 경기도 의회가 중앙정부의 5차 재난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된 소득 상위 12%에게 한 사람당 25만원씩 지급하기 위해 6348억원의 추가경정예산안을 15일 의결한 것이다. 지급대상은 253만7000명, 시기는 내달 1일 부터, 사용기간은 연말까지다. 사용처는 정부 상생 국민지원금과 동일하다.

이 이상한 정책에는 '전 도민 재난지원금'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사이다라는 말을 증명하듯 말을 꺼낸지 불과 한 달여 만에 전광석화처럼 관련 절차를 마무리지었다. 추경 통과후 브리핑에서 이 지사는 "소득이 많다는 이유로 재난지원금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없는 차별이 될수 있다"고 강조했다.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논리이고 이해하기 힘든 설명이다.

고소득자와 저소득자를 어떤 경우에도 구별하지 않는 절대적 평등을 달성하는 게 차별없는 좋은 세상이라 주장하는 것인가. 그런 신념이라면 소득이 많다는 이유로 고소득자에게 일정한 누진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도 '합리적 이유없는 차별'이 될 수 밖에 없다. 소득이 많은 사람이 공동체를 위해 더 많은 재정적 부담을 하자는 한국과 세계 만국의 생각은 졸지에 비합리적인 약탈이 되고 만다.

이 지사는 전 국민이 모두 보상받아야 하는 이유로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국민이 겪고 있다"는 점도 제시했다. 이 역시 사실관계에 대한 왜곡이다. 올 2분기 가계소득만 봐도 1분위(하위 20%)는 6.3%나 급감한 반면 5분위(상위 20%)는 1.4% 증가했다. 2~4분(하위 20~80%) 소득도 모두 감소해 심각한 양극화를 드러냈다. 즉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하위 80%에 집중됐고 상위 20%에서는 관찰되지 않은 셈이다. 결국 이 지사의 '전 국민 피해설'은 뇌피셜에 기반한 현금 퍼주기라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이 지사는 돈이 남아서 나눠주는 것이라고도 했다. “현재까지 부동산 거래세, 지방소비세 등 도의 초과세수가 1조 7천억 원에 이르는데, 이 초과세수 중 경기도 몫으로 전 도민 지급을 하고도 남는다"는 설명이다. 설사 그렇다 해도 세수가 남으면 지자체 빚을 우선상환하고, 도민 전체에 유용한 사업을 모색하는 것이 마땅한 순서다. 세수가 남는다고 지시가 내 주머니 돈 쓰듯 부자들에게 선심쓰며 나눠주는 것, 얼마나 전근대적 발상인가.

경기도는 전 도민 재난지원금의 목적으로 소비진작과 경기활성화도 꼽았다. 이 지사는 “한시적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경기도 재난지원금은 결국 지역의 ‘동네가게’에서 사용되어 골목상권으로 흘러들어가 소상공인과 영세자영업자에게 내리는 가뭄의 단비가 될 것”이라고 했다. 골목상권 살리기를 위해서라면 '하위 12%'에게 25만원씩 더 나눠주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훨씬 효과가 크다. 주머니 사정이 궁한 저소득층이 한푼 한푼 알뜰하게 전액을 골목상가에서 소비할 개연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도민들도 부자에게 퍼준다면 배아프고 화나지만, 하위 12% 이웃에게 더 돌아가는 방식이라면 양해하고 박수쳐 줄 것이다.

경기도는 앞서도 지난해 4월과 올 2월 두 차례에 걸쳐 모든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1인당 10만 원씩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했다. 그 때는 경기도민의 세금이 모든 경기도민에게 돌아갔지만, 추경을 편성해 상위 12%에게 용돈을 뿌리는 식은 공감을 얻기 힘든 정책이다. 여당의 유력대선후보인 만큼 더 신중한 행보가 요구된다.많은 국민이 의아한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는 점도 상기해야 한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