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세계 1위 담배회사 필립모리스
사진= 세계 1위 담배회사 필립모리스
미국 기업금융시장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대출이 급성장하고 있다. ESG 회사채 시장의 성장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상업은행들 역시 환경과 사회적 기여를 조건으로 하는 대출을 크게 늘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와 같은 기업 금융 제도가 도입될지 주목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 초부터 9월16일까지 미국 기업들은 838억달러(약 99조원) 규모의 지속가능성 연계 대출(Sustainability-linked loans)을 받았다. 작년 같은 기간 25억달러에 33배가 넘는 수준이다.

이 대출은 기업이 탄소 배출 감소와 같은 환경, 사회 또는 지배구조 목표 충족 여부에 따라 금리를 조정하는 상품으로 한국에선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국내에서 'ESG채권'으로 통용되는 채권과 같은 목표를 설정하고 있으며, 조건부로 금리를 조정한다는 면에서 회사채 가운데 한국에서 도입을 추진중인 지속가능 연계 채권(Sustainability-linked bond·SLB)과 비슷하다.

미국 대형은행들은 앞다퉈 ESG대출에 뛰어들고 있다. 웰스파고는 다른은행들과 함께 지난 8월 조지아주의 케이블 제조업체 사우스와이어에 대한 5년만기 10억달러 담보 대출을 실행했다. 은행들은 대출 이자율을 이 회사가 2025년까지 에너지 소비와 구입에서 탄소배출량을 얼마나 줄이느냐에 따라 조정하기로 했다.

말보로 담배를 생산하는 필립모리스는 최근 다수의 은행들과 지속가능 연계 대출 실행 논의를 시작했다. ESG대출로 이자율을 낮춰 기존 대출을 차환할 계획이다. 필립모리스는 담배잎을 태우지 않는 아이코스의 매출을 2025년까지 회사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며 ESG대출을 요구하고 있다. 아이코스는 전통담배에 비해 흡연자에게 덜 해롭기 때문에 사회에 기여한다는 주장이다.

필립모리스의 연매출은 최근 286억9400만달러(약 33조9000억원)에 달한다. 이 회사는 같은 시기까지 아이코스 출시 지역을 현재 64개 국에서 100개 국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도 내세웠다. 필립모리스 관계자는 WSJ에 "영업과 자본조달 활동 등 모든 회사의 정책은 금연회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대출은 정부와 연기금 등 기관들이 ESG활동을 보다 실효성 있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다. 기존 ESG채권은 기업들이 채권을 발행한 후엔 실제로 목표를 달성하는지 검증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기업 입장에서도 ESG채권의 경우 특정한 프로젝트나 자금사용 목적을 적시해야하기 때문에 자금 활용의 유연성 면에서 ESG대출이 편리하다.

한편 미국의 ESG 회사채 발행도 빠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올들어 1629억달러 규모의 회사채가 ESG인증을 받고 발행돼 지난해 같은 기간 1005억 달러 대비 1.5배 이상으로 성장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