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회생의 키워드 'SUV 전동화'
1954년 하동환자동차로 시작해 1974년 신진자동차, 1977년 동아자동차, 1988년 쌍용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쌍용차의 30년 역사는 꽤 흥미진진했다. 1998년 대우자동차가 쌍용차를 인수한 이후 굴곡도 만만치 않았다. 그해는 쌍용차의 숙원이던 승용차 시장 진출을 위해 체어맨을 출시한 이듬해였다. 1999년 대우그룹이 붕괴되면서 쌍용차는 다시 홀로서기에 나섰고 때마침 불어닥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인기에 힘입어 2003년 사상 최대 이익을 냈다. 당시 쌍용차 실적을 견인했던 차종은 2001년 나온 렉스턴이다. ‘대한민국 1%’ 슬로건을 내세워 40~50대 남성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이하이던 시대라 렉스턴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1% 상위 소득자의 프리미엄 SUV로 여겨졌던 셈이다.

2008년 국제 유가 폭등이 디젤 중심이던 SUV의 발목을 잡았다. 쌍용차 대주주로 올라선 상하이자동차와 노조의 극한 갈등은 회사를 다시 위기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어렵게 ‘존속’ 처방을 받아 2010년 인도 마힌드라 품에 안겼지만, 코로나19로 마힌드라그룹마저 송두리째 흔들리면서 그들도 끈을 놓아 버렸다.

그렇다고 마냥 있을 수는 없었던 쌍용차는 스테디셀러인 소형 SUV 티볼리와 렉스턴스포츠 등을 앞세워 판매량을 조금씩 늘려갔다. 새로 인수 의지를 밝히고 있는 기업들과 무관하게 홀로서기도 시도하는 중이다. 배출가스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코란도 이모션 EV를 내놨고, 플래그십 렉스턴에는 ‘마스터’ 트림을 추가하며 ‘차박(차에서 숙박)’ 열풍에 편승했다.

현재 상황에서 쌍용차의 독자 생존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하는 것 또한 쌍용차의 의무다. 렉스턴이 다시 주목받고 코란도 이모션이 자리잡으면서 해외 시장의 판매 정상화에 매진하는 게 최우선이다. 렉스턴은 올해 들어 8월까지 2865대 수출돼 지난해 같은 기간(972대)보다 194% 증가했다. 마스터와 같은 소비자 선호도를 반영한 트림 등 지속적인 제품 개선이 이뤄지면 다시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다.

관건은 쌍용차의 미래 성장 가능성이다. 기후위기 여파가 커지면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역동적으로 변할 수 있어서다. 이미 전동화의 흐름은 시작됐고, 디젤 차량에 대한 배출가스 규제는 속도가 붙을 태세다. 내연기관 차를 포기하겠다는 대형 제조사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을 포함해 제너럴모터스(GM), 폭스바겐그룹, 재규어랜드로버그룹 등이 대표적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 공급이 원활하다는 점이다. 반도체 부족 현상이 자동차 생산의 발목을 잡는 것처럼 배터리 또한 전동화 경쟁의 주요 부품이다. 한국이 배터리 강국이라는 점에서 쌍용차 또한 SUV의 전동화 속도를 높일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전동화의 바람이 세단에서 SUV로 옮겨가는 것도 기회 요인이다. 코란도 이모션 EV뿐 아니라 렉스턴의 전동화 모델도 기대를 높이고 있다.

렉스턴이 상품성에서 인정받아야 하는 게 선결 과제다. 전동화는 동력원을 바꾸는 개념일 뿐이다. 상품성은 별개로 가치를 부여한다. 따라서 쌍용차의 새로운 주인이 될 기업도 SUV 전동화를 주목해야 한다. 내연기관과 마찬가지로 전동화 또한 SUV에서 전성기를 맞이하리란 것은 어렵지 않은 예측이니 말이다.

권용주 <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