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자동차사고 경상환자에 대해 ‘치료비 과실책임주의’를 도입하고 4주를 초과해 병원 치료를 받을 경우 진단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등 자동차보험 개선 방안을 마련한 것은 그만큼 도덕적 해이에 따른 보험 재정 누수가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개선 방안을 통해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을 낮추면서도 실질적인 피해자 보상이 가능하도록 각종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경미한 車사고, 본인 과실만큼 치료비 낸다
30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경상환자(12~14등급)에게 지급된 보험금은 총 2조9092억원으로 2016년(1조9302억원)에 비해 1조원(50%)가량 급증했다. 같은 기간 중상환자 보험금이 1조4942억원으로 고작 8.2%(1134억원)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일곱 배나 빠른 속도다.

경상환자 보험금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은 한방치료비 때문이라는 게 정부 측 판단이다. 지난 5년 새 경상환자에 대한 양방치료비는 20% 감소한 반면 한방치료비는 160% 이상 폭증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난 5년간 통계를 보더라도 ‘나이롱 환자’가 주로 한방병원에 집중되고 있다”며 “이번 개선 방안도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다.

이번 개선 방안의 핵심은 차량 파손 등 대물 보상에만 적용해온 과실책임주의를 대인보상(치료비)에도 적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고(高)과실자의 치료비가 저(低)과실자에게 전가되는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은 차선 변경으로 접촉 사고가 발생했을 때 ‘차선 변경 차량’ A(과실 80%)의 탑승자가 병원비 200만원을 지출하고 ‘직진 차량’ B(과실 20%)에서는 탑승자가 가벼운 부상만 입어 전혀 치료를 받지 않더라도 해당 200만원은 전액 B의 보험사에서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앞으로 대인 사고에서도 과실책임주의가 정립되면 경상환자의 치료비 중 본인 과실은 본인 보험으로 처리하게 된다.

4주 초과 장기 치료 시 진단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것도 나이롱 환자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과거 가벼운 후미 충돌(범퍼 수리비 30만원) 사고에 따른 단순 염좌를 핑계 삼아 약 10개월간 치료를 받은 뒤 무려 500만원의 보험금을 타간 사례도 있었으나 앞으로는 진단서상 치료 기간을 넘어설 수 없다.

다만 이들 방안은 전 국민의 자동차보험 약관을 모두 바꿔야 하는 만큼 내년 표준약관 개정과 유예 기간 등을 거쳐 2023년 1월 1일(사고 발생 기준)부터 전면 시행할 예정이다.

금융위는 또 최근 한의원의 상급병실 설치가 늘면서 입원료 지급액이 급증하고 있는 만큼 상한선을 설정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자동차보험에서는 건강보험과 달리 이 같은 상한선이 없어 이에 따른 보험금 낭비가 적지 않았다. 정부는 또 한방 분야 진료수가 기준에 대해서도 향후 연구용역 등을 통해 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금융위는 아울러 부부 특약 시 배우자의 무사고 경력을 인정하고 군복무 예정자가 교통사고로 사망할 경우 병사 급여를 상실 소득액으로 간주해 보험금을 늘려주는 등 각종 국민 편익 증진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