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플랫폼 죽이면 디지털 전환도 없다
테슬라와 기존 자동차 회사, 아마존과 월마트, 넷플릭스와 디즈니…. 사방이 플랫폼 대(對) 플랫폼의 경쟁이다. 디지털 전환은 기술·제품·서비스뿐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까지 바꾼다. 그 중심에 디지털 플랫폼이 있다. 컴퓨터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디지털 세상에서 플랫폼의 등장은 필연적이다. 그 어떤 기업도 플랫폼과 따로 놀 수 없다. 플랫폼 간 치열한 경쟁은 다시 디지털 전환을 확산시킨다. 디지털 전환과 플랫폼은 불가분의 관계다. 플랫폼 확산으로 생산성이 올라가고 새로운 성장 시대가 열리면 그게 곧 산업혁명이다. 디지털 전환이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스타트업 플랫폼의 싹을 죽이는 것은 디지털 전환을 거부하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최근 세무·의료·법률·부동산 등 전문서비스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직역단체들의 저항이 그렇다. 이들 단체는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해 스타트업 플랫폼을 불법으로 몰아갈 태세다. 시장경제 원칙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경쟁 촉진과 소비자 효용 극대화를 위해 보호할 대상은 ‘경쟁자’가 아니라 ‘경쟁’이기 때문이다. ‘공공의 적’은 플랫폼이 아니라 기득권의 지대를 위한 진입장벽이다. 진입장벽을 허물어야 기존 사업자도 디지털 전환으로 갈 수 있다. 스스로 파괴하지 않고 파괴당하면 사회적 비용은 그만큼 올라간다.

플랫폼은 ‘갑’이거나 ‘강자’라서 별도의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발상도 위험하다. 플랫폼은 참여자가 많을수록 가치가 올라간다. ‘네트워크 효과’다. 참여자가 늘어나는 데 따른 한계비용은 거의 없다. ‘규모의 경제’다. 플랫폼 제공자가 네트워크 효과와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며 시장에서 영향력을 높이려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플랫폼 참여자는 ‘을’이거나 ‘약자’라서가 아니라 디지털 전환의 이익을 기대하고 모여든 것이다. 플랫폼 제공자와 플랫폼 참여자 간 협상력 차이를 말하지만, 그런 차이는 어디서나 발생한다. 문제의 본질은 협상력 우위를 이용한 불공정 행위가 발생하느냐다. 반(反)경쟁적 행위는 기존 법으로도 얼마든지 제재가 가능하다. 그런데도 사전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플랫폼을 옥죄는 법을 이중·삼중으로 만들면 결과는 뻔하다. 플랫폼은 위축될 것이고 공급자도 수요자도 후생효과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모두의 손해다.

플랫폼은 ‘독점’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더 커지기 전에 기업을 분리하거나 가격을 통제하는 등 손봐야 한다는 주장은 어떤가. 네트워크 효과와 규모의 경제만 놓고 생각하면 이론적으로는 독점이 가능하다. 현실은 이론보다 복잡하다. 특정 플랫폼의 독점화 경향은 반드시 새로운 경쟁자를 불러들인다는 게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 역사다. IBM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로, MS에서 구글로 혁신의 주도권 교체가 이를 말해준다. 반독점법보다 무서운 건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잠재적 경쟁자인 게 시장경제의 힘이다. 독점은 독점자 자신에게 가장 큰 위험 요소다. 과점에 대한 이론과 현실도 많이 다르다. 담합을 의심하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과점에서 혁신 경쟁이 치열하다는 실증연구가 많다.

국내에서 독과점 사업자라고 해도 글로벌 빅테크에 대항하고 있다면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디지털 혁신경제는 지식기반 경제다. 지식은 노동·자본과 달리 ‘수확체증’의 특성을 갖는다. 플랫폼이 ‘전략산업’으로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제교역에서 전략산업을 장악하면 그게 곧 글로벌 경쟁력이요, 국가 디지털 경제력이다. 구글 등 글로벌 강자에 맞설 기업이 없는 유럽연합(EU)의 자해적인 플랫폼 규제를 한국이 따라할 이유가 없다. 한국은 좁은 내수를 넘어 해외로 뻗어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정상적인 공정거래위원회라면 스타트업 플랫폼의 등장을 막는 진입장벽부터 허물어야 하는 게 맞는다. 특정 플랫폼의 독점화 경향성이 우려된다면 ‘플랫폼 규제법’이 아니라 ‘플랫폼 촉진법’이 필요하다.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을 자극하는 것이야말로 미래지향적인 처방이다. 시장의 경합성을 높이는 플랫폼이 지속적으로 등장해 플랫폼 대 플랫폼 간 혁신 경쟁이 이어지면 플랫폼 제공자와 참여자 간 협상력 차이도 바뀔 수 있다. 불행히도 한국의 경쟁당국은 가야 할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