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근본주의는 공생의 적이다
추석 연휴에 ‘집콕’하면서 접한 수많은 뉴스 가운데 가장 마음 아팠던 건 탈레반의 여성 탄압과 학대였다.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살인과 폭력, 각종 차별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서다.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은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는 공언과 달리 여전히 차별적 조치와 행태를 멈추지 않고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수도 카불에선 전체 공무원의 30%에 달하는 여성공무원들에게 출근 금지령이 내려졌다. 여학생은 남학생과 커튼 등으로 공간을 분리해 수업해야 하고, 눈을 제외한 전신을 가려야 한다. 여성의 스포츠 경기도 금지됐다. 여성부는 폐지됐고, 여성부 청사로 쓰였던 건물에는 탈레반의 권선징악부가 설치됐다. 권선징악부는 탈레반의 과거 통치 시기(1996~2001년)에 이슬람 율법을 수호하는 도덕경찰로 활동하며 사회를 억압하고 통제했던 기구다. 교육과 취업 등 여성의 사회·경제적 활동이 전면적으로 봉쇄되고 있는 것이다.

공포로 바뀐 탈레반의 인권 약속

“과거와는 다를 것”이라는 탈레반의 약속은 공포로 바뀐 지 오래다. 과거 집권기에 탈레반은 여성 인권을 극도로 억압했다. 교육받을 권리, 일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모든 여성은 집에 머물도록 강요했고 여성을 고용하면 고용주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직계가족 남성과 동행하지 않으면 여행도 할 수 없고 취미와 스포츠 활동도 불가했다. 이런 끔찍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며 거리 시위에 나선 여성들을 탈레반은 몽둥이와 채찍으로 진압했다.

탈레반은 자신들의 잔인무도한 행태를 ‘샤리아(이슬람 율법)’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하지만 탈레반이 내세우는 극단적인 이슬람근본주의는 진정한 의미의 이슬람이 아니라고 많은 이들이 비판한다. 코란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평화와 관용의 종교’인 이슬람을 극심하게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의 여성 차별 역사는 길고도 폭넓다. 가톨릭은 여성 사제를 허용하지 않고 있고, 국내 일부 개신교단은 여성 목사 안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불교의 경우 남성 출가자인 비구승이 지켜야 할 계율은 250가지인데 여성 출가자인 비구니의 계율은 348가지나 된다. 더욱이 비구니는 100세가 되더라도 처음 비구가 된 승려에게 먼저 절해야 한다는 등의 ‘비구니 팔경계(八敬戒)’는 불교계 여성 차별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종교를 빙자한 폭력의 허상

종교도 율법(계율)도 역사적·문화적 산물이다. 시대와 상황이 바뀌면 달라지거나 탄력적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 성공회는 여성사제를 허용하고 있고, 개신교의 여성목사 안수도 확대되는 추세다. 불교계에서도 비구니의 위상 문제가 오래 전부터 현안으로 대두돼 예전보다는 많이 향상됐다.

창교 초기부터 결혼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남성 교무와 달리 여성 교무의 독신생활을 지켜왔던 원불교는 2019년 독신 서약인 ‘정녀 지원서’ 제출을 의무화한 규정을 폐지했다. 일부 근본주의자들로 인해 지금도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지만, 몰몬교로 알려진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는 교단 초기에 허용했던 일부다처제를 미국 연방법의 금지 규정에 따라 1890년 전면 폐지했다.

성(聖)과 속(俗)은 둘이 아니다. 세속의 변화에 따라 종교의 영역도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전 지구가 개방된 글로벌 체제로 재편되는 마당에 율법을 빙자해 여성의 사회활동과 인권 실현을 타락한 서구문명에 오염된 것으로 매도하는 것은 종교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 탈레반은 이 평범한 사실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