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로 발달한 문명 속에 살아가는 인간에게 어느덧 자연은 위험하고 불확실한 곳으로 다가오게 된다. 하지만 자연을 깊이 이해하고 같이 숨 쉬는 사람들은 순수하고 여유로운 시간 속에 편안함과 안식을 느끼게 된다. 영화<그랑블루(The big blue), 1988>는 바다에서 태어나 성장한 주인공이 인간 사회에서 잠시 경쟁 속 승리와 달콤한 사랑을 맛보지만 결국 현실 속 모든 것들과 작별하고 마치 영원한 평화를 찾는 구도자처럼 자신의 고향인 깊은 푸른 바다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현대인들이 결코 이해하기 어려운 무념무상 속 삶의 철학을 생각하게 된다. <영화 줄거리 요약>
그리스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수영을 좋아하는 자크(장 마크 바 분)는 어릴 적 잠수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바다와 돌고개를 가족으로 여기며 외롭게 성장한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마을 친구 엔조(장 르노 분)는 잠수 실력을 겨루는 경쟁 대상이자 단 한 명의 우정을 다지는 친구다. 엔조는 성장하여 프리다이빙(보조 기구 없이 잠수)의 세계 챔피언이 되자 세상과 닮을 쌓고 돌고래와 살아가는 자크를 어렵게 찾아내서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타오르미나에서 열리는 세계 잠수대회에 초청한다. 한편 대회에서 자크를 만난 뉴욕에서 온 보험사고 조사원 조안나(로잔나 아퀘트 분)는 고래의 박동수와 같은 심장을 가지고 지갑에 돌고래 사진을 가족사진으로 가지고 다니는 신비하고 우수에 찬 자크의 눈부신 모습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마침내 대회가 열리고 자크가 승리하자 엔조는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다시 새로운 기록에 도전하기 위해 무리한 잠수를 시도하다가 죽게 되자 자크는 심경에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관전 포인트>
A. 엔조가 잠수대회에 자크를 초대한 이유는?
엔조는 프리다이빙 세계 챔피언이 되었지만, 그의 진정한 경쟁자는 자크라고 여겨 20년 만에 그를 찾아 잠수대회에 초대하여 진검승부를 통해 세계 최고 다이버를 가리려 한다. 하지만 돌고래와 같은 바이오리듬을 가지고 있는 자크가 최고기록을 내게 되자 엔조는 무리한 도전임을 알면서도 죽음을 각오하고 잠수를 시도하다가 죽게 된다. 죽어가면서 엔조는 친구에게 "자크 네 말이 맞았어. 바다 아래가 훨씬 더 좋더군. 더 멋진 곳이었어, 나를 다시 물속으로 돌려보내죠, 나를 물밑으로 데려다줘"라고 간청하자 자크는 눈물을 흘리면서 친구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준다.
B. 엔조가 죽고 난 뒤 자크는 어떤 환영을 보게 되나?
자크는 평생을 바다와 함께 해왔지만, 잠수 대회를 준비하면서부터 바다는 자신이 넘어야 할 숙제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아버지와 엔조를 집어삼킨 바다가 더는 가족 같지 않게 느껴지기도 하여 침대 가득 물이 차오르며 돌고래 떼가 몰려들면서 바다로 이끌리는 꿈을 꾸게 된다. 그는 “바다 밑바닥에 내려가면 바닷물은 더 이상 푸른빛이 아니고, 하늘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죠. 그리고는 떠다니는 거죠, 고요 속에서. 그곳에 머무르며 인어를 대신해 죽을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길 때 그들이 나타나죠, 우리를 반겨주고 그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판단하죠. 만약 그것이 진실하다면, 만약 그것이 순수하다면, 그들은 함께 있을 거예요. 영원히 곁에 있을 거예요.”라고 하면서 배를 몰아 바다로 향한다.
C.평소 자크가 바다를 그리워하던 말은?
자크는 잠수할 때면 "추락하지 않고 미끄러져 떨어지는 느낌이야. 가장 힘든 건 바다 맨 밑에 있을 때야. 왜냐하면 다시 올라와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하거든. 항상 그걸 찾는 게 너무 어려워"라며 보통 남자들이 생각하는 사랑, 욕망, 성공이라는 현실에 갇히는 것을 거부한다. 그는 잠수하러 가는 길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는 물속에 잠긴 것처럼 윙윙거리며 희석되고, 돌고래 소리가 들린다. 그는 대지 위의 삶의 목적이나 사람들의 기대를 위해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돌고래들이 그를 부르고 그곳이 그가 원래 있어야 하는 곳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다. 자크는 돌고래 혹은 바다로 태어났다고 봐야 한다. 그는 물이 있는 곳에는 자신이 정장을 입고 있든지 누구와 있든지 상관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뛰어든다. 그는 바닷속에서 돌고래들과 교감할 때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웃음을 짓는다. 그에게 바다가 집이고 가장 안락한 안식처인 셈이다
D. 조안나와의 마지막 이별은?
평소 엔조는 직장까지 포기하고 자크에게 매달리는 조안나에게 "당신은 그에게 푹 빠져 진실을 못 보고 있어요. 자크를 평범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는 다른 세계에서 왔어요."라며 자크의 신비한 모습에 빠진 조안나에게 경고한다. 하지만 조안나는 그의 아기까지 가지면서 그를 현실에 잡아두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크는 더욱 바닷속으로 헤엄쳐간다. 영원히 떠나려는 자크에게 조안나는 "가서 무엇을 본다는 거예요?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밑은 어둡고 차가울 뿐이에요. 당신 홀로 있을 뿐이에요. 나는 여기 있다고요. 난 허상이 아니고 현실 속에 이렇게 있잖아요?"라고 절규하지만, 자크는 " 난 가서 봐야 할 것이 있어"라며 무섭고 매혹적인 바닷속으로 조안나를 두고 영원히 그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E. 영상효과를 높인 촬영기업은?
뤽 베송 감독은 슬로모션 촬영기법을 이용하여 고양된 의식 상태에 있는 세계 최고의 심해 다이버를 정확히 묘사하는 데 성공한다. 의식이 높은 상태에서는 슬로모션으로 아름다움, 우아함이 주관적 감각으로 자주 감지된다. 시간은 멈춘듯하고 세상의 소음에도 불구하고 내면은 침묵한다. 영화 전체에서 자크의 집중은 강렬함으로 그런 상태를 유지하는 것과 그로 인해 거의 항상 명상 상태에 들어 있는 것을 본다. <에필로그>
오늘의 사회는 푸른색이 사라진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현란한 세계의 조작된 조명은, 그윽하고 깊고 무한한 상상과 그리움이 깃든 푸른색을 수용할 수 없다. 영화 속 주인공은 현실 속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이 진정으로 추구하고 사랑하는 가치를 향해 깊고 푸른 바닷속으로 내려가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죽음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영원한 자유를 위해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구도자 같은 그의 모습을 보면서 현실의 짜인 틀에 갇혀 앞만 보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서태호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