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조선 왕족은 왜 갈치 대신 숭어를 즐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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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음식의 인문학
정혜경 지음
따비 / 400쪽│2만원
정혜경 지음
따비 / 400쪽│2만원
한국만큼 미역을 즐겨 먹는 나라도 없다. 미역국에서부터 미역무침, 미역쌈, 미역자반, 미역찬국까지 없는 미역 요리가 없다. 세계에서 미역은 한국과 일본 등 몇몇 나라만 먹는데, 일본에서도 미소된장국에 미역을 넣어 먹는 정도다. 한국인은 대체 언제부터 미역을 좋아하게 된 걸까.
《바다음식의 인문학》은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이다. 저자인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그동안 《밥의 인문학》 《채소의 인문학》 《고기의 인문학》 등의 책을 통해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의 역사와 문화, 정서를 쉽게 풀어냈다. 이번엔 바다음식과 관련한 이야기를 친근하게 들려준다.
중국 당나라 때 편찬된 일종의 백과사전인 《초학기(初學記)》에 “고래가 새끼를 낳고 미역을 뜯어 먹은 뒤 산후의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을 보고 고구려 사람들이 산모에게 미역을 먹인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에 사신으로 다녀간 송나라 문신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미역을 이렇게 소개했다. “귀천없이 즐겨 먹고 있다. 그 맛이 짜고 비린내가 나지만 오랫동안 먹으면 그저 먹을 만하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의 《성호사설》에도 미역이 임산부에게 신선의 약만큼 좋은 음식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한반도 곳곳에 남아 있는 패총(조개더미)에서 보듯 한국인들은 선사시대부터 수산물을 먹고 살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생선과 해초를 즐겨 먹은 건 고려시대부터였다. 양고기, 돼지고기는 귀해 일반 백성은 거의 먹지 못했다. 불교 국가여서 육식을 장려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대신 미꾸라지, 전복, 굴, 새우, 다시마 등 각종 수산물은 서민들도 즐겨 먹었다.
고기보다 생선을 더 많이 먹은 건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스웨덴 종군기자 아손 그렙스트는 1904년 조선을 여행한 후 쓴 책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생선은 쌀 다음으로 코레아 사람들의 주된 식료품이다.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고 가장 값싼 생선은 링(명태로 추정)이라고 불린다. 이 생선은 코레아의 동해안에서 대량으로 잡혀 말려진 다음 전국으로 공급된다.”
조선시대의 물고기 백과사전으로 1814년 정약전이 유배 생활 중 지은 《자산어보》가 가장 유명하다. 총 226종의 바다생물을 다뤄 당시로선 가장 방대하고 상세했다. 하지만 최초의 수산서로는 김려가 1803년 지은 《우해이어보》가 꼽힌다. 김려 역시 유배 생활을 하던 중 진해 앞바다에 생소한 물고기가 수없이 많은 걸 보고, 이를 관찰한 결과를 책에 담았다. 자산어보가 나오고 몇 년 뒤에는 실학자 서유구가 《난호어목지》와 《전어지》를 펴내 바다 생물에 대한 지식은 더욱 깊어졌다.
옛날엔 어떤 생선이 인기였을까. 조선시대 왕족이나 양반들은 삼치, 갈치, 고등어를 즐기지 않았다. 등 푸른 생선은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을 듬뿍 갖고 있지만 그만큼 산패가 빨랐다. 저자는 “냉장 시설이 부족했던 조선시대에는 아무리 맛이 좋아도 먹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준치는 ‘생선의 귀족’으로 불렸고, 예로부터 서울에서 즐겨 먹었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숭어는 왕실 기록에 가장 많이 나오는 생선이다. 예나 지금이나 최고 어종으로 대접받는 도미는 국, 탕, 조림, 구이, 찜 등 다양한 음식으로 만들어 먹었다.
저자는 우리가 먹는 해산물 요리가 어떻게 유래했는지, 어떻게 요리하면 더 맛있게,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지도 설명한다. 식품영영학자답게 “오메가3 알약보다 1주일에 두세 번 생선을 먹는 게 건강에 훨씬 이롭다”거나 “수은 축적을 막기 위해선 셀레늄이 풍부한 살코기류, 곡류, 견과류, 우유 및 유제품을 먹는 게 좋다”는 조언도 빼놓지 않는다.
책의 깊이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바다음식이 한국인의 생활상과 문화, 건강, 제도 등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발달해왔는지 밝히기보다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 치중한다. 그래도 우리 바다음식의 역사를 한눈에 훑어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교양서로는 훌륭하다.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점도 미덕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바다음식의 인문학》은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이다. 저자인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그동안 《밥의 인문학》 《채소의 인문학》 《고기의 인문학》 등의 책을 통해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의 역사와 문화, 정서를 쉽게 풀어냈다. 이번엔 바다음식과 관련한 이야기를 친근하게 들려준다.
중국 당나라 때 편찬된 일종의 백과사전인 《초학기(初學記)》에 “고래가 새끼를 낳고 미역을 뜯어 먹은 뒤 산후의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을 보고 고구려 사람들이 산모에게 미역을 먹인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에 사신으로 다녀간 송나라 문신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미역을 이렇게 소개했다. “귀천없이 즐겨 먹고 있다. 그 맛이 짜고 비린내가 나지만 오랫동안 먹으면 그저 먹을 만하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의 《성호사설》에도 미역이 임산부에게 신선의 약만큼 좋은 음식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한반도 곳곳에 남아 있는 패총(조개더미)에서 보듯 한국인들은 선사시대부터 수산물을 먹고 살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생선과 해초를 즐겨 먹은 건 고려시대부터였다. 양고기, 돼지고기는 귀해 일반 백성은 거의 먹지 못했다. 불교 국가여서 육식을 장려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대신 미꾸라지, 전복, 굴, 새우, 다시마 등 각종 수산물은 서민들도 즐겨 먹었다.
고기보다 생선을 더 많이 먹은 건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스웨덴 종군기자 아손 그렙스트는 1904년 조선을 여행한 후 쓴 책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생선은 쌀 다음으로 코레아 사람들의 주된 식료품이다.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고 가장 값싼 생선은 링(명태로 추정)이라고 불린다. 이 생선은 코레아의 동해안에서 대량으로 잡혀 말려진 다음 전국으로 공급된다.”
조선시대의 물고기 백과사전으로 1814년 정약전이 유배 생활 중 지은 《자산어보》가 가장 유명하다. 총 226종의 바다생물을 다뤄 당시로선 가장 방대하고 상세했다. 하지만 최초의 수산서로는 김려가 1803년 지은 《우해이어보》가 꼽힌다. 김려 역시 유배 생활을 하던 중 진해 앞바다에 생소한 물고기가 수없이 많은 걸 보고, 이를 관찰한 결과를 책에 담았다. 자산어보가 나오고 몇 년 뒤에는 실학자 서유구가 《난호어목지》와 《전어지》를 펴내 바다 생물에 대한 지식은 더욱 깊어졌다.
옛날엔 어떤 생선이 인기였을까. 조선시대 왕족이나 양반들은 삼치, 갈치, 고등어를 즐기지 않았다. 등 푸른 생선은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을 듬뿍 갖고 있지만 그만큼 산패가 빨랐다. 저자는 “냉장 시설이 부족했던 조선시대에는 아무리 맛이 좋아도 먹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준치는 ‘생선의 귀족’으로 불렸고, 예로부터 서울에서 즐겨 먹었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숭어는 왕실 기록에 가장 많이 나오는 생선이다. 예나 지금이나 최고 어종으로 대접받는 도미는 국, 탕, 조림, 구이, 찜 등 다양한 음식으로 만들어 먹었다.
저자는 우리가 먹는 해산물 요리가 어떻게 유래했는지, 어떻게 요리하면 더 맛있게,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지도 설명한다. 식품영영학자답게 “오메가3 알약보다 1주일에 두세 번 생선을 먹는 게 건강에 훨씬 이롭다”거나 “수은 축적을 막기 위해선 셀레늄이 풍부한 살코기류, 곡류, 견과류, 우유 및 유제품을 먹는 게 좋다”는 조언도 빼놓지 않는다.
책의 깊이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바다음식이 한국인의 생활상과 문화, 건강, 제도 등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발달해왔는지 밝히기보다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 치중한다. 그래도 우리 바다음식의 역사를 한눈에 훑어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교양서로는 훌륭하다.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점도 미덕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