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아파트를 구매하느라 1억2000만원의 신용대출을 받았던 직장인 A씨는 최근 은행에서 만기를 연장하려면 3000만원을 갚아야 한다고 요구받았다. 여기다 추가로 2000만원의 급전이 필요하게 된 그는 부랴부랴 카드론(장기신용대출)을 알아봤지만, 5000만원 가운데 일부만 대출해 줄 수 있다고 했다.

다급해진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저축은행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거기서도 “연소득을 넘는 신용대출은 원래 불가능하다”며 연 10%대 금리를 요구했다. 황당해진 A씨는 지인에게 사정해 급한 불을 끄기로 했다. 그는 “소득이 안정적이고 신용점수가 940점이 넘는데도 돈 빌릴 데가 없어 난민 신세가 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 직장인 고신용자 가운데 신용경색으로 고통받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갑작스럽게 대출 상환을 요구받거나 급전을 구하지 못해 ‘대출 난민’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용경색은 경기 불황 등으로 기업이 잇달아 도산하면서 금융사들이 자금 공급을 꺼리면서 나타나는 ‘돈맥경화’ 현상을 뜻하는데, 이번에는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가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규제가 은행은 물론 보험사 카드사 저축은행 등 전 금융권으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신용자들이 급전을 융통하던 카드론에 대한 총량 규제도 본격화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들조차 중·저신용자를 우대하는 중금리 대출에만 열을 올리고 있어 고신용자들이 역차별받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나마 당국의 총량 규제가 상대적으로 덜한 저축은행, 캐피털사 등을 이용할 순 있지만 연 10% 이상의 고금리를 물어야 하고 신용점수 하락도 감수해야 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집값을 터무니없이 올려놔 개인들을 ‘빚투’로 내몬 것도 정부고, 최근 대출 총량을 강하게 죄는 것도 정부”라며 “개인이 정책에 대비할 시간을 주지 않다 보니 돈줄이 막혀 고통을 겪는 부작용이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대훈/이인혁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