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도박판과 삶은 닮은꼴…합리적 판단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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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프
마리아 코니코바 지음 / 김태훈 옮김
한국경제신문 / 468쪽│2만원
포커 세계 챔피언 된 심리학자 이야기
본능과 경험은 갈림길에서 우리 눈 가려
데이터 대신 느낌에 따른 결정은 실패
포커 고수들이 승리하는 비결은 '정확성'
마리아 코니코바 지음 / 김태훈 옮김
한국경제신문 / 468쪽│2만원
포커 세계 챔피언 된 심리학자 이야기
본능과 경험은 갈림길에서 우리 눈 가려
데이터 대신 느낌에 따른 결정은 실패
포커 고수들이 승리하는 비결은 '정확성'
싸늘하다. 도박판은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 공간이다. 그런데도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걱정하지 않는다. 손이 눈보다 빠르다고 믿으면서, 혹은 운이 자신의 편이라고 확신하면서…. 사람이 계획할 때 신(神)은 그저 웃을 뿐이다.
《블러프》는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심리학자가 포커에 입문한 지 1년 만에 세계 대회에서 우승한 특출난 사연을 소개한 책이다. 카드 한 벌이 몇 장인지도 모르던 인물이 포커 세계 챔피언의 개인지도를 받으며 라스베이거스와 몬테카를로, 마카오 같은 ‘도박 천국’을 누비는 무협지 같은 스토리가 펼쳐진다.
책은 단순한 포커 성공담에 머물지 않고, 포커에서 끄집어낸 인생의 통찰을 정면으로 다룬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운과 확률, 전략과 심리의 상관관계를 논하면서 삶을 ‘플레이’하는 올바른 길을 찾아 나선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포커가 삶의 축소판이란 사실이다. 수많은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포커판은 인생과 공통점이 많다. 도박에서 돈을 따는 것은 가장 복잡한 확률 분포의 미로를 헤매는 것이다. 최악의 패로도 이길 수 있고, 최고의 패로도 질 수 있다. 실제 최고의 패가 이기는 경우는 평균 12%에 불과하다.
단 한 판도 이전과 같은 게임은 없다. 1000쪽을 읽어도 줄거리를 파악하기 어려운 《전쟁과 평화》와 같은 복잡하고 지루한 게임이 있는 반면 셰익스피어의 희곡처럼 시작하자마자 참여자의 절반이 죽어버리는 초고속 게임도 있다.
포커판에 참여한 플레이어는 모두가 공평하게, 마지막 순간까지 진실의 일면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모두에게 개방된 일부 카드, 손에 쥔 패만 볼 수 있다.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패가 얼마나 강한지, 다른 사람이 어떤 패를 들었다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베팅한다. 불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상대의 베팅 패턴에서 유추하는 진실에는 한계가 있는 게 당연하다.
인생처럼 게임의 향방을 바꾸는 변수는 인간의 감정이다. 자제력과 흥분, 욕망의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대하는 미묘한 차이가 승부를 가른다. 일찌감치 스트레이트를 손에 쥐고도 끝까지 체크만 해나가는 의지, 최고의 패를 가졌다는 사실을 교묘히 숨겨 상대를 옭아매는 전략, 처음부터 이기고 있었음에도 상대가 이기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기만이 난무한다. 포커를 칠 때는 카드를 보고 플레이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보고 플레이해야 한다.
그 와중에 본능과 경험은 수많은 인생의 갈림길에서처럼 우리의 눈을 가린다. 대개의 경험은 왜곡된 탓에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험 대다수는 대부분 현재 상황과는 무관하다. 데이터가 아니라 육감이나 직관, 혹은 옳을 것 같은 느낌에 따라 내린 결정은 실패의 지름길일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0.034초 만에 상대방의 얼굴형이나 표정 같은 첫인상에 좌우되며 애써 마련한 전략을 바꾸곤 한다.
사람들이 기술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사업이나 투자나, 도박판이나 매한가지다. 하수들은 그저 좋은 카드를 받아 판돈을 쓸어 담거나 블러핑으로 모두를 속이면 된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포커로 성공하려면 투자로 성공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은 산전수전 다 겪은 ‘선수’들은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정작 운이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고수들의 세계에서일 뿐이다.
이처럼 포커의 세계는 사람의 생애처럼 현실적이면서도 실험적이기도 하다. 대박과 쪽박을 나누는 결단(pluck)과 운(luck)은 영어에선 문자 그대로 한 글자 차이일 뿐이지만, 그 간극은 넓고도 넓다. 실상은 우연의 법칙을 따르고 있을 뿐인데도 스스로 통제력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서글픈 자화상을 보는 것은 다반사다. 모두가 듣고 싶은 메시지만 듣고, 환경의 지배자가 되고 싶어 하면서도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잘 알지 못한다.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고수들의 먹잇감이 돼간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난무하는 복잡한 게임판에서 한 수 앞을 내다보는 규칙을 읽을 수는 없는 것일까. 저자는 포커의 원리를 따져보는 과정은 인간이 어떻게 상황을 인식하고 결정하는지를 되짚어 보는 시도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놀랍게도 고수들이 주목하는 포커의 핵심은 정확성이다. 우연과 운의 산물 같아 보여도 포커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한 자에게 보상을 내린다는 것이다. 일확천금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우리가 언제 진정한 통제력을 획득할 수 있는지, 어떻게 운에 대처할 수 있는지, 어떻게 인생에서 최고의 결정을 내리는지도 포커는 가르쳐 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지불할 ‘수업료’가 적지는 않겠지만….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블러프》는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심리학자가 포커에 입문한 지 1년 만에 세계 대회에서 우승한 특출난 사연을 소개한 책이다. 카드 한 벌이 몇 장인지도 모르던 인물이 포커 세계 챔피언의 개인지도를 받으며 라스베이거스와 몬테카를로, 마카오 같은 ‘도박 천국’을 누비는 무협지 같은 스토리가 펼쳐진다.
책은 단순한 포커 성공담에 머물지 않고, 포커에서 끄집어낸 인생의 통찰을 정면으로 다룬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운과 확률, 전략과 심리의 상관관계를 논하면서 삶을 ‘플레이’하는 올바른 길을 찾아 나선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포커가 삶의 축소판이란 사실이다. 수많은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포커판은 인생과 공통점이 많다. 도박에서 돈을 따는 것은 가장 복잡한 확률 분포의 미로를 헤매는 것이다. 최악의 패로도 이길 수 있고, 최고의 패로도 질 수 있다. 실제 최고의 패가 이기는 경우는 평균 12%에 불과하다.
단 한 판도 이전과 같은 게임은 없다. 1000쪽을 읽어도 줄거리를 파악하기 어려운 《전쟁과 평화》와 같은 복잡하고 지루한 게임이 있는 반면 셰익스피어의 희곡처럼 시작하자마자 참여자의 절반이 죽어버리는 초고속 게임도 있다.
포커판에 참여한 플레이어는 모두가 공평하게, 마지막 순간까지 진실의 일면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모두에게 개방된 일부 카드, 손에 쥔 패만 볼 수 있다.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패가 얼마나 강한지, 다른 사람이 어떤 패를 들었다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베팅한다. 불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상대의 베팅 패턴에서 유추하는 진실에는 한계가 있는 게 당연하다.
인생처럼 게임의 향방을 바꾸는 변수는 인간의 감정이다. 자제력과 흥분, 욕망의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대하는 미묘한 차이가 승부를 가른다. 일찌감치 스트레이트를 손에 쥐고도 끝까지 체크만 해나가는 의지, 최고의 패를 가졌다는 사실을 교묘히 숨겨 상대를 옭아매는 전략, 처음부터 이기고 있었음에도 상대가 이기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기만이 난무한다. 포커를 칠 때는 카드를 보고 플레이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보고 플레이해야 한다.
그 와중에 본능과 경험은 수많은 인생의 갈림길에서처럼 우리의 눈을 가린다. 대개의 경험은 왜곡된 탓에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험 대다수는 대부분 현재 상황과는 무관하다. 데이터가 아니라 육감이나 직관, 혹은 옳을 것 같은 느낌에 따라 내린 결정은 실패의 지름길일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0.034초 만에 상대방의 얼굴형이나 표정 같은 첫인상에 좌우되며 애써 마련한 전략을 바꾸곤 한다.
사람들이 기술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사업이나 투자나, 도박판이나 매한가지다. 하수들은 그저 좋은 카드를 받아 판돈을 쓸어 담거나 블러핑으로 모두를 속이면 된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포커로 성공하려면 투자로 성공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은 산전수전 다 겪은 ‘선수’들은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정작 운이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고수들의 세계에서일 뿐이다.
이처럼 포커의 세계는 사람의 생애처럼 현실적이면서도 실험적이기도 하다. 대박과 쪽박을 나누는 결단(pluck)과 운(luck)은 영어에선 문자 그대로 한 글자 차이일 뿐이지만, 그 간극은 넓고도 넓다. 실상은 우연의 법칙을 따르고 있을 뿐인데도 스스로 통제력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서글픈 자화상을 보는 것은 다반사다. 모두가 듣고 싶은 메시지만 듣고, 환경의 지배자가 되고 싶어 하면서도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잘 알지 못한다.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고수들의 먹잇감이 돼간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난무하는 복잡한 게임판에서 한 수 앞을 내다보는 규칙을 읽을 수는 없는 것일까. 저자는 포커의 원리를 따져보는 과정은 인간이 어떻게 상황을 인식하고 결정하는지를 되짚어 보는 시도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놀랍게도 고수들이 주목하는 포커의 핵심은 정확성이다. 우연과 운의 산물 같아 보여도 포커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한 자에게 보상을 내린다는 것이다. 일확천금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우리가 언제 진정한 통제력을 획득할 수 있는지, 어떻게 운에 대처할 수 있는지, 어떻게 인생에서 최고의 결정을 내리는지도 포커는 가르쳐 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지불할 ‘수업료’가 적지는 않겠지만….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