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태성 북한 외무성 부상은 24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종전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인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 남아있는 한 종전선언은 허상에 불과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관련 측들이 아무런 법적 구속력도 없는 종전선언문을 들고 사진이나 찍으면서 의례행사를 벌려놓는 것만으로 조선반도에 평화가 찾아오면 그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이라며 “눈앞의 현실은 종전선언 채택이 시기상조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담화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에서 남·북·미, 남·북·미·중 간 종전선언을 제안한지 이틀 만에 나왔다. 지난 15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처럼 문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문 대통령의 발언 직후 이를 즉각 반박한 것이다. 2018년 9월 이후 종전선언에 대한 명확한 의사를 밝히지 않던 북한이 즉각 ‘시기상조’라며 자신들의 주장을 명확하게 내놓은 것도 이례적이다.
종전선언에 앞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가 우선이라는 주장도 재차 강조했다. 리태성은 “종잇장에 불과한 종전선언이 우리에 대한 적대시 철회로 이어진다는 그 어떤 담보도 없다”며 “미국·남조선 동맹이 계속 강화되는 속에서 종전선언은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파괴하고 북과 남을 끝이 없는 군비경쟁에 몰아넣는 참혹한 결과만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올해 2월과 8월에 미국 본토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진행된 ‘미니트맨-3’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도, 5월에 전격 발표된 미국·남조선(한·미) 미사일지침 종료 선언도, 일본과 남조선에 대한 수십억 달러 분의 무장장비 판매 승인도 모두 우리를 겨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반도 정세 불안정의 책임은 모두 미국에 돌리며 자신들의 불법적 핵개발을 ‘군비경쟁’으로 치환하는 논리는 이번 담화에도 적용됐다. 리태성은 “조선반도에서 산생되는 모든 문제의 밑바탕에는 예외 없이 미국의 대(對)조선 적대시 정책이 놓여있다”며 “우리의 정당한 국방력 강화조치는 도발로 매도되고 우리를 위협하는 미국과 추종 세력들의 군비 증강행위는 억제력 확보로 미화되는 미국식 이중기준도 대조선적대시 정책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오히려 미국남조선동맹이 계속 강화되는 속에서 종전선언은 지역의 전략적균형을 파괴하고 북과 남을 끝이 없는 군비경쟁에 몰아넣는 참혹한 결과만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라고 밝히며 한·미 동맹과 자신들의 핵개발과 동급이라는 논리를 앞세웠다.
다만 북한은 “눈앞의 현실은 종전선언채택이 시기상조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밝히며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 선제적 조치를 취한다면 종전선언을 수용할 수 있다는 여지도 남겼다. 특히 이번 담화는 종전선언에 대해 “지금까지 장기간 지속돼 오고 있는 조선반도의 정전 상태를 끝낸다는 것을 공개하는 정치적 선언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는 있다”며 “앞으로 평화 보장 체계 수립으로 나아가는데 있어 종전을 선언하는 것은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