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일본 총리 교체와 파벌 정치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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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벌 짬짜미로 총리된 스가…지지율 하락에 '간판 교체'
일본 총리 선출 때 유권자 의사 직접 반영 어려워 일본 정치 뉴스에서 파벌이 주목받는 시기가 돌아왔다.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 시즌이 됐기 때문이다.
자민당 총재가 된다는 것은 일본 총리 자리를 예약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민당에는 7개의 파벌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름과 소속 국회의원 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세이와(淸和)정책연구회(96명), 시코카이(志公會, 53명), 헤이세이(平成)연구회(52명), 스이시카이(志帥會, 47명), 고치카이(宏池會, 46명), 스이게쓰카이(水月會, 17명), 긴미라이(近未來)정치연구회(10명)
이들 파벌은 회장 혹은 실질적 지주의 성을 따서 호소다(細田)파, 아소(麻生)파, 다케시타(竹下)파, 니카이(二階)파, 기시다(岸田)파, 이시바(石破)파, 이시하라(石原)파로 각각 불린다.
이름에서 풍기는 낡은 이미지처럼 파벌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야 할 밀실 정치의 흔적을 보여준다.
일본 유권자들은 최장기 재임 기록을 세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1년 전 사임할 때 이런 정치 현실을 실감했을 것으로 보인다.
파벌 영수들이 물밑에서 움직이더니 갑자기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당시 관방장관이 차기 총재로 유력하다는 소식이 신문 지면을 장식했고 이는 곧 현실이 됐다.
아베가 사의를 표명한 직후 실시된 유권자 여론조사 결과(교도통신)를 보면 총리로 가장 어울리는 인물은 응답자 34.3%가 지목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이었다.
스가를 꼽은 이들은 14.3%로 이시바의 절반도 안 됐다.
그런데도 스가가 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총재 선출 방식 때문이었다.
당시 자민당 소속 국회의원 394명(394표)과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자치단체) 지부연합회가 3표씩(47×3=141표) 행사해 당선자를 결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니카이파 회장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이 발 빠르게 움직여 먼저 스가 지지를 선언했고 다른 파벌도 도미노처럼 스가에게 충성을 약속했다.
대세를 거슬렀다가는 이어지는 자민당 간부인사와 조각(組閣)에서 찬밥 신세가 된다는 것을 파벌 회장들은 잘 알고 있었다.
스가는 전체의 약 70%인 377표를 얻어 압승했고 이틀 후 열린 임시 국회에서 총리로 선출됐다.
일반 유권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파벌 수장들의 담합으로 스가가 국가 지도자로 선출된 셈이다.
하지만 파벌들의 띄워주기에 힘입어 역대 3위의 지지율로 내각을 출범한 스가는 1년을 못 채우고 사퇴를 결심했다.
스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 전념하기 위해서 총재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스가에 대한 지지율이 곤두박질 한 점 등에 비춰보면 파벌들이 스가라는 간판을 폐기 처분하기로 한 것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파벌들의 담합에 따라 무대의 주인공이 됐다가 다시 파벌들의 판단에 따라 권좌에서 내몰리는 상황이 된 셈이다.
스가의 지역구인 요코하마(橫浜)에서 실시된 시장 선거에서 스가가 전폭 지원한 측근까지 낙선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다가오는 총선에서 스가는 걸림돌일 뿐이라는 인식이 당내에 확산한 결과다.
스가가 순순히 물러나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킹메이커였던 니카이를 내치기로 했고 코로나19 확산 와중에 중의원을 해산해 정국을 장악하는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알려졌으나 파벌도 없는 스가가 이런 구상을 실행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자민당 총재 선거가 17일 개막하면서 누가 후임이 될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올해는 작년과 달리 파벌들의 눈에 띄는 담합은 보이지 않는다.
섣불리 공작에 나섰다가 다가오는 총선 때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또 스가의 출마 포기로 갑자기 권력 진공 상태가 된 가운데 누구에게 줄을 서야 할지 판단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주요 파벌은 지지하는 단일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
유권자 지지도를 보면 고노 다로(河野太郞) 행정개혁 담당상이 상당한 격차로 1위를 달리고 있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정조회장)이 2위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총무상과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자민당 간사장 대행은 한참 처진 상태다.
다수가 소속 의원들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투표하도록 용인하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유권자 지지율이 높은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낙관하기도 어렵다.
이 역시 투표 방식과 관련 있다.
이번 선거는 1차 투표에 이어 결선 투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자민당 국회의원 383명의 표와 당원·당우표 383표로 1차 투표를 하되 과반 득점자가 없으면 결선 투표를 한다.
1·2위 후보자를 상대로 하는 결선 투표에서는 국회의원 표는 1차와 마찬가지로 383표로 하고 47개 도도부현지부연합회 표 47표를 반영한다.
결선 투표로 가면 국회의원 표의 영향력이 커지고 파벌 정치가 힘을 발휘할 가능성도 있다.
국회의원 지지 기반은 약하지만, 유권자 인지도가 높은 고노는 여론에 비교적 민감한 당원·당수의 영향력이 큰 1차 투표에서 과반 확보로 당선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 지지도에서 밀리는 나머지 후보는 고노의 과반 확보를 저지하고 결선에서 진짜 승부를 내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에서는 만약 고노가 1차 투표에서 1위를 하면 결선 투표 때 기시다와 다카이치가 손을 잡고 역전하는 방안이 거론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자민당 국회의원들이 파벌과 총선의 이해득실을 따져 당의 간판을 결정하면 그가 총리로 추대되는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
1년여 사이에 일본 총리가 두 번 바뀌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지만, 일반 유권자가 직접 참여할 공간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자민당이 결정한 총리를 유권자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11월쯤 실시될 중의원 선거 결과를 통해 엿볼 수 있을 전망이다.
/연합뉴스
일본 총리 선출 때 유권자 의사 직접 반영 어려워 일본 정치 뉴스에서 파벌이 주목받는 시기가 돌아왔다.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 시즌이 됐기 때문이다.
자민당 총재가 된다는 것은 일본 총리 자리를 예약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민당에는 7개의 파벌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름과 소속 국회의원 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세이와(淸和)정책연구회(96명), 시코카이(志公會, 53명), 헤이세이(平成)연구회(52명), 스이시카이(志帥會, 47명), 고치카이(宏池會, 46명), 스이게쓰카이(水月會, 17명), 긴미라이(近未來)정치연구회(10명)
이들 파벌은 회장 혹은 실질적 지주의 성을 따서 호소다(細田)파, 아소(麻生)파, 다케시타(竹下)파, 니카이(二階)파, 기시다(岸田)파, 이시바(石破)파, 이시하라(石原)파로 각각 불린다.
이름에서 풍기는 낡은 이미지처럼 파벌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야 할 밀실 정치의 흔적을 보여준다.
일본 유권자들은 최장기 재임 기록을 세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1년 전 사임할 때 이런 정치 현실을 실감했을 것으로 보인다.
파벌 영수들이 물밑에서 움직이더니 갑자기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당시 관방장관이 차기 총재로 유력하다는 소식이 신문 지면을 장식했고 이는 곧 현실이 됐다.
아베가 사의를 표명한 직후 실시된 유권자 여론조사 결과(교도통신)를 보면 총리로 가장 어울리는 인물은 응답자 34.3%가 지목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이었다.
스가를 꼽은 이들은 14.3%로 이시바의 절반도 안 됐다.
그런데도 스가가 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총재 선출 방식 때문이었다.
당시 자민당 소속 국회의원 394명(394표)과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자치단체) 지부연합회가 3표씩(47×3=141표) 행사해 당선자를 결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니카이파 회장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이 발 빠르게 움직여 먼저 스가 지지를 선언했고 다른 파벌도 도미노처럼 스가에게 충성을 약속했다.
대세를 거슬렀다가는 이어지는 자민당 간부인사와 조각(組閣)에서 찬밥 신세가 된다는 것을 파벌 회장들은 잘 알고 있었다.
스가는 전체의 약 70%인 377표를 얻어 압승했고 이틀 후 열린 임시 국회에서 총리로 선출됐다.
일반 유권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파벌 수장들의 담합으로 스가가 국가 지도자로 선출된 셈이다.
하지만 파벌들의 띄워주기에 힘입어 역대 3위의 지지율로 내각을 출범한 스가는 1년을 못 채우고 사퇴를 결심했다.
스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 전념하기 위해서 총재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스가에 대한 지지율이 곤두박질 한 점 등에 비춰보면 파벌들이 스가라는 간판을 폐기 처분하기로 한 것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파벌들의 담합에 따라 무대의 주인공이 됐다가 다시 파벌들의 판단에 따라 권좌에서 내몰리는 상황이 된 셈이다.
스가의 지역구인 요코하마(橫浜)에서 실시된 시장 선거에서 스가가 전폭 지원한 측근까지 낙선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다가오는 총선에서 스가는 걸림돌일 뿐이라는 인식이 당내에 확산한 결과다.
스가가 순순히 물러나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킹메이커였던 니카이를 내치기로 했고 코로나19 확산 와중에 중의원을 해산해 정국을 장악하는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알려졌으나 파벌도 없는 스가가 이런 구상을 실행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자민당 총재 선거가 17일 개막하면서 누가 후임이 될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올해는 작년과 달리 파벌들의 눈에 띄는 담합은 보이지 않는다.
섣불리 공작에 나섰다가 다가오는 총선 때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또 스가의 출마 포기로 갑자기 권력 진공 상태가 된 가운데 누구에게 줄을 서야 할지 판단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주요 파벌은 지지하는 단일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
유권자 지지도를 보면 고노 다로(河野太郞) 행정개혁 담당상이 상당한 격차로 1위를 달리고 있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정조회장)이 2위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총무상과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자민당 간사장 대행은 한참 처진 상태다.
다수가 소속 의원들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투표하도록 용인하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유권자 지지율이 높은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낙관하기도 어렵다.
이 역시 투표 방식과 관련 있다.
이번 선거는 1차 투표에 이어 결선 투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자민당 국회의원 383명의 표와 당원·당우표 383표로 1차 투표를 하되 과반 득점자가 없으면 결선 투표를 한다.
1·2위 후보자를 상대로 하는 결선 투표에서는 국회의원 표는 1차와 마찬가지로 383표로 하고 47개 도도부현지부연합회 표 47표를 반영한다.
결선 투표로 가면 국회의원 표의 영향력이 커지고 파벌 정치가 힘을 발휘할 가능성도 있다.
국회의원 지지 기반은 약하지만, 유권자 인지도가 높은 고노는 여론에 비교적 민감한 당원·당수의 영향력이 큰 1차 투표에서 과반 확보로 당선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 지지도에서 밀리는 나머지 후보는 고노의 과반 확보를 저지하고 결선에서 진짜 승부를 내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에서는 만약 고노가 1차 투표에서 1위를 하면 결선 투표 때 기시다와 다카이치가 손을 잡고 역전하는 방안이 거론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자민당 국회의원들이 파벌과 총선의 이해득실을 따져 당의 간판을 결정하면 그가 총리로 추대되는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
1년여 사이에 일본 총리가 두 번 바뀌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지만, 일반 유권자가 직접 참여할 공간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자민당이 결정한 총리를 유권자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11월쯤 실시될 중의원 선거 결과를 통해 엿볼 수 있을 전망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