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미국 '부도'보다 핵전쟁 확률이 높다"…과연?
금리가 29일(현지시간) 폭등세를 멈췄습니다. 지난 22일 미 중앙은행(Fed)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매파'적인 모습을 보인 이후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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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도 반등 시도에 나섰습니다. 이날 아침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1.499%까지 내려가자 오름세로 출발한 지수들은 오후 들어 금리가 다시 1.55%대까지 회복하자 마이너스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10년물 금리는 전날과 비슷한 1.54% 수준에서 마감됐고, 오락가락 눈치를 보던 나스닥은 0.24% 떨어진 채 거래를 마쳤습니다. 금리의 영향을 덜 받는 다우는 0.26% 올랐고 S&P500 지수는 0.16% 상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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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급등세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인지 여부가 앞으로의 주가에도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월가의 고위 관계자는 "Fed가 테이퍼링을 빨리 끝내려고 하고 인플레이션도 상당 기간 남아있을 것을 가정하면 10년물 금리가 2%에 가는 게 맞기는 하지만 워낙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가 많으므로 올해는 1.6% 부근에서 머물다가, 내년에야 2%를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연기금 등 장기 투자자들은 '미국 국채 금리가 1.55% 수준이라면 여기서 사는 것도 나쁜 거 같지 않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꽤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금리가 높아지자 수요가 생겨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수준에서는 폭등세는 꺾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월가 관계자는 "의외로 미 국채 이자 지급이 48시간 정도 멈출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는 트레이더들이 있다. 부채한도 관련 위험을 시장에서 일부 인식하는 듯하다. 이게 장기 금리를 누르는 역할은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디폴트가 생기면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오히려 국채 매수세가 강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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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월가 고위 관계자는 "부채한도는 정치인들이 막판에 해결하리라고 본다. 미국에서 사상 초유의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발생할 확률은 없다고 본다. 핵전쟁이 발발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뉴욕 채권 시장에서는 10월 말 만기를 맞는 3개월물 단기 국채(T-bill) 금리가 올라간 것 외에는 채무불이행 위험은 많이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이일드채권 시장도 별 변화가 없습니다. 디폴트가 예상될 경우 약화할 수 있는 달러화 가치도 계속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 관계자는 "시장이 디폴트를 예상하지 않고 있으므로, 만약 디폴트가 발생하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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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았던 천연가스 선물 가격도 이날 꺾였습니다. 100만Btu당 6달러를 넘어 7년 만의 최고 기록을 세웠던 미국 천연가스는 이날 7.6% 떨어지면서 5.4달러 선에 마감했습니다. 지난 1월 19일 이래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10월 미국의 날씨가 따뜻할 것이란 기상 관측이 나온 게 영향을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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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증시는 딜레마에 처해있습니다. 사실 지난 9월 들어 여러 번 큰 폭의 하락이 나타나면서 많이 내린 것 같지만 S&P500 지수는 지금도 최고점에서 4%가량 떨어진 지점에 머물고 있습니다. 여전히 올해 들어 5% 이상 조정은 아직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종목별로 보면 상당폭 조정을 받은 종목들이 많습니다. S&P500 구성 종목의 80% 이상이 올해 고점에서 10% 이상 하락한 상태입니다. 나스닥에서는 20일 이동평균을 넘고 있는 종목이 20%밖에 되지 않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조정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쉽게 주식을 사기는 쉽지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공급망 혼란, 그리고 인플레이션 상황이 녹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롬 파월 의장은 29일 연설에서 "현재 인플레이션 급등세는 공급의 제약이 지속한 결과다. 그 효과가 얼마나 클지, 얼마나 오래 지속할지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공급망 병목에 따른 물가 상승세가 내년까지 지속할 것이며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그는 "급등한 인플레이션이 매년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새로운 인플레이션 체제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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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공급망 혼란과 인플레이션은 경기 회복세를 둔화시키고 기업 이익의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애틀랜타연방은행의 3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 추정치는 3.2%까지 떨어졌습니다. 지난 8월 말까지는 5% 이상으로 추정됐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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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나이키는 공급망 혼란으로, 페덱스는 물류비와 임금 급등으로 최근 발표한 실적에 월가 예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28일 실적을 내놓은 마이크론은 월가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내놓았지만, 주가가 이날 급락했습니다. 마이크론은 2022회계연도에 기록적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월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사태로 PC, 서버 등 생산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메모리 반도체만으로는 PC, 서버 등을 만들 수 없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반도체 제조업체도 반도체 부족 현상을 피할 수 없다"라고 보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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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달러샵(1달러짜리 물건을 파는 곳)의 대표 주자인 달러트리는 앞으로 1달러가 넘는 상품을 다수 팔겠다고 발표했습니다. 1986년 설립 때부터 35년간 ‘1달러 정책’을 고수해온 달러트리가 이를 포기한 건 공급망 혼란과 인플레이션 탓입니다. 마이클 위틴스키 사장은 “공급망 차질과 운임·임금 상승 등에 따라 가격을 높일 수밖에 없다”라며 “소비자 반응을 시험해본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라고 밝혔습니다.

최근 월가의 3분기 기업 실적 전망치는 조금씩 낮아지고 있습니다. 모건스탠리는 이날 보고서에서 세 가지 비용 상승 요인이 기업 이익을 압박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첫째,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 차이가 확대돼 마진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생산자물가는 8월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5% 상승했지만, 소비자물가는 5.3% 올랐습니다. 5.2%포인트 차이는 지난 40년 간 가장 큰 수준으로 기업들이 비용증가분을 소비자 가격에 모두 반영하지 못한다는 증거라는 겁니다.

두 번째, 유통 비용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트럭운송비는 전년 대비 15% 증가했습니다. 또 세계컨테이너지수에 따르면 40피트 컨테이너의 평균 가격은 1만377달러로 5년 평균 가격 2396달러보다 크게 높습니다.

세 번째, 원자재 및 에너지 가격 상승이 치솟았습니다. 구리, 아연, 니켈과 같은 산업용 금속은 작년보다 평균 47% 올라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석유의 경우 탄력적 수요와 줄어든 재고가 계속해서 가격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모건스탠리는 추가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가 관건이다. 소비자 가격을 충분히 올리지 못하는 기업은 이윤이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3분기 어닝시즌을 주시해야 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날 달러트리의 주가는 16% 폭등했습니다. 투자자들이 달러트리가 비용 전가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기업 실적의 문제는 3분기 어닝시즌을 넘어 지속할 것"이라고 봤습니다. 이 관계자는 "경기는 둔화한다 해도 내년에도 3~4% 성장할 것이기 때문에 걱정하지는 않는데, 얼마나 인플레이션이 지속할지 그리고 얼마나 세금이 늘어날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주가가 많이 내릴 것 같지도 않습니다. 경기 둔화의 주범이던 델타 변이 확산세는 꺾이고 있습니다. 경제 지표도 조금씩 바닥을 다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식 외에 투자할 별다른 대안이 여전히 없습니다'(There Is Still No Alternative for Investors).

WSJ은 이런 제목의 기사를 내고 인플레이션, 공급망 병목,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정상화, 금리 급등, 중국 헝다 사태 등 여러 가지 걱정이 많지만 'TINA(There is no alternative)를 생각보다 그만두기는 어렵다'라고 지적했습니다. WSJ는 "투자자들은 Fed가 채권을 사고파는 게 시장에 미치는 역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또 선례를 보면 금리가 올라 증시를 심각하게 위협할 때는 Fed는 언제든지 방향을 수정해왔다"라고 밝혔습니다. WSJ은 "공급망 혼란으로 한동안 인플레이션이 상승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Fed의 손을 묶을 수는 없다. 그들은 중국 에버그란데 사태 등 금리를 낮게 유지할 핑계를 찾아낼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Fed가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임금 인상 등으로 인플레이션이 지속해서 강력하게 치솟는 경우입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미국 '부도'보다 핵전쟁 확률이 높다"…과연?
UBS는 이날 인플레이션에 강한 주식, 강력한 가격결정력을 가진 주식 10가지를 추천했습니다. 스타벅스(SBUX), 퍼스트하와이언(FHB), 퍼퓰러(BPOP), 모엘리스앤드코(MC), 힐튼월드와이드(HLT), 크루이그닥터페터(KDP), 솔라에지테크놀로지(SEDG), 제네릭홀딩스(GNRC), 도미니온에너지(D) 하스브로(HAS) 등을 꼽았습니다. 퍼스트하와이안이나 퍼퓰러는 처음 들어보는 기업일 겁니다. 퍼퓰러는 푸에르토리코, 퍼스트하와이언은 하와이 호놀룰루의 은행입니다. UBS는 "섬에 위치해 본질적으로 과점적 시장의 혜택을 보고 있다. 이로 인해 가격결정력이 높다"라고 밝혔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