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실이 산업통상자원부와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 8월까지 지난 5년 8개월간 총 774건의 산업기술 유출이 발생했다. 이 중 반도체‧조선‧디스플레이 등의 분야에서 ‘국가핵심기술’ 46건 유출됐고, 40건은 해외로 빠져나갔다. 올해도 8월까지 5건의 국가핵심기술이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유출된 국가핵심기술의 절반 이상이 중국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밖에 프랑스, 말레이시아 기업 등이 국내 기술을 빼갔다.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생명공학 등 12개 분야 71개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주요 기술로는 △액화가스 화물창, 연료탱크의 설계 및 제조 기술(조선) △D램에 해당되는 적층조립기술 및 검 사기술(반도체) △수소전기자동차 연료전지시스템 설계 및 공정·제조기술(자동차) △항체 대규모 발효정제 기술(생명공학) △초고속 데이터 송-수신이 가능한 기 가급 이동무선백홀 기술(정보통신) 등이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국가핵심기술은 국내외 시장에서 차지하는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아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의 안전 보장과 국민 경제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며 “정부가 국내 기업의 기술과 국가 산업의 경쟁력을 보호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유출된 774건의 산업기술을 살펴보면 기계(155건)가 가장 많고, 전기·전자(109건), 정보통신(72건), 자동차(63건) 순이었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산업‧기술유출은 2016년 139건에서 2017년 164건으로 증가했다. 2018년 137건, 2019년 126건으로 감소 추세를 보였지만, 지난해 152건으로 1년 새 20%나 증가하면서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이같은 기술 유출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5년간 해외로 빠져나간 산업기술로 인해 한국이 입은 경제적 피해가 최소 20조원 이상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국가핵심기술의 경우 한국이 갖고 있는 경쟁우위와 기술격차를 단번에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배터리,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차세대 먹거리로 꼽히는 업종에서 경쟁국의 ‘기술 빼가기’ 수법이 고도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 연구인력을 영입하기 위해 유령회사까지 설립하고 있다. 최근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등 배터리 산업 인재들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캐나다와 스웨덴 기업으로 대거 이직하는 일도 있었다. 특히 2025년까지 반도체 산업에 170조원을 투자하기로 중국은 ‘경력 10년 이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엔지니어 우대’라고 직접 사명까지 거론하며 인재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달 자율 주행 자동차 관련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50대 KAIST 교수가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등 관련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는 2017년 11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중국으로 넘어가 연구하면서 KAIST가 보유한 자율주행차량 ‘라이다(LIDAR)’ 관련 첨단기술 연구 자료 등을 중국 연구원에게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5월엔 국내 원자력 분야 연구정보가 집대성된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북한 해킹 조직으로부터 공격받기도 했다. 당시 원자력연구원의 직원 이메일, 개인 휴대전화 번호, 사내 아이디·비밀번호 등의 정보가 해커들에게 공유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엔 기업 인수·합병(M&A)를 통해 기술격차를 줄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매그나칩이 중국계 자본에 매각될 경우 올레드 분야에서 기술 유출이 우려된다. 산업부는 최근 GS컨소시엄의 휴젤인수도 기술유출 우려 있다고 보고 승인심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GS컨소시엄에 중국계 자본이 참여하고 있어서다.
정부도 핵심기술 유출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특허청은 최근 기술유출을 막기 위해서 기술경찰 인력을 기존 15명에서 22명으로 확충했다. 첨단산업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매각할 경우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고, 핵심전략산업 내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경우 일반산업보다 더 처벌 수위를 높이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경우 한번의 기술유출로 기업의 생존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국정원·검찰 등 수사 당국과 기업 간 공조 시스템을 만드는 등 기술·인재 유출 방지를 위한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지훈/안대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