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서 채굴한 경영 스티커 메시지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광고학회 제24대 회장)
‘부적절’이란 키워드로 기사 검색을 해보면 순식간에 이처럼 많은 내용이 쏟아져 나온다. 부적절한 것들이 우리 사회의 도처에 널려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근거가 아닐까 싶다.
언론 보도에서 적절하지 않은 것들을 그토록 자주 지적한 까닭은 무엇일까? 적절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우리 사회가 건강해진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으리라.
그렇다면 얼마나 적절해야 제대로 적절하다고 할 수 있을까?
벤슨 앤 헤지스100의 광고 ‘단점’ 편(1968)은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체화시켜야 적절한 표현이 되는지 생각하도록 한다. 담배 길이가 길다는 제품의 특성을 알리기 위한 헤드라인을 이렇게 표현했다.
“벤슨 앤 헤지스100 광고의 단점.” 무슨 말인가 싶어 비주얼을 보니 세 손가락으로 들고 있는 담배 끝이 구부러져 있다.
담배 길이가 너무 길기 때문에 광고 지면에 담배 한 개비를 온전히 배치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다른 담배보다 길이가 길다는 제품의 특성을 과장법을 써서 이처럼 적절하게 표현했다.
벤슨 앤 헤지스(Benson & Hedges)는 1873년에 탄생한 영국의 담배 브랜드이다. 과도한 흡연으로 유명했던 영국왕 조지 6세가 선호하던 담배 브랜드인데, 1958년에 미국의 필립모리스사에 인수된 이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광고를 본 애연가들은 담배가 똑바로 배치되지 않고 왜 끝이 구부러진 채 소개됐는지 의문을 가졌으리라.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이유가 금방 드러나는데, 부적절한 표현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애연가들은 담배의 특성을 쉽게 드러낸 적절한 표현 기법에 무릎을 쳤을 것이다. 또 다른 광고인 벤슨 앤 헤지스100의 ‘바다가재’ 편(1975)에서는 다른 담배보다 길이가 길다는 특성을 알리기 위해 더 재미있는 상황을 제시했다.
연인끼리 수조에 담겨있는 바다가재(랍스터)를 구경하고 있는데, 바다가재가 집게다리로 남자가 피던 담배를 낚아채는 상황이 발생했다.
헤드라인은 이렇다. “오, 긴 담배의 단점. 벤슨 앤 헤지스100.” 더 자세히 보려고 바다가재 쪽으로 얼굴을 더 가까이 댔다가 담배를 빼앗기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졌다. 여자 친구는 재미있다는 듯 빙그레 웃고 있다.
담배 길이가 더 길어서 발생하는 일상의 소재에 초점을 맞춘 재치 있는 광고들이다. 창작자들은 1960~70년대에 벌써 제품의 특성을 쉽게 알릴 적절한 표현 기법을 찾으려 노력해왔다.
수다 떨다가 긴 담배 때문에 상대방의 수염을 태우는 광고도 있다. 감독의 큐 사인을 받고 영화 촬영 장면을 적은 클래퍼보드(clapper board)를 치자, 물고 있던 담배가 순간적으로 잘려나가기도 한다.
일상의 단면을 통해 긴 담배의 특성을 흥미롭게 묘사한 적절한 표현 기법에 애연가들도 열광하며 호응했을 것이다. 두 광고에서 채굴한 경영의 스티커 메시지는 적절성(Appropriateness)이다. 적절성이란 어떤 상황이나 분위기에 알맞은 정도나 성질을 의미한다.
“분위기 파악 좀 해라!” 일상생활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같은 말이라도 분위기에 맞지 않게 함부로 내뱉으면 부적절한 발언이 된다.
깊이 관심 갖지 않으면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부적절한 발언을 하기 쉽다. 모든 상황에서 적절성이 중요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가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궁수의 비유’를 들며 적절성을 강조했다. 노련한 궁수(弓手)는 멀리 있는 목표를 겨냥할 때 표적보다 더 높게 겨누는데, 그 곳을 맞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높이 겨냥해야 화살이 적절하게 표적으로 날아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적 목적과 수단이 적절해야 한다는 ‘목적과 수단의 적절성’을 궁수의 비유를 들어 주장했다.
기업 경영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목적과 수단의 적절성 논란이 수시로 벌어진다. 홍보 예산을 늘린 것이 적절했는지, 코로나19 상황에서 친선 골프대회를 개최한 것이 적절했는지, 환자에게 투여한 약물 용량이 적절했는지, 성추행 사건의 처리 과정이 적절했는지, 아이스버킷 챌린지의 의도가 적절했는지, 정책 목표와 정책 수단이 적절했는지 등 적절성 여부가 숱한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정치인은 공약 적절성이, 경영자는 판단 적절성이 자주 도마에 오른다.
말이나 글에서도 적절성이 생명이다. “그 안(화장실)에서 사색(思索)에 빠져있는 동안 밖에서 기다리는 나는 사색(死色)이 돼가고 있는 거 알아?”
서울우유 칸 요구르트 광고에서는 카피를 이렇게 썼다. 쾌변 요구르트의 특성을 부각시킨 적절한 카피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맥주를 흘리지 말라는 맥주 광고의 카피를 패러디해 남자 화장실에 붙여놓은 명언이다.
“큰일을 먼저 하라. 작은 일은 저절로 처리될 것이다.” 데일 카네기의 이 말도 화장실에 붙여 놓으니 절묘하게 들어맞는 화장실 명언이 됐다.
경영자나 정치인의 말과 글에서는 적절성이 특히 더 중요하다. 연설할 때 인용한 고사성어나 명언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논란도 얼마나 자주 벌어졌던가?
좋은 명언이나 고사성어라고 해서 아무 때나 함부로 쓰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시간(Time)과 장소(Place)와 경우(Occasion)에 맞게 적절히 인용해야 글이나 연설의 효과가 배가된다. TPO를 고려한 적절한 메시지는 우리 모두에게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마케터를 위한 지식·정보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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