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들 투어 다소 여유있지만
정규 투어처럼 치열한 경쟁
동양인 선수로는 유일
'탱자탱자' 놀고먹듯해선 안돼
두 경기 후 바로 마음 다잡아
하루 공 300개 치며 몸 만들어
한국인 최초의 PGA투어 챔피언스(시니어) 우승자가 돼 금의환향한 ‘코리안 탱크’ 최경주(51)가 이같이 말했다. 30일 경기 여주 페럼CC(파72)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 1라운드를 마친 뒤 한 공식 기자회견에서다. PGA투어 챔피언스 우승 순간을 돌아본 그는 “경기 전 긴장감, 경기 중간 감동, 경기 후 기쁨까지 (2002년과) 같았다”고 했다.
최경주는 지난주 열린 PGA투어 챔피언스 퓨어 인슈어런스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선수가 챔피언스 투어에서 우승한 첫 사례다. 2002년 5월 콤팩 클래식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데 이어 또 한 번 ‘최초’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는 “한국인 최초라는 수식어를 또 달게 돼 영광스럽다”고 했다.
PGA투어 챔피언스는 이름 그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챔피언들이 뛰는 무대다. 만 50세 이상이라는 기본 자격을 충족한 선수 중 PGA투어 역대 총상금 70위권에 속해 있거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들이 출전한다. 까다로운 요건을 맞추지 못하면 월요예선이나 퀄리파잉 스쿨 등을 통해 시드를 따야 할 정도로 문이 좁다. 아시아 선수 중 ‘풀타임’ 출전권을 획득한 선수가 최경주 한 명인 이유다. 처음엔 그도 방심했다가 큰코다쳤다.
“챔피언스 투어에선 선수들이 대회 중간에 와인도 마시고 여유 있는 분위기라고 전해들었는데 그대로였어요. 투어라기보다는 동호회 느낌이 들던 걸요. 하지만 라운드에 나서자 같이 웃고 떠들던 선수들이 (루키인) 저보다 30야드씩은 멀리 쳤어요. ‘탱자탱자’ 놀고 먹듯 하면 절대 우승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2개 대회 이후 들었고 몸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다시 ‘선수 최경주’로 돌아가 혹독하게 훈련했다. 식단을 바꾸고 운동량을 늘렸다. 이 덕분에 갑상샘 종양 제거 수술 뒤 빠졌던 체중이 전성기에 비해 4㎏ 정도만 덜 나갈 정도로 돌아왔다. 하루에 공을 300개씩 치며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훈련 결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2주 전 열린 샌퍼드 인터내셔널에서 연장 접전 끝에 준우승했고, 곧이어 열린 대회에서 우승했다. 최경주는 “(샌퍼드 인터내셔널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을 때 전혀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졌다고 생각한 경기를 연장전까지 끌고가 자신감이 생겼다”며 “체력이 좋아지니 라운드가 거듭돼도 뒤처지지 않게 됐다”고 했다.
지난 28일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연습라운드에 참여하고 이날 1라운드까지 뛴 그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 중이다. 이날 16번홀(파3)에서 파를 기록하고도 스코어카드에 보기로 적어낼 정도였다. 원래 스코어보다 적은 타수를 적어내면 실격이지만, 더 많이 적어내 실격을 면했다. 결국 그는 이날 기록상 버디 2개를 잡았으나 보기 5개를 쏟아낸 것으로 돼 3오버파 75타로 경기를 마쳤다. 최경주는 “워낙 많은 분이 응원하고 축하해주셔서 피곤한 줄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 웃음만큼이나 선수 인생 후반부의 막이 화려하게 올랐다.
“평소 긍정의 힘을 믿었는데 (50대 이후의 인생을 살면서) 더 그렇게 됐습니다. 조금씩 운동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니 삶이 기뻐졌어요. 코로나19로 힘든 국민들, 특히 제 또래인 ‘5060’ 세대들도 긍정의 힘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저도 긍정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후배들을 위해 챔피언스 투어에서 길을 터놓겠습니다.”
이날 1라운드에선 2018년 KPGA 스릭슨(2부)투어 상금왕 출신인 김영수(32)가 보기 없이 버디만 8개를 몰아쳐 8언더파 64타 단독 선두로 나섰다.
여주=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