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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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회의 서비스업체 줌(ZOOM)이 클라우드 콘택트센터 '파이브나인'을 147억달러(약 17조원)에 인수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파이브나인 주주들이 합병을 거부한 게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줌의 창업자이자 대표(CEO)가 중국계 미국 시민권자라는 점에서 '미중 갈등'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30일(현지시간) 로이터에 따르면 파이브나인은 이날 "이번 거래가 주주들로부터 충분한 표를 받지 못했다"며 "합병 계획이 두 회사 간 합의로 종료됐다"고 발표했다. CNN 등 주요 외신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거래를 종료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줌은 지난 7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사업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파이브나인 인수를 결정했다. 클라우드 콘택트센터는 전화 뿐만 아니라 이메일, SNS 등 다양한 디지털 채널을 통해 고객에게 원격으로 상담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줌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 규모는 240억달러(약 27조5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가 확산된 2020년초부터 상담사들이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해주는 클라우드 콘택트센터 기술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파이브나인은 실적이 급증했다. CNBC에 따르면 파이브나인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33% 증가한 4억3500만달러를 기록했다. 합병 발표 당시 에릭 위안 줌 대표(CEO)는 "플랫폼을 향상시킬 방법을 지속적으로 찾고 있다"며 "파이브나인 인수는 고객에게 훨씬 더 큰 가치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줌의 파이브나인 인수에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란 장애물이 등장했다. ISS는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의결권 자문회사다. ISS는 피인수기업인 파이브나인 주주들에게 '합병에 반대할 것'을 권고했다. ISS는 줌의 파이브나인 인수에 대해 '"성장성 측면에서 매력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ISS의 권고는 구속력을 갖는 건 아니지만 글로벌 기관투자자 등 주주들의 의사결정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업계에 따르면 줌과 파이브나인이 합병하면 파이브나인 주주들은 현 주식 가치의 13%의 인센티브를 갖게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주들이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합병에 반대 의사를 나타낸 것이다. CNBC는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시장 성장세를 감안하면 인센티브는 적은 수치"라며 "주주들의 허락을 얻으려면 더 높은 프리미엄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중 패권전쟁의 희생양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줌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 본사가 있지만 에릭 위안 대표(CEO)는 중국 산둥성 출신의 미국 시민권자다. 줌이 중국에 연구개발(R&D) 거점을 두고 있는 것에 대한 의혹도 제기됐다. 미국 법무부는 최근 "외국인의 참여에 의해 국가 안보 차원의 위험이 제기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히고 줌의 파이브나인 인수합병이 합당한지 국가 안보 차원에서 검토를 시작한 상태였다.

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