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힘 다했지만…" 어느 코인거래소 대표의 사과 편지 [임현우의 비트코인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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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계좌 발급 문턱 못넘은 고팍스 대표
"죽을힘 다했지만 역부족, 면목없고 죄송"
"4대 거래소만 남는것 아니다, 원화마켓 재개 총력"
"죽을힘 다했지만 역부족, 면목없고 죄송"
"4대 거래소만 남는것 아니다, 원화마켓 재개 총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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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부터 이른바 '4대 거래소'로 불리는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을 뺀 모든 암호화폐거래소에서 원화를 이용한 암호화폐 매매가 전면 중단됐다. '원화마켓'을 계속 운영하려면 은행에서 실명계좌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이들 외에 성공한 업체가 한 곳도 없었다. 그 영향으로 나머지 25개 거래소는 암호화폐로 다른 암호화폐를 사고파는 '코인마켓'만 운영할 수 있게 됐다. 투자자 대다수가 원화 거래에 익숙하기 때문에 이들의 사업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4대 거래소 체제'가 더욱 공고해졌다. 2018년 '박상기의 난'을 전후로 은행들은 실명계좌 발급을 전면 중단했고, 먼저 제휴를 맺어둔 4대 거래소만 계약을 계속 연장하면서 선점 효과를 누려온 게 사실이다. 군소 거래소 대표들은 "실명계좌가 없으면 모두 불안한 거래소인 것처럼 이미지가 왜곡됐다"고 토로해왔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이용자 규모가 중상위권에 들고, 기술력도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 고팍스 등이 이번에 실명계좌를 받을 수 있을지에 주목했다. 그러나 '이변' 없이 4대 거래소만 문턱을 넘은 것이다.
고팍스 운영업체 스트리미의 창업자인 이준행 대표(37·사진)는 25일 '고객님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전체 메일을 회원들에게 보냈다. 그는 "이유 불문하고 고객님들을 뵐 면목이 없다"며 "큰 불안함과 불편함을 초래한 점에 대해서 깊은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대표는 대원외고,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컨설팅업체 등에서 일하다가 블록체인에 관심을 갖게 됐고 2015년 스트리미를 창업했다.
고팍스는 한 은행과의 실명계좌 제휴 논의가 타결 직전까지 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지난 17일만 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낙관적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접수 마감시한인 24일 오전에 은행으로부터 '불가' 통보를 받았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저뿐만 아니라 임직원 전원이 죽을 힘을 다했으나 결국 저희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고 했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고팍스 가입자 수는 8월 말 기준 56만명으로 업비트(829만명), 빗썸(310만명), 코인원(99만명)에 이어 국내 4위다.
실명계좌를 받지 못했어도 사업 자체를 접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코인마켓만 운영하면서 실명계좌를 확보해 당국에 새로 신고하면 원화마켓을 다시 열 수 있다. 이 대표도 "이미 실명계정을 획득한 거래소만 살고 그 외는 죽는다는 프레임 논란은 없었으면 한다"며 "고팍스가 앞으로 증명해 보이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회사가 처음부터 암호화폐거래소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스트리미는 설립 직후 블록체인 기반의 해외송금 서비스를 개발했다. 대형 시중은행의 핀테크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에 선정되고, 중국과 미국에서 벤처투자 자금을 유치하는 등 출발은 순조로웠다. 2017년 홍콩에서 송금 라이선스를 따고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중국 정부의 암호화폐 규제가 몰아치면서 사업을 제대로 펴볼 수 없었다.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2017년 문을 연 암호화폐거래소 고팍스였다. 고팍스는 단순한 코인 거래 중개에 머물지 않고, 블록체인 관련 솔루션을 직접 개발하며 특허도 다수 확보해 업계 평판이 좋은 편이었다. 이용자들한테서는 '선비 거래소'라는 별명을 얻었다. 자체 개발한 이상거래 탐지 시스템으로 3년 간 보이스피싱 피해액 90% 이상을 차단하는 등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미국의 유명 암호화폐 투자회사 디지털커런시그룹(DCG)은 고팍스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지난 5월 이 대표에 이은 2대 주주에 올라섰다. DCG는 한국 정부의 암호화폐 규제가 강력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고팍스가 이를 뛰어넘을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를 금기시하는 금융당국, 그리고 관(官)의 눈치를 살피는 은행들의 벽은 높았다. 고팍스를 포함한 후발 거래소들은 여러 은행을 돌며 실명계좌 발급을 타진했지만 성사된 적이 없다. 이 대표는 이날 사과문에서 "호된 질책이 당연한데도 응원의 편지와 댓글을 보내주신 고객들이 있었다"며 "항상 마음깊이 새기고 기억하겠다"고 했다.
이번에 원화마켓 운영을 중단한 거래소 대부분은 이용자들이 맡긴 원화를 1개월 안에 출금하도록 했다. 고팍스는 원화 출금을 기한 없이 계속 지원하기로 했다. 이 대표는 "하루라도 빠른 시간 내에 실명계정을 획득할 수 있도록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며 "다시 한 번 출발선상에 선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루 빨리 전보다 나은 서비스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암호화폐 업계는 4대 거래소만 은행 제휴에 성공하고 나머지는 모두 도태되는 상황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꼽아 왔는데, 이게 현실이 됐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이번 사업자 신고 과정에서 함량미달 거래소가 대폭 정리된 점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실명계좌라는 진입장벽이 건실하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의 성장까지 제약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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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부터 이른바 '4대 거래소'로 불리는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을 뺀 모든 암호화폐거래소에서 원화를 이용한 암호화폐 매매가 전면 중단됐다. '원화마켓'을 계속 운영하려면 은행에서 실명계좌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이들 외에 성공한 업체가 한 곳도 없었다. 그 영향으로 나머지 25개 거래소는 암호화폐로 다른 암호화폐를 사고파는 '코인마켓'만 운영할 수 있게 됐다. 투자자 대다수가 원화 거래에 익숙하기 때문에 이들의 사업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4대 거래소 체제'가 더욱 공고해졌다. 2018년 '박상기의 난'을 전후로 은행들은 실명계좌 발급을 전면 중단했고, 먼저 제휴를 맺어둔 4대 거래소만 계약을 계속 연장하면서 선점 효과를 누려온 게 사실이다. 군소 거래소 대표들은 "실명계좌가 없으면 모두 불안한 거래소인 것처럼 이미지가 왜곡됐다"고 토로해왔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이용자 규모가 중상위권에 들고, 기술력도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 고팍스 등이 이번에 실명계좌를 받을 수 있을지에 주목했다. 그러나 '이변' 없이 4대 거래소만 문턱을 넘은 것이다.
고팍스 운영업체 스트리미의 창업자인 이준행 대표(37·사진)는 25일 '고객님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전체 메일을 회원들에게 보냈다. 그는 "이유 불문하고 고객님들을 뵐 면목이 없다"며 "큰 불안함과 불편함을 초래한 점에 대해서 깊은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대표는 대원외고,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컨설팅업체 등에서 일하다가 블록체인에 관심을 갖게 됐고 2015년 스트리미를 창업했다.
고팍스는 한 은행과의 실명계좌 제휴 논의가 타결 직전까지 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지난 17일만 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낙관적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접수 마감시한인 24일 오전에 은행으로부터 '불가' 통보를 받았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저뿐만 아니라 임직원 전원이 죽을 힘을 다했으나 결국 저희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고 했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고팍스 가입자 수는 8월 말 기준 56만명으로 업비트(829만명), 빗썸(310만명), 코인원(99만명)에 이어 국내 4위다.
실명계좌를 받지 못했어도 사업 자체를 접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코인마켓만 운영하면서 실명계좌를 확보해 당국에 새로 신고하면 원화마켓을 다시 열 수 있다. 이 대표도 "이미 실명계정을 획득한 거래소만 살고 그 외는 죽는다는 프레임 논란은 없었으면 한다"며 "고팍스가 앞으로 증명해 보이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회사가 처음부터 암호화폐거래소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스트리미는 설립 직후 블록체인 기반의 해외송금 서비스를 개발했다. 대형 시중은행의 핀테크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에 선정되고, 중국과 미국에서 벤처투자 자금을 유치하는 등 출발은 순조로웠다. 2017년 홍콩에서 송금 라이선스를 따고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중국 정부의 암호화폐 규제가 몰아치면서 사업을 제대로 펴볼 수 없었다.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2017년 문을 연 암호화폐거래소 고팍스였다. 고팍스는 단순한 코인 거래 중개에 머물지 않고, 블록체인 관련 솔루션을 직접 개발하며 특허도 다수 확보해 업계 평판이 좋은 편이었다. 이용자들한테서는 '선비 거래소'라는 별명을 얻었다. 자체 개발한 이상거래 탐지 시스템으로 3년 간 보이스피싱 피해액 90% 이상을 차단하는 등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미국의 유명 암호화폐 투자회사 디지털커런시그룹(DCG)은 고팍스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지난 5월 이 대표에 이은 2대 주주에 올라섰다. DCG는 한국 정부의 암호화폐 규제가 강력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고팍스가 이를 뛰어넘을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를 금기시하는 금융당국, 그리고 관(官)의 눈치를 살피는 은행들의 벽은 높았다. 고팍스를 포함한 후발 거래소들은 여러 은행을 돌며 실명계좌 발급을 타진했지만 성사된 적이 없다. 이 대표는 이날 사과문에서 "호된 질책이 당연한데도 응원의 편지와 댓글을 보내주신 고객들이 있었다"며 "항상 마음깊이 새기고 기억하겠다"고 했다.
이번에 원화마켓 운영을 중단한 거래소 대부분은 이용자들이 맡긴 원화를 1개월 안에 출금하도록 했다. 고팍스는 원화 출금을 기한 없이 계속 지원하기로 했다. 이 대표는 "하루라도 빠른 시간 내에 실명계정을 획득할 수 있도록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며 "다시 한 번 출발선상에 선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루 빨리 전보다 나은 서비스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암호화폐 업계는 4대 거래소만 은행 제휴에 성공하고 나머지는 모두 도태되는 상황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꼽아 왔는데, 이게 현실이 됐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이번 사업자 신고 과정에서 함량미달 거래소가 대폭 정리된 점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실명계좌라는 진입장벽이 건실하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의 성장까지 제약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