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김 디자이너 자택의 방
샌프란시스코 김 디자이너 자택의 방
김준식 인스타그램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방(사진)에 들어선 순간 '간결하다'란 생각이 들었다. 모니터(2대), 책상과 의자, 스피커, 조명, VR글래스에 음료용 냉장고까지. 3평 정도 공간에 있을 건 다 있는 데 '과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김 디자이너는 공간의 콘셉트에 대해 '미니멀'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유행 때문만은 아니다. 직업·가치관과 연관이 있다. 그는 세계 최고 SNS 서비스를 사람들이 쓰기 쉽게 디자인하는 사람이다. 그는 "디자이너들은 필요없는 건 버리고 필요한 걸 극대화한다"며 "핵심부터 파고, 핵심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방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모든 게 '업무 최적화'를 위한 배치였다. 본인의 방부터 세련되지만 간결하고 사용성이 좋게 디자인한 것이다. '역시 디자이너'란 생각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힙'(고유한 개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최신 유행에 밝고 신선하다는 의미)한 느낌이 넘치는 김 디자이너는 국내 최고 이공계 대학으로 불리는 KAIST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리고 미국 명문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대학원)을 마쳤다. 직장은 세계에서 가장 핫한 SNS로 불리는 인스타그램. 그럼에도 그의 말과 행동은 겸손했다.

샌프란시스코 그의 자택에서 두 시간 정도 얘기를 나눴다. '엄친아'로 보이지만 그가 편한 길만 걸어온 건 아니다. 초중고를 해외에서 나와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KAIST 졸업 후 삼성 계열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필기가 발목을 잡았다. 미국 대학원 재학 중엔 인턴 한 번 못할 정도로 취업 시장에서 자주 미끄러졌다. 천신만고 끝에 글로벌 기업에 취직했지만 '공허함'을 계속 느꼈다.

그럼에도 인스타그램의 중견급 디자이너까지 올라온 건 직업에 대한 진심과 간절함이었다. 그는 디자이너란 직업을 밥벌이 그 이상으로, 인생의 목표와 연결지어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인터뷰 중 "나의 미술적인 생각과 이념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며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에게 좋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게 삶의 목표"라고 수 차례 말했다. 그렇다면 좋은 디자이너는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을까. 그는 '고민'에 답이 있다고 했다. 본인이 무엇에 가치를 느끼고 좋아하는지, 더 나아각 사람들이 뭘 원하는 지 계속 고민하고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게 디자이너의 사명이란 얘기다.

인스타그램 핵심 서비스 '릴스'팀에서 디자이너로 근무

▶지금 무슨 일을 하시나요.

"인스타그램 '릴스'(인스타그램의 짧은 동영상 서비스)팀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다른 회사로 치면 'UX디자이너'와 비슷한 일을 합니다."

▶원래 미술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부모님께서 '아들이 미술 좋아하는구나'라고 아실 정도였습니다. 학창시절 때 어떤 수업보다 미술 관련 수업과 과제에 열심히 참여했어요. 모범생은 아니었는데 미술은 열심히 했습니다."

▶왜 미술이 좋았을까요.

"미술은 '제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감정이나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 게 재밌었어요. 그리고 그걸 보면서 사람들이 '왜 그렸을까' 얘기하고, 제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신기했죠. 그 과정에서 디자인이란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왜 디자인이죠.

"제가 미술을 하면서 깨달은 건 '제 표현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싶다'는 거에요. 제가 표현하는 것과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의 교집합이 디자인이에요. 핸드폰, 식탁, 책상의 각도, 재질 등이 다 디자인의 표현이에요. 그리고 디자인의 핵심은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느냐'거든요.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파고 들고 싶었습니다."

▶그럼 학부는 미대를 나오셨겠네요.

"아니요. KAIST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어요. 그 전엔 필리핀에서 초·중·고를 다녔고요. 2004년 9월에 KAIST에 입학했어요. KAIST는 외국에서 학교다닌 학생들을 가을에도 뽑거든요. 이공계로 유명한 학교고 엔지니어링 중심이죠."

KAIST는 '세심한 지도', 파슨스는 '자율성'이 장점

▶왜 KAIST였죠.

"디자인에선 엔지니어링 기반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해야지'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는 지 고민할 때 중요하죠. 그런 엔지니어링쪽으로 뛰어난 학교가 KAIST잖아요. 매력있는 학교라고 생각했어요. 두 번째는 아버지 영향이 컸어요. 한국인이니까 한국 학교에 가서 한국적인 사고방식이나 문화를 배우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셨습니다. 정리하면 △디자인 △공학적인 접근 △사용자 중심 원리에 대한 호기심 △한국적인 문화 이 모든 걸 생각했을 때 그 중심에 KAIST가 있었어요."

▶KAIST 생활이 힘들지는 않았나요.

"미적분, 화학, 생물, 물리, 논술이런 게 기본과목이었어요. 당시에 전 한국말도 잘 못했죠. KAIST 학생들 얼마나 똑똑해요. 저도 나름대로 수학경시대회 1등하고 잘하는 학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KAIST에서 수업 들으면 '평균 이하'가 됐죠."

▶학과의 선후배 관계라거나 그런 것들은요.

"대학에서 한국문화라는 걸 거의 처음 경험을 했습니다. 위계질서, 존댓말, 선후배관계 등등요. 자유분방한 문화에 살았던 제가 한국문화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긴 했죠. 전 사실 '족보(상하관계) 브레이커'였어요. 제가 04학번인데 나이가 05학번하고 같았거든요. 동기들은 물론이고 05학번들하고도 친구로 지냈어요. 그래도 한국 문화에 완전히 적응한 건 아니지만, 고생은 안 했어요. 제가 한국 문화를 잘 몰랐지만 그렇다고 반항하고 싶었던 건 아니거든요."
KAIST 시절 김준식 디자이너(왼쪽)
KAIST 시절 김준식 디자이너(왼쪽)
▶전공과 적성이 잘 맞았을까요.

"공부하고 싶었던 과목들은 정말 열정적으로 했어요. 장학금도 받았고요. 필수과정들은 어떻게든 통과를 했습니다. 산업디자인에 대해선 굉장히 열정적이었어요."

▶미국으로 대학원은 왜 갔죠.

"언젠가 외국에 다시 가고 싶었어요. KAIST가 정말 좋았는데, 제가 원했던 자유로운, 다양한 문화를 충족시켜주지 못했어요. '기술을 가르쳐줄테니까 네가 관심있는 프로젝트는 알아서 해봐라' 이런 게 필요한 것 같았어요. 제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해보자 이런 마음도 있었고요. 뭘 원하는 지 한국에선 희미해졌는데 외국 대학원에 가면서 답답함을 뚫을 수 있었죠."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로 간 계기는요.

"파슨스에서 디자인테크놀로지를 했는데, 역사가 상대적으로 깊은 전공은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한 걸 많이 경험했어요. 모바일디자인, 웹디자인, 코딩, 만화, 모션디자인 등이요."

▶어떤 걸 많이 배웠나요

"다양한 사람을 만나 많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변호사, 특허 전문가, 산업디자인 등 다양한 배경의 동기들이 왔어요. 대화가 재밌었고 다양성이 소중했어요. 방과 후에 함께 뭘 개발하고 그런 게 재밌었고요."

▶KAIST와 파슨스의 차이점은요.

"KAIST는 정말 좋았어요. 교수님들이 학생들을 정말 잘 챙겨주셨죠. 이것저것 세부적으로 가르쳐주시고 과제에 대한 지시도 하시고요. 뉴욕 교수님들은 '관심있는 걸 해봐라', '나는 지도하는 사람이지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런 분위기에요. 이런 문화가 좋았어요. 자발적으로 해보고 싶었던 프로젝트를 다양하게 해봤어요."

▶디자인을 통해 삶의 목표를 갖게 됐다고요.

"네 제 미술적인 생각과 이념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을 통해서 좋은 영향을 주는 것' 이게 제 삶의 목표입니다."

'대기업 입사 때 한자(漢字) 시험이라니'...백지 내고 좌절

▶대학졸업 후 미국 대학원 진학 전에 한국 회사를 다녀본 적이 있나요.

"LG전자의 초콜릿폰이 잘 나갈 때 인턴을 했었어요. 좋은 경험을 했는데, 인턴으로서 일하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사람들한테 영향을 주고 싶었는데 '제가 디자인한게 출시될 수 있을까'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죠."

▶다른 한국기업은 생각 안 했나요.

"네.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를 봤는데 거의 백지를 냈어요. 인생 최대 좌절감을 느꼈죠. 그 당시에 '왜 회사 들어가는데 이런 시험을 봐야하지'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질문과 답에 한자가 나오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죠. 이후에 한국의 디자인 컨설팅회사에 합격해서 3개월 정도 일했습니다."

▶파슨스디자인스쿨은 명문학교니까 인턴도 많이 했겠네요.

"대학원때 인턴 다 떨어졌어요.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스프트 다 지원했는데 떨어졌고, 저는 웹사이트가서 이력서 써냈는데 연락도 없었어요. 전 그래서 인턴을 못했어요(웃음). 그래서 그냥 사람들한테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단 생각에 방학 때 중국에 가서 학생들에게 디자인 가르치는 일을 했죠."

▶왜 다 떨어졌을까요.

"실력이 부족했던 것 같고요. 입사하는 방식을 몰랐어요. 미국 회사엔 현직 직원이 리크루터에게 학생을 추천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한 번 검증된 사람을 추천 받는 거죠. 전 그걸 몰랐어요. 전 멘땅에 헤딩한거죠. 누구도 이런 건 안 가르쳐줘요. 물어보지 않으면요. 실패한 경험을 토대로 많이 배우고 다음엔 더 잘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한국에서도 그렇고 취업이 쉽지 않았네요.

"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어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3개월 안에 취업하지 못하면 비자에 문제가 생기거든요. 그리고 취업해서 1년 내 스폰서를 받아야하고요. 인턴에서 다 떨어지니까 너무 큰 스트레스였어요. 당시에 졸업전시회도 준비해야하고 직장도 알아봐야해서 정신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게 있어서 미국에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어요."
뉴욕 파슨스 졸업전시회
뉴욕 파슨스 졸업전시회
▶미국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해준 곳이 어딘가요.

"당시에 학교에 리크루팅이 왔어요. 직원들이 와서 학생들 면접하고 회사에 추천하는 행사죠. 마침 마이크로소프트(MS)가 왔어요. 전 너무 간절했죠. 제가 한 프로젝트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어필했어요. 간절함이 통했나봐요. 1주일 뒤에 연락이와서 전화인터뷰 보라고 했고, 그게 잘 돼서 직접 샌프란시스코 MS에 가서 인터뷰를 하고 합격을 했어요. 정직원이됐죠."

▶어떻게 면접을 했기에 단 번에 합격했나요.

"결과적으로 포트폴리오가 가장 중요해요. '나는 어떤 디자이너'이며 '내가 이 회사에 들어가서 어떻게 너희한테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어필했어요. 제 디자인과 전략을 포트폴리오에 잘 담아서 적극적으로 어필을 했습니다."

▶왜 MS였죠.

"음, 사실 그 때 다행히도 MS 말고도 다수의 대기업과 디자인 컨설팅 회사에 붙었거나 최종면접이 잡혔어요. 솔직히 가장 중요한 건 대기업이었다는 것이고 비자 후원에 MS가 가장 유리하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MS에 '비자도 중요하고 영주권(그린카드) 해줄 수 있냐'고 했어요. 다음으로는 MS 사용자가 많다는 것이요. 많은 사람들이 쓰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면 (사람들에게)영향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마이크로소프트 취업했지만...'사람들에 영향주고 싶다' 계속 고민

▶MS에서 어떤 일을 했나요.

"처음엔 실험적인 일을 하는 부서였어요. MS 안의 스타트업 같은 느낌이었는데요. MS의 기술을 활용해서 외부 업체들과 협업해 새로운 걸 개발하는 일이었어요. 전 UX(사용자경험) 디자이너였고요."

▶디자인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목표와 잘 맞았나요.

"새로운 앱을 개발할 수도 있는 게 신기했어요.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고요. 그런데 1년 반 정도 지나니까 다른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쓰는 제품'을 출시하지 못 한 점이 아쉬웠죠. 과제가 너무 실험적이었죠. MS에 온 게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었던 건데, 갈증이 생겼어요."

▶어떻게 돌파하셨죠.
"'MS 오피스'팀으로 옮겼어요. 거기서 애플 iOS용 MS 키보드를 개발하는 팀에 합류했어요. 어떻게하면 사람들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요. 실제 출시가 되니까 정말 행복했죠. 제가 즐겨보는 웹사이트에 제품이 소개가되니까 신기하기도 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더 잘 할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도 들어요."

▶그 iOS용 키보드는 잘 됐나요.

"아니요. 제가 출시 후에 회사를 나와서 정확하게는 모르는데, 엄청 잘 된 것 같진 않습니다. 그리고 MS에서 점점 답답함을 느꼈어요. MS 오피스가 정말 사람들이 많이 쓰지만 그만큼 변화를 주는 데 민감했어요. 작은 것 하나 바꿈으로써 사용자 경험이 달라지고 출시 사이클이 느려지거든요. 워낙 전통적인 프로그램이고 하니까 속도가 느렸죠."

▶이직을 하셨군요.

"네. 2013년에 MS에 입사했고 2016년 10월에 지금 직장인 인스타그램으로 옮겼어요."

'최고'가 되고 싶어 인스타그램으로 이직

▶세계에서 가장 큰 SNS 회사인 영향인가요.

"가장 큰 이직의 이유는 인스타그램이 '핫(hot)' 했다는 겁니다. 또 최고가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경험해보고 그 경험을 토대로 배우고 싶었어요. 기업 문화, 특히 디자인 쪽으로 문화가 좋다고 들었고요.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을 정말 중요시하는 그런 여건이라고 들었어요. 인스타그램은 '모바일 디자인 계열의 애플'이었죠. 정말 궁금했어요. 저런 명성을 얻는 기업은 어떻게 운영되는지요."

▶이직과정은 어렵지 않았나요.

"예전의 실패가 큰 도움이 됐죠. 이번엔 멘땅에 헤딩하기 보단 현직 직원이 저를 추천해서 과정이 좀 더 수월했던 것 같아요."

▶가보니 어떻던가요.

"전 프로덕트 디자이너에요. 결국 '사람들이 어떤 기능을 좋아할까'에 대해 고민하는 거죠. 디자인 싱킹의 과정입니다. 예측하고 증명하고 디자인해서 출시를 하고 피드백을 받고, 여기에서 PM(프로덕트 매니저)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논리적이고 실행력을 갖춘 사람들이 많아요."
인스타그램 본사에서 찍은 사진
인스타그램 본사에서 찍은 사진
▶인스타그램에서 처음 한 일은요.

"처음엔 광고 파트에 있었어요. 인스타그램에 광고가 뜨는데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더 유용할 수 있을까' 이런 걸 고민하고 디자인했죠. 스토리지 광고요. 1년 동안 재밌었는데 깨달음이 있었어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일'이란 목표와는 약간 거리가 있었죠."

▶그래서 팀을 옮기셨나요.

"네 인스타그램 스토리의 음악기능을 출시하는 팀에 들어갔어요. 제가 음악 디자인을 한거죠. 광고팀에 만족하지 않았고 여러 팀에 이야기를 했는데 기회가 생겼어요. 음악팀에서 '기회가 있는데 와보고 싶냐'고 하더라고요. 음악관련 제품에 계속 집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현재 일하고 있는 릴즈라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어요."

인스타그램 스토리 '뮤직' 서비스 론칭에 참여

▶만족하셨나요.

"정말 좋았습니다. 음악이란 공통점. 모든 사람들은 음악에 대한 어떤 의견들이 있잖아요. '그걸 어떻게 최대한 잘 표현할 수 있게 할까' 이게 재밌는 주제였고 진심으로 좋았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것,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었고요, 제가 그 과정을 통해서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MS와 인스타그램의 가장 큰 차이는요.

"마이크로소프트는 상대적으로 오래된 기업이다보니 바뀌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르진 않아요. SNS 트렌드는 분기마다 바뀌잖아요. 가만히 보세요 SNS 업체들 '빵'하고 뜨고 많이 바뀌잖아요. 그만큼 사람들이 진화하는 것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전 원래 사람에 대한 공부도 좋아하는데요, 사람들이 뭘 원하는 지 주시를 해야하고 여기에 자연스럽게 맞추는 디자인을하는 게 좋아요."

▶지금까지 거의 5년 정도 다니셨네요.

"네 제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어서 만족스럽습니다. 예전엔 제가 하고 싶은 거 배울 수 있는 데 중점을 두고 살았고 그게 행복이었죠. 지금은 가족도 생기고 예전처럼 제 생각만 하고 행동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회사에서 위치는 어느정도에요.

"멘토링을 해야하며 이끌어가야하는 입장이죠. '제로 투 원'에 비유해서 설명하면요. 예전에 MS에서 키보드 만들 때 아무것도 없는 게 0이고 출시가 1이면 전 그 때는 0.5 정도에서 시작했죠. 지금은 0에서부터 시작해야하는 게 재밌으면서도 힘든 것 같아요. '우리 팀이 왜 이것을 해야하는 지' 논리적으로 설명해야하고 이끌어야하고요. 그리고 0.5쯤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잘 이끌어줘야해요. 그런 역할이 많이 바뀌지 않았나 싶어요. 제가 0부터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위해 미국에 온 것이고 여기서 논리가 좋고, 팀을 설득할 수 있다면 '1'이 될 수 있고요. 더 나아가 많은 1들을 모아 조화로운 100이 되는 것입니다. 그게 아메리카드림이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것. 회사 내에서 할 수 있다는 거요."

치열한 미국 직장생활...스트레스는 게임과 조깅으로 풀어

▶위치가 올라갔는데 부담은 없나요.

"전략적인 영향을 줘야하는 사람이 됐어요. 인스타그램이 저한테 그런 걸 요구하고 있고요. 미국에 장점도 많지만 부담인 게 자유가 주어진만큼 책임도 제 것이에요. '실적이 잘 나오면 제 탓, 안 나와도 제탓'이죠.(웃음) 그리고 치열해요.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여건이 주어진 거니까 정말 치열해요. 다들 하고 싶은 게 있고요. 그걸 누구나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잘 관리해야죠. 논리와 설득력이 중요합니다. 스트레스는 엄청 받지만 그래도 저는 아직 좋습니다."

▶세계적인 SNS 기업에 일하면서 동시에 포기해야할 것도 많을 것 같아요.

"스트레스가 많아요. 계속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하고, 설득을 해야하고, 1년에 두 번 성과를 평가받고. 그리고 가족하고 떨어져 있는 게 힘들죠. 중요한 순간들, 예를 들어 조카 돌잔치, 부모님 생신 등에 못가잖아요. 제 선택이지만 힘들어요."
김준식 인스타그램 프로덕트 디자이너
김준식 인스타그램 프로덕트 디자이너
▶본인역량을 어떻게 키우세요.

"항상 배우려고 합니다. 항상 자신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요. 내가 하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생각합니다. 그리고 안주하지 않아요. 예컨대 제가 인스타그램에 처음 왔을 때 광고 쪽을 파고들 수 있었지만, 제 자신에게 물었어요. '정말 제가 하고 싶은거냐'고요. 그래서 아니면 옮기고요. 그리고 지식을 위해서 다큐멘터리를 많이봐요. 사람에 대해 공부하는 게 재밌고, 어떤 분야에 대해 지식을 쌓는 것도 좋기 때문입니다. 사실 디자인을 할 때 '언제 어떤 지식이 사용될지' 몰라요. 항상 총알을 쌓아둬야하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다보니까 다큐멘터리 보는 게 더 재밌고요. 뉴스도 많이 읽으려고 합니다.

▶지식을 꺼내 쓰는 방법이 있나요.

"그건 알게 모르게 되는 것 같아요. 창고에 쌓아둔 느낌이죠. 어떤 디자인을 할 때 자연스럽게 매칭이 됩니다. 창고에서 '꺼내 쓸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튀어나와요. 보물들을 무의식적으로 쌓는 게 아닐까 싶어요."

▶스트레스는 어떻게 관리하나요.

"축구 PC 게임 하는데 사람들하고 안 하고 일부러 컴퓨터랑 해요. 이기는 걸 알면서 하는거죠. 사람과의 관계는 제가 원하는대로 안 될 때가 많은데 게임은 제 의도대로 골을 넣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줘요. 그리고 달리기요. 하루에 20~30분씩 뛰어요. 아침, 점심 정해놓은 건 없고 일 하다가 뛰고 싶단 생각이 들었을 때 뛰고 들어와요."

▶디자이너로 남고 싶으세요 관리자로 갈 계획인가요.

"관리(매니징)와 현업 트랙이 있는데, 현업을 오래하면 디렉터급으로 올라가기도 하고요. 저는 지금은 현업이 좋아요.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제가 디자인한 제품으로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게 재밌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 돕는 것도 좋고요. 하지만 언젠가는 관리자쪽으로도 가고 싶기도 하고요. 당장은 아니더라도요. 지금도 선택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제가 옮기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책도 읽고 영상도 해서 보물창고에 지식을 많이 쌓아두려고 하죠."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게 디자이너"
"계속 본인과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 지 고민해야"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느 디자인을 계속 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사용하면서 '편리하게 됐구나, 너무 즐거웠다' 그런 영향을 주고 싶습니다. 이름을 알리는 걸 목적으로 두진 않아요. 제가 열심히, 잘 하다보면 자연스럽겠죠."

▶본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영향력을 준 게 있다면요.

"저는 '저의 작품' 이런 큰 것보다는 작은 것들, 사람들을 웃게할 수 있고 그게 좋아요. 사람들의 멘토가 될 수 있는 점에서 나중에 교수 일도 생각해볼 수 있고요. 저는 분명해요. 나중에 지식을 좀 더 쌓아서 도와주는 역할, 삶의 노하우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그게 교수일 수도 있고요. 관리자일 수도 있고요. 종착점은 '저 때문에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다' 이 역할이면 행복하지 않을까요."

▶미국 사회에서 네트워킹의 어려움은 없나요.

"최대한 친절하려고 노력하고요, 캘리포니아는 인종적인 편견 이런 게 다른 지역에 비해 확실히 작은 것 같아요. 회사 내에 직원들도 여러 곳에서 와서 서로 존중해주고요. 물론 아시아 출신이라서 유리한 점은 없는 것 같아요. 결국 제가 좋은 제품을 출시해서 인정받는거죠."

▶미국에 오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요.

"한국은 디자인적인 스킬은 좋아요. 그런데 효율적으로 일을 하려면 본인이 뭘 원하는 지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어떻게 풀어갈 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면 수월해요.

▶겸손한 거 같아요.

"항상 제가 부족한 부분을 찾으려고 합니다. 발전시킬 수 있어야죠. 예를 들어 현재 제 부족한 부분은 예전보다 책과 거리가 멀다는 점이고, 뭘 쉽게 못 놓아요. 이걸 알기 때문에 시간이 날 때면 책을 잡으려고 하고 안 좋은 습관들을 고치려고 노력해요."

▶좋은디자이너는 어떤 사람일까요.

"디자인은 제가 표현하는 것과 사람들이 필요로하는 것의 '교집합'입니다. 디자이너는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항상, 꾸준히 고민해야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위해선 본인이 무엇을 원하며 행복을 느끼는 지 알아야해요. 본인을 잘 알아야 남들이 뭘 원하는 지 귀를 기울일 수 있어요. 사람들의 말을 안 듣는건지, 경험에 너무 의존하는 게 아닌지 이런 걸 고민해야해요."

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