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델타 변이 확산 후 경기 둔화 조짐이 나오는 상황에서 물가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뛰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이 1970년대 오일 쇼크 당시의 스태그플레이션과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에너지 부족 사태가 현실화하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30일(현지시간) 분석했다. 북해산 브렌트유 기준의 국제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마저 넘어서면서다.

글로벌 식료품 가격은 1년 전보다 30% 넘게 뛰었고, 다른 상품 가격도 줄줄이 10년래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주요국 중앙은행이 잇따라 기준금리를 올렸거나 인상 채비에 나서고 있는 배경이다.

프린시펄 글로벌 인베스터스의 시마 샤 수석전략가는 “인플레이션이 내년까지 지속되면서 소비에도 타격을 줄 것이란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며 “1970년대와 직접 비교하긴 어렵지만 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지난주 미 중앙은행(Fed) 및 영란은행 등의 금리 인상 신호 이후 채권을 대규모로 팔기 시작했다. 국채 금리가 단기 급등한 이유다. 각국 주가도 요동쳤다.

공급 충격이 델타 변이 확산과 맞물리면서 경기 회복을 막을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 꼽히는 중국은 심각한 전력난 때문에 생산 차질을 빚고 있다. 미국 유럽 등의 제조 및 서비스업 활동도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8월 소비자신뢰지수는 6개월 만의 최저치로 떨어졌다. 작년 초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트럭 운전자들이 절대 부족해진 영국에선 초유의 석유 부족 사태에 시달리고 있다.

앤드류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는 최근 한 경제학회 연설에서 “공급 병목 및 노동력 부족 현상이 악화하고 있다”며 “경제가 추가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유로존의 소비자 물가는 지난 8월 작년 동기 대비 3.0%까지 뛰었다.
유로존의 소비자 물가는 지난 8월 작년 동기 대비 3.0%까지 뛰었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고문은 “각국 중앙은행이 스태그(경기 둔화)와 플레이션(물가 상승)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물가 급등을 막으려면 금리를 높여야 하지만, 경기 둔화 우려 때문에 섣불리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딜레마를 겪을 것이란 진단이다.

독일 투자은행인 베렌버그의 캘럼 피커링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적인 공급난이 6~12개월 더 이어진다면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훨씬 커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비키 레드우드 수석경제고문은 “스태그플레이션 징조가 여러 나라에서 엿보이긴 하지만 내년부터는 물가가 떨어질 것”이라며 “1970년대와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