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 서원대 교수
김병희 서원대 교수
최고 경영자의 사무실에 가보면 유달리 고사성어 액자가 많이 걸려 있다.

자신의 경영 철학을 스스로 다짐하는 면도 있겠지만, 방문객들에게 은근히 자랑하려는 의도도 있을 법하다.

방문객은 사무실 주인의 인생철학을 넌지시 엿볼 테니까. 경영자의 사무 공간에 “금조변석개(禁朝變夕改)”란 액자를 걸어 놓으면 어떨까? 조변석개를 금하라는 것. 한번 결정한 것을 아침저녁으로 뜯어고치지 말고 일관되게 과감히 밀고 나가라는 뜻이다.

나이키 30주년 기념 광고 ‘콜린 캐퍼닉’ 편을 보자. 나이키는 2018년 9월 3일에 나이키의 “Just Do It” 캠페인의 30주년 기념 광고를 내보냈다.

강렬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선수의 얼굴에 이런 카피를 붙였다. “그 무엇을 믿는다. 심지어 그것이 모든 것에 대한 희생을 의미할지라도(Believe in something. Even if it means sacrificing everything).”

여기에서 그것이란 지시 대명사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나 원칙을 의미한다. 선수의 입술 아래쪽에는 나이키 로고와 “Just do it”이라는 슬로건을 배치했다.
나이키 30주년 기념 광고 ‘콜린 캐퍼닉’ 편 (2018)
나이키 30주년 기념 광고 ‘콜린 캐퍼닉’ 편 (2018)
광고가 나가자 소비자들이 반발하며 보이콧 운동이 일어났다. 콜린 캐퍼닉(Colin Kaepernick)이 나이키 30주년 기념 광고의 모델로 부적절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토록 반발한 것일까? 풋볼 선수 캐퍼닉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팀의 쿼터백으로 유명했다.

캐퍼닉은 흑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2016 미국풋볼리그(NFL)에서 미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무릎 꿇는 행위를 보여주었다.

그와 뜻을 같이하던 동료들도 퍼포먼스에 동참하며 상당한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다. 이 일로 인해 그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불이익을 당했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그가 나이키 광고 모델로 등장하자 소비자들은 반발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도 광고 모델 선정이 잘못됐고 부정적인 메시지가 실망스럽다는 글을 트위터에 남겼다.

어떤 소비자들은 나이키 상품을 불태우는 장면을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며 격한 감정을 표출하기도 했다.

나이키가 30주년 기념 광고에서 캐퍼닉을 모델로 선정한 것은 위험 부담이 있더라도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경영진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모든 나라에서 인종 차별 문제는 민감한 사안인데, 기업의 이윤 창출이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캐퍼닉을 모델로 선정한 것이 효율성을 높이는 타당한 결정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나이키의 경영진은 논란을 예상하면서도 사회적 발언을 과감히 승인했으니, 생각이 다른 소비자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키 광고의 메시지는 과감했다. 어떤 가치가 모든 것에 대한 희생을 의미할지라도 그 가치를 신봉해야 한다는 것. 인간의 신념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비자들의 보이콧 운동이 심각하게 전개되더라도, 나이키는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캐퍼닉의 신념을 지지하면서 나이키의 브랜드 메시지를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달리 생각해보면 광고 카피가 필드에 나가기 직전에 코치가 하는 격려의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부 소비자들이 반발하기도 했지만 지지하는 소비자들도 많았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이 광고의 부가적 가치가 60억 달러에 이른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만약 소비자의 반발이나 보이콧 운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조변석개’했더라면 결코 기대하기 어려운 성과였다.

웰 스타킹(Well Stockings) 광고 ‘하이힐’ 편(2010)에서도 과감한 시도가 눈길을 끈다. 프랑스에서 여성 소비자를 대상으로 집행한 스타킹 광고다.

한 여성이 누운 상태에서 다리를 높게 쳐들고 스타킹을 신고 있는 장면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이힐을 벗지 않은 채 그 위에 스타킹을 신고 있다.

하이힐을 신은 채 그 위에 스타킹을 덧신는 바로 이 대목이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여성의 양 다리가 90도로 꺾인 듯이 겹쳐 보이는 장면에서도 스타킹의 강한 탄력성을 느낄 수 있다.

카피는 “찢어지지 않는(Unrippable)”이라는 한 마디 뿐이다. 영어에서 립(rip)은 ‘째다’ ‘찢다’의 뜻이니, 반대의 뜻을 살려 “찢을 수 없는” 혹은 “찢어지지 않는”이라고 표현했다.

상품의 특성을 한 마디로 표현함으로써 소비자 혜택이 금방 느껴지는 카피다. 비주얼에서는 하이힐을 신은 채로 스타킹을 신어도 결코 찢어지지 않는다는 상품의 특성을 과감하게 표현했다.

강한 탄력성 때문에 스타킹의 올이 나갈 일이 거의 없을 것 같다. 걸을 때 뾰족한 하이힐로 찍어 내려도 찢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은 과장법에 가깝지만, 고탄력 스타킹이라는 소비자 혜택을 확실히 주장하기에 손색이 없다. 메시지의 과감성이 이 광고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웰 스타킹 광고 ‘하이힐’ 편 (2010)
웰 스타킹 광고 ‘하이힐’ 편 (2010)
두 광고에서 채굴한 경영의 스티커 메시지는 과감성(daringness)이다. 과감성이란 한번 결정하고 나면 머뭇거리거나 주저하지 않고 용감하게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다.

경영자가 생각을 자주 바꾼다면 진행하는 사업마다 살얼음판을 걷듯이 진행될 것이다. 경영자가 결정 사항을 자주 바꾸면 모든 사람을 힘들게 한다.

의사 결정이 치명적으로 잘못됐다면 궤도를 수정해야겠지만, 세간의 자잘한 반응이나 평판에 따라 결정 사항이 조변석개한다면 직원들은 점점 경영자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최종적인 의사 결정을 하기 전에 심사숙고하되 한번 결정하고 나면 과감한 결단력으로 밀고나가야 한다.

과감한 추진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정치인도 예외는 아니다. 경영자나 정치인의 언행에 있어서도 과감성은 신뢰의 원천이다.

한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고 했다. 정책이나 경영 방침을 발표할 할 때 그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캐퍼닉이 등장했던 나이키 광고나 웰 스타킹 광고가 효과를 볼 수 있었던 원천도 일단 결정한 것을 과감히 밀고 나가는 과감성이었다.

한번 결정한 것을 바꾸지 않고 지켜나가는 과감성이 어찌 경영자나 정치인에게만 필요하겠는가? 우리의 소소한 일상생활에서도 사적 관계에서도, 과감성은 꼭 필요한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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