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한 아빠가 남긴 빚이 3억"…실화가 된 '나의 아저씨' [하수정의 돈(Money)텔마마]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빚 상속에 고통받는 아이들…파산 내몰려
"미성년자 보호장치 마련 시급"
"미성년자 보호장치 마련 시급"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간 A양은 첫 월급날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돈을 압류당했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알아보니 5년전 사망한 아버지가 갚지 않은 빚이 원금 1억원에 십 수년간 이자까지 붙어 3억원에 달했고, 고스란히 A양에게 상속됐다. A양이 10세 되던 해 사망한 어머니 대신 줄곧 A양을 돌봐 온 할아버지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급급했다. 그동안 수 차례 날라왔던 독촉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A양은 사회에 첫 발을 들여놓자마자 월급을 제대로 받아보지도 못한 채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초등학생 5학년인 B군은 백일도 되기전 집을 나간 어머니, 건설일용직을 하며 전국을 돌아다니는 아버지 대신 친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지난해 갑자기 B군 명의로 얼굴도 모르는 외할머니의 빚 5000만원을 갚으라는 소장이 날라들었다. 사망한 외할머니의 빚을 물려받지 않으려고 B군의 어머니가 '상속 포기'를 하는 바람에 그 다음 후순위 상속인인 B군한테 채무가 넘어온 것이다. 미성년자인 B군은 연락두절된 친권자 어머니로부터 동의를 받지 못해 상속 포기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처지다.
이 이야기들은 실화다. 드라마에나 나오는 비극이 아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이나 서울시복지재단 산하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등 법률지원기관에는 부모의 빚을 물려받고 고통받는 아이들의 사례가 부지기수다. 코로나19 이후로는 더 많아졌다.
비정한 자본주의는 나의 실패를 나에게서 끝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내가 포기하면 내 자식, 부모, 형제, 친인척들에게까지 실패의 굴레를 씌우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다. 반드시 평소에 나의 모든 재산과 빚을 기록하고 자녀들에게 신용을 가르쳐야하는 이유다.
상속 1순위는 배우자와 직계비속(자녀, 손자녀)이고 2순위가 배우자와 직계존속(부모, 조부모), 3순위는 형제자매, 마지막 4순위가 4촌 이내 방계혈족이다. 이모, 고모, 조카 , 백부, 숙부 등 3촌 뿐 아니라 이모의 딸, 아버지 형의 아들, 할아버지의 동생 등 4촌까지 거미줄이 쳐져있는 것이다.
가수 아이유가 주인공 이지안 역을 맡았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도 지안은 엄마의 빚을 물려받았다. 지안은 빚을 갚기 위해 온갖 고생에 범죄까지 저지르며 힘겹게 살아간다. 청소부 춘대(이영석)는 동훈(이선균)에게 지안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설명한다. "갚아도 갚아도 끝이 없는 돈이었어요. 그 어린 애가 맨날 빚쟁이들에게 들들 볶이고. 그러니 별수 있나. 그놈이 시키는 일을 다하는 수 밖에."
이 같은 경제적 연좌제가 일부에겐 처절하게나마 삶을 버티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최근 장기간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면서 폐업 위기와 빚에 시달리는 자영업자들은 "가족에게 빚을 남겨줄까봐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다"고 외치고 있다.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1000여명이 참여하는 온라인 단체대화방에서 매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며 "빚은 죽는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가족에게 산더미 같은 빚을 물려주지 않아야한다며 서로를 붙들어주고 있다"고 전했다.
상속포기는 상속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재산·빚 모두 물려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신, 내가 상속을 포기하면, 나 다음의 후순위 상속인에게 재산과 빚이 넘어간다. 앞서 B군이 외할머니의 빚을 떠안게 된 것도 어머니가 상속을 포기해 B군에게 넘어왔다. 무조건 상속을 포기하다가는 또 다른 비극을 낳는다.
법률 전문가들은 부모의 빚이 재산보다 더 많거나 또는 얼마의 빚이 있는지 잘 모를 때 한정승인을 신청할 것을 조언한다. 한정승인은 상속받은 재산 한도 내에서만 빚을 갚는 것을 뜻한다. 드라마에서 지안이 한정승인을 했다면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빚을 갚기 위해 노예처럼 살지 않아도 됐었다는 뜻이다.
다만, 한정승인 절차를 밟고 빚을 청산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아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한정승인을 받으면 '채권을 신고하라'는 신문 공고를 2개월 이상 내야하고 각 채권액의 비율로 빚을 갚아야 한다. 빚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을 때는 그 사실을 알게 된 날로부터 3개월 내에 ‘특별 한정승인’을 신청하는 제도도 있다.
하지만 이 제도들은 만 19세 미만 미성년자가 활용하기엔 한계가 많다. 미성년자는 법상 독립적인 능력이 제한된다. 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하기 위해선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법정대리인에 의해서만 소송을 할 수 있다. 미성년자는 본인이 아닌, 법정 대리인이 인지한 시점을 기준으로 상속포기나 한정승인 신청기한을 산정하고 있다. 앞의 사례에서 A양이 통장에서 월급을 압류당했던 것도 법에 무지했던 할아버지가 A양 아버지의 죽음을 인지한 지 석 달이 지나도록 상속 여부를 신고하지 않은 영향이다.
전가영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는 "상속개시 3개월이 지나도록 인지하지 못하거나 손을 놓고 있다가 미성년자가 본인도 모르게 빚이 상속돼 뒤늦게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이어지고 있다"며 "부모가 이혼하거나 사망해 조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경우, 장애인 편부모를 둔 아이, 시설에 맡겨진 아이 등 결손가정과 극빈층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미성년자의 법정대리인이 제대로 그 역할을 하지 않을 경우엔 국가와 사회가 미성년자를 보호해야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 3월까지 미성년자 80명이 법원에 개인파산 신청을 했다. 부모로부터 대물림 된 빚과 가난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성년이 되기도 전에 파산을 하게 된 경우다. 이들은 5년간 금융거래조차 할 수 없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최근 빚 대물림 방지와 관련한 민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의 최기상, 백혜련, 이병훈 의원도 각각 미성년자의 빚 상속 부담을 덜어주는 법을 내놨다. 이들 개정안은 지난 6월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 회부된 후 아직까지 국회에서 적극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주기적으로 개인의 빚을 탕감하고 대출만기를 연장해주고 있으면서도, 정작 법적 보호가 필요한 미성년자의 상속 빚에 대해선 손을 놓고 있다.
서울 자치구에서 청소년 보호시설 지원업무을 담당했던 한 공무원은 "가정폭력때문에 가출한 아이, 어릴 때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가 부모의 빚을 물려받게 되는 경우까지 봤다"고 전했다. 그는 "채권·채무의 책임과 의무를 지키는 것이 자본주의 원칙이라지만, 법적 보호를 받아야할 피해 아동이 일종의 가해를 한 부모의 빚까지 부담하는 것은 사회가 막아줘야하지 않겠나"라고 토로했다.
'나의 아저씨' 드라마에선 할머니의 장례를 홀로 치르고 있던 지안을 위해 온 동네 어른들은 빈소로 달려왔다. "꼭 갚을게요" 라고 말하는 지안에게 동네 아저씨는 이렇게 위로했다. "뭘 갚아요, 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 거 아니에요." 드라마 말고 현실에서는 비뚤고 소외된 삶을 살고 있는 아이들을 보듬어주는 어른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
초등학생 5학년인 B군은 백일도 되기전 집을 나간 어머니, 건설일용직을 하며 전국을 돌아다니는 아버지 대신 친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지난해 갑자기 B군 명의로 얼굴도 모르는 외할머니의 빚 5000만원을 갚으라는 소장이 날라들었다. 사망한 외할머니의 빚을 물려받지 않으려고 B군의 어머니가 '상속 포기'를 하는 바람에 그 다음 후순위 상속인인 B군한테 채무가 넘어온 것이다. 미성년자인 B군은 연락두절된 친권자 어머니로부터 동의를 받지 못해 상속 포기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처지다.
이 이야기들은 실화다. 드라마에나 나오는 비극이 아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이나 서울시복지재단 산하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등 법률지원기관에는 부모의 빚을 물려받고 고통받는 아이들의 사례가 부지기수다. 코로나19 이후로는 더 많아졌다.
비정한 자본주의는 나의 실패를 나에게서 끝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내가 포기하면 내 자식, 부모, 형제, 친인척들에게까지 실패의 굴레를 씌우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다. 반드시 평소에 나의 모든 재산과 빚을 기록하고 자녀들에게 신용을 가르쳐야하는 이유다.
"빚은, 죽는다고 없어지지 않아."
민법 제1005조에 따르면 피상속인이 사망하면 상속인은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한 포괄적 권리의무를 승계한다. 쉽게 얘기하면, 부모가 사망하면 자녀는 부모의 재산을 상속할 뿐 아니라 빚을 갚을 책임까지 물려받게 된다는 뜻이다.상속 1순위는 배우자와 직계비속(자녀, 손자녀)이고 2순위가 배우자와 직계존속(부모, 조부모), 3순위는 형제자매, 마지막 4순위가 4촌 이내 방계혈족이다. 이모, 고모, 조카 , 백부, 숙부 등 3촌 뿐 아니라 이모의 딸, 아버지 형의 아들, 할아버지의 동생 등 4촌까지 거미줄이 쳐져있는 것이다.
가수 아이유가 주인공 이지안 역을 맡았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도 지안은 엄마의 빚을 물려받았다. 지안은 빚을 갚기 위해 온갖 고생에 범죄까지 저지르며 힘겹게 살아간다. 청소부 춘대(이영석)는 동훈(이선균)에게 지안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설명한다. "갚아도 갚아도 끝이 없는 돈이었어요. 그 어린 애가 맨날 빚쟁이들에게 들들 볶이고. 그러니 별수 있나. 그놈이 시키는 일을 다하는 수 밖에."
이 같은 경제적 연좌제가 일부에겐 처절하게나마 삶을 버티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최근 장기간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면서 폐업 위기와 빚에 시달리는 자영업자들은 "가족에게 빚을 남겨줄까봐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다"고 외치고 있다.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1000여명이 참여하는 온라인 단체대화방에서 매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며 "빚은 죽는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가족에게 산더미 같은 빚을 물려주지 않아야한다며 서로를 붙들어주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유가 '한정승인'을 알았더라면...
현행법에는 상속인이 과도한 빚을 물려받지 않기 위한 장치들이 있다. ‘상속포기’ 또는 ‘한정승인’이란 제도다. 둘 다 ‘상속개시(사망)’를 알게 된 날로부터 3개월 내 법원에 신청해야 한다.상속포기는 상속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재산·빚 모두 물려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신, 내가 상속을 포기하면, 나 다음의 후순위 상속인에게 재산과 빚이 넘어간다. 앞서 B군이 외할머니의 빚을 떠안게 된 것도 어머니가 상속을 포기해 B군에게 넘어왔다. 무조건 상속을 포기하다가는 또 다른 비극을 낳는다.
법률 전문가들은 부모의 빚이 재산보다 더 많거나 또는 얼마의 빚이 있는지 잘 모를 때 한정승인을 신청할 것을 조언한다. 한정승인은 상속받은 재산 한도 내에서만 빚을 갚는 것을 뜻한다. 드라마에서 지안이 한정승인을 했다면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빚을 갚기 위해 노예처럼 살지 않아도 됐었다는 뜻이다.
다만, 한정승인 절차를 밟고 빚을 청산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아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한정승인을 받으면 '채권을 신고하라'는 신문 공고를 2개월 이상 내야하고 각 채권액의 비율로 빚을 갚아야 한다. 빚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을 때는 그 사실을 알게 된 날로부터 3개월 내에 ‘특별 한정승인’을 신청하는 제도도 있다.
하지만 이 제도들은 만 19세 미만 미성년자가 활용하기엔 한계가 많다. 미성년자는 법상 독립적인 능력이 제한된다. 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하기 위해선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법정대리인에 의해서만 소송을 할 수 있다. 미성년자는 본인이 아닌, 법정 대리인이 인지한 시점을 기준으로 상속포기나 한정승인 신청기한을 산정하고 있다. 앞의 사례에서 A양이 통장에서 월급을 압류당했던 것도 법에 무지했던 할아버지가 A양 아버지의 죽음을 인지한 지 석 달이 지나도록 상속 여부를 신고하지 않은 영향이다.
전가영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는 "상속개시 3개월이 지나도록 인지하지 못하거나 손을 놓고 있다가 미성년자가 본인도 모르게 빚이 상속돼 뒤늦게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이어지고 있다"며 "부모가 이혼하거나 사망해 조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경우, 장애인 편부모를 둔 아이, 시설에 맡겨진 아이 등 결손가정과 극빈층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보호자 없는 미성년자는 누가 보호하나
특히 부모가 사망한 후 부모의 재산과 빚이 얼마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난데없이 날라오는 빚 독촉장은 아이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 수 있다. 은행 대출, 카드 빚 등 제도권 채무 뿐 아니라 사채업자들에게 빌린 채무까지도 자녀에게 상속이 된다. 언제 얼마나 누구에게 빚을 졌는지 기록해놓아야하는 이유다.미성년자의 법정대리인이 제대로 그 역할을 하지 않을 경우엔 국가와 사회가 미성년자를 보호해야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 3월까지 미성년자 80명이 법원에 개인파산 신청을 했다. 부모로부터 대물림 된 빚과 가난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성년이 되기도 전에 파산을 하게 된 경우다. 이들은 5년간 금융거래조차 할 수 없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최근 빚 대물림 방지와 관련한 민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의 최기상, 백혜련, 이병훈 의원도 각각 미성년자의 빚 상속 부담을 덜어주는 법을 내놨다. 이들 개정안은 지난 6월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 회부된 후 아직까지 국회에서 적극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주기적으로 개인의 빚을 탕감하고 대출만기를 연장해주고 있으면서도, 정작 법적 보호가 필요한 미성년자의 상속 빚에 대해선 손을 놓고 있다.
서울 자치구에서 청소년 보호시설 지원업무을 담당했던 한 공무원은 "가정폭력때문에 가출한 아이, 어릴 때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가 부모의 빚을 물려받게 되는 경우까지 봤다"고 전했다. 그는 "채권·채무의 책임과 의무를 지키는 것이 자본주의 원칙이라지만, 법적 보호를 받아야할 피해 아동이 일종의 가해를 한 부모의 빚까지 부담하는 것은 사회가 막아줘야하지 않겠나"라고 토로했다.
'나의 아저씨' 드라마에선 할머니의 장례를 홀로 치르고 있던 지안을 위해 온 동네 어른들은 빈소로 달려왔다. "꼭 갚을게요" 라고 말하는 지안에게 동네 아저씨는 이렇게 위로했다. "뭘 갚아요, 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 거 아니에요." 드라마 말고 현실에서는 비뚤고 소외된 삶을 살고 있는 아이들을 보듬어주는 어른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