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조 증발'에 분노한 프랑스, 美에 초강수…한국에 기회될까 [송영찬의 디플로마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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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잠수함'이 불러온 美와 프랑스 갈등
지난달 28일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 갓 태어난 아기의 탯줄을 끊듯 육지와 잠수함을 연결하던 진수줄이 절단됩니다. 곧이어 오색테이프를 절단하자 잠수함에 매달려 있던 샴페인이 선체에 부딪히며 깨집니다. 이로써 해군의 세 번째 3000t급 잠수함인 ‘신채호함’이 처음으로 바다에 담길 준비가 끝났습니다.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의 이름을 딴 이 잠수함은 길이 83.5m, 폭 9.6m의 크기로 6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수직발사관을 탑재했습니다. 신채호함이 시운전 평가 기간을 거쳐 오는 2024년 해군에 인도되면 한국은 3척의 SLBM 잠수함을 갖게 됩니다.
한국이 SLBM 개발을 완료한건 세계 7번째지만, SLBM 관련 세계 첫번째 기록들도 갖고 있습니다. 우선 핵 미보유국 중 처음입니다. 지금까지 SLBM 잠수함 시험발사에 성공한 나라들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등 모두 핵 보유국이었습니다. 아직 잠수함 시험발사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SLBM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북한 역시 비공식적으로 수십 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죠. 두 번째 특징은 SLBM 수직발사관(VLS)을 디젤 엔진 방식, 즉 재래식 잠수함에 탑재했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의 SLBM 기술 보유국, 다시말해 핵 보유국들은 모두 SLBM을 핵추진 잠수함(핵잠)에 탑재해왔습니다. 한국도 첫번째 3000t급 잠수함인 도산안창호함을 개발하던 초창기에는 SLBM 발사에 필요한 수직발사관이 아닌 어뢰 타격용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SLCM)에 필요한 수평 발사관을 탑재할 계획이었지만 북한의 SLBM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설계를 변경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채호함의 진수를 끝으로 장보고-Ⅲ 사업의 배치-Ⅰ 개발은 모두 완료됐습니다. 배치-Ⅱ 급의 잠수함은 3600t급으로 잠수함 크기가 더욱 커지고 SLBM 수직발사관도 늘어납니다. 방위사업청은 이미 지난 9일 대우조선해양과 배치-Ⅱ의 2번함 건조 계약 체결을 마쳤습니다.
아직 베일에 쌓여있는 건 그 다음 단계인 배치-Ⅲ입니다. 군은 지난해 배치-Ⅲ 추진 계획을 설명하며 규모는 4000t급이 될 것이라 발표했지만 추진 방식에 대해서는 함구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군이 올 초 핵추진 잠수함(핵잠)의 작전요구성능(ROC)을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군 내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핵잠을 건조하기로 사실상 마음을 굳혔다는 뜻입니다.
한국이 핵잠을 도입하지 못한 이유는 기술도, 군 당국의 의지도 아닌 한·미 원자력 협정 때문입니다. 이 협정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산 우라늄을 20% 미만으로만 농축할 수 있습니다. 이 저농축 우라늄을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미국은 핵잠에 9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미국이 한국의 핵잠 개발을 원천 차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핵잠은 핵무기 개발과 달리 원자력 협정에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실제로 김현종 전 국가안보실 제2차장은 지난해 7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원자력협정과 핵추진 잠수함은 완전히 별개로서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의 핵잠 도입을 강경하게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던 와중 ‘오커스(AUKUS·미국 영국 호주 안보동맹)’가 창설됩니다. 오커스 창설과 함께 미국은 예외적으로 호주에 핵잠 기술을 이전하겠다고 밝힙니다. 미국이 제3국에 자국의 핵잠 기술을 이전하는 것은 냉전 시기던 1958년 영국에 이전한 이후 처음입니다.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대사는 지난달 17일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프랑스와의 이번 계약을 파기함으로써 호주는 독자적인 자주적인 국방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저버렸고, 미국에 대한 의존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주장하며 한국과 핵잠을 포함한 국방 협력을 하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칩니다. 물론 한·미 원자력 협정 뿐 아니라 모든 핵 연료가 미국 주도의 핵공급국그룹(NSG)에 의해 통제된다는 점에서 한국이 독자적으로 프랑스로부터 핵잠 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다만 이같은 움직임이 미국을 움직이게 할 지렛대가 될 수는 있다는 분석입니다. 이르면 이달 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핵잠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수 있다는 희망섞인 관측도 나옵니다. 다만 외교 전문가들은 미국이 현재 한국을 호주만큼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을 난관으로 꼽습니다. 호주는 현재 미국의 3대 대중(對中) 견제 노선인 오커스, 쿼드(미국 호주 일본 인도 안보협의체), 파이브 아이즈(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첩보동맹)에 모두 속한 국가입니다. 한국만큼 대중 경제 의존도는 크지만 중국과 강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우던 한국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죠.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달 16일 한국도 호주처럼 가까운 미래에 미국의 핵잠 기술을 전수받을 가능성이 있느냐는 자유아시아방송(RFA)의 질의에 “이번 호주의 경우는 예외적인 것으로 앞으로 그렇게 될 근거 선례는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도 “미국은 수십억 달러를 들여 핵잠수함을 개발해왔는데 이 기술이 적국으로 새 나가면 미 핵잠수함 전체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며 “미국은 기밀정보 보안 문화가 철저히 잘 갖춰진 정말 가까운 동맹국에만 잠수함 기술과 기밀정보를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핵잠 도입을 두고 문재인 정부가 국방 분야에서 내세우던 ‘자주국방’과 외교에서 내세우던 ‘전략적 모호성’이 충돌하는 양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주국방을 위해 미국이 요구하는 대중 견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니 전략적 모호성이 무너지고, 전략적 모호성을 고수하자니 미국이 핵잠 개발을 승인하지 않을 수 있어서입니다. 과연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이던 핵잠 도입을 성공할 수 있을까요.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의 이름을 딴 이 잠수함은 길이 83.5m, 폭 9.6m의 크기로 6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수직발사관을 탑재했습니다. 신채호함이 시운전 평가 기간을 거쳐 오는 2024년 해군에 인도되면 한국은 3척의 SLBM 잠수함을 갖게 됩니다.
핵 없는 나라 중 첫 SLBM 잠수함
신채호함은 3000t급 이상의 중(重)잠수함을 건조하는 ‘장보고-Ⅲ’ 배치(Batch)-Ⅰ사업의 마지막 함정입니다. 배치는 같은 급의 함정을 건조하는 묶음 단위를 말합니다. ‘배치’ 뒤에 붙는 로마자 숫자가 커질수록 성능이 개선되고 함정의 크기도 커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신채호함은 지난 15일 세계 7번째로 SLBM 개발의 최종 단계인 잠수함 시험발사에 성공한 ‘도산 안창호함’이나 지난해 11월 진수한 ‘안무함’과 마찬가지로 배치-Ⅰ 사업을 통해 탄생했습니다.한국이 SLBM 개발을 완료한건 세계 7번째지만, SLBM 관련 세계 첫번째 기록들도 갖고 있습니다. 우선 핵 미보유국 중 처음입니다. 지금까지 SLBM 잠수함 시험발사에 성공한 나라들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등 모두 핵 보유국이었습니다. 아직 잠수함 시험발사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SLBM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북한 역시 비공식적으로 수십 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죠. 두 번째 특징은 SLBM 수직발사관(VLS)을 디젤 엔진 방식, 즉 재래식 잠수함에 탑재했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의 SLBM 기술 보유국, 다시말해 핵 보유국들은 모두 SLBM을 핵추진 잠수함(핵잠)에 탑재해왔습니다. 한국도 첫번째 3000t급 잠수함인 도산안창호함을 개발하던 초창기에는 SLBM 발사에 필요한 수직발사관이 아닌 어뢰 타격용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SLCM)에 필요한 수평 발사관을 탑재할 계획이었지만 북한의 SLBM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설계를 변경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채호함의 진수를 끝으로 장보고-Ⅲ 사업의 배치-Ⅰ 개발은 모두 완료됐습니다. 배치-Ⅱ 급의 잠수함은 3600t급으로 잠수함 크기가 더욱 커지고 SLBM 수직발사관도 늘어납니다. 방위사업청은 이미 지난 9일 대우조선해양과 배치-Ⅱ의 2번함 건조 계약 체결을 마쳤습니다.
아직 베일에 쌓여있는 건 그 다음 단계인 배치-Ⅲ입니다. 군은 지난해 배치-Ⅲ 추진 계획을 설명하며 규모는 4000t급이 될 것이라 발표했지만 추진 방식에 대해서는 함구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군이 올 초 핵추진 잠수함(핵잠)의 작전요구성능(ROC)을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군 내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핵잠을 건조하기로 사실상 마음을 굳혔다는 뜻입니다.
'K-핵잠' 도입 막은 한미 원자력 협정
핵잠에는 엔진 대신 소형원자로가 장착됩니다. 이 원자로에 있는 농축우라늄이 다 탈 때까지 잠항할 수 있습니다. 스노클(공기 흡입)을 위해 수면 위로 오르내려야 해 적에게 노출될 염려가 있는 재래식 잠수함과 달리 이론상 최대 30년도까지 물 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재래식 잠수함에 비해 더 크게 만들기도 용이합니다. 자연스레 더 많은 무장을 적재할 수 있습니다. 항해속도도 통상 3배 이상 빠른 것으로 전해집니다.한국이 핵잠을 도입하지 못한 이유는 기술도, 군 당국의 의지도 아닌 한·미 원자력 협정 때문입니다. 이 협정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산 우라늄을 20% 미만으로만 농축할 수 있습니다. 이 저농축 우라늄을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미국은 핵잠에 9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미국이 한국의 핵잠 개발을 원천 차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핵잠은 핵무기 개발과 달리 원자력 협정에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실제로 김현종 전 국가안보실 제2차장은 지난해 7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원자력협정과 핵추진 잠수함은 완전히 별개로서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의 핵잠 도입을 강경하게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던 와중 ‘오커스(AUKUS·미국 영국 호주 안보동맹)’가 창설됩니다. 오커스 창설과 함께 미국은 예외적으로 호주에 핵잠 기술을 이전하겠다고 밝힙니다. 미국이 제3국에 자국의 핵잠 기술을 이전하는 것은 냉전 시기던 1958년 영국에 이전한 이후 처음입니다.
'77조 증발'에 분노한 프랑스, 美에 초강수
호주에 핵잠 기술을 이전하기로 한 미국의 결정은 프랑스와 엄청난 외교적 갈등을 불러옵니다. 호주는 앞서 프랑스 방산업체 나발 그룹과 대규모 디젤 잠수함 공급 및 기술 이전 계약을 맺었습니다. 자그마치 560억유로(약 77조원) 규모입니다. 호주는 미국으로부터 핵잠 기술을 전수받기로 하며 이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합니다. 프랑스는 즉각 반발합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과 호주에 있는 자국 대사를 소환하는 외교적 초강수를 뒀고, 예정돼있던 유엔 총회에서의 화상 연설도 취소했습니다. 런던서 열릴 계획이던 영·불 국방장관회담도 취소합니다.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대사는 지난달 17일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프랑스와의 이번 계약을 파기함으로써 호주는 독자적인 자주적인 국방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저버렸고, 미국에 대한 의존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주장하며 한국과 핵잠을 포함한 국방 협력을 하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칩니다. 물론 한·미 원자력 협정 뿐 아니라 모든 핵 연료가 미국 주도의 핵공급국그룹(NSG)에 의해 통제된다는 점에서 한국이 독자적으로 프랑스로부터 핵잠 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다만 이같은 움직임이 미국을 움직이게 할 지렛대가 될 수는 있다는 분석입니다. 이르면 이달 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핵잠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수 있다는 희망섞인 관측도 나옵니다. 다만 외교 전문가들은 미국이 현재 한국을 호주만큼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을 난관으로 꼽습니다. 호주는 현재 미국의 3대 대중(對中) 견제 노선인 오커스, 쿼드(미국 호주 일본 인도 안보협의체), 파이브 아이즈(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첩보동맹)에 모두 속한 국가입니다. 한국만큼 대중 경제 의존도는 크지만 중국과 강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우던 한국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죠.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달 16일 한국도 호주처럼 가까운 미래에 미국의 핵잠 기술을 전수받을 가능성이 있느냐는 자유아시아방송(RFA)의 질의에 “이번 호주의 경우는 예외적인 것으로 앞으로 그렇게 될 근거 선례는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도 “미국은 수십억 달러를 들여 핵잠수함을 개발해왔는데 이 기술이 적국으로 새 나가면 미 핵잠수함 전체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며 “미국은 기밀정보 보안 문화가 철저히 잘 갖춰진 정말 가까운 동맹국에만 잠수함 기술과 기밀정보를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핵잠 도입을 두고 문재인 정부가 국방 분야에서 내세우던 ‘자주국방’과 외교에서 내세우던 ‘전략적 모호성’이 충돌하는 양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주국방을 위해 미국이 요구하는 대중 견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니 전략적 모호성이 무너지고, 전략적 모호성을 고수하자니 미국이 핵잠 개발을 승인하지 않을 수 있어서입니다. 과연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이던 핵잠 도입을 성공할 수 있을까요.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