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 뉴욕증시는 코로나19 발생 초창기인 작년 3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글로벌 경제를 둘러싼 여러 변수가 있지만 주식시장 변동성을 키운 가장 큰 요인으로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꼽힌다. 세계적으로 공급망 충격에 따른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커지면서 10월 장세도 낙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월가에서는 이런 때일수록 강력한 가격 결정력을 가진 우량주로 방어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Getty Images Bank
Getty Images Bank

“1970년대식 인플레 온다”

"인플레 역습…가격 결정력 가진 대형주로 방어를"
뉴욕증시에서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는 9월 한 달간 각각 4.8%, 4.3% 하락해 작년 3월 이후 1년6개월 만에 가장 큰 낙폭을 보였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도 지난해 10월 이후 최대인 5.4% 떨어졌다.

미국 등 주요국에서 지난달 증시가 약세를 보인 이유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반영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시장 전문가들은 반도체 부족, 원자재 가격 상승에 코로나19로 인한 물류 대란, 구인난 등이 공급체인에 충격을 줬다고 보고 있다. 미국, 중국 등에서 연말 쇼핑 대목을 앞두고 있지만 상품 확보에 차질이 생기면서 주가가 급락한 소비주도 많다.

최근엔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도 예상보다 물가 상승이 길어질 것이란 견해를 내놨다. 파월 의장은 지난달 29일 유럽중앙은행(ECB)의 화상 콘퍼런스에서 “강력한 상품 수요와 병목 현상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를 넘어서고 있다”며 “앞으로 몇 달 동안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라고 강조해온 파월 의장이 기존과 다른 얘기를 꺼내면서 통화정책 긴축 속도가 빨라지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시장 전문가 사이에선 1970년대와 같은 인플레이션 위기가 올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을 지낸 스티븐 로치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 장기화를 우려하며 “공급사슬 병목 현상이 1970년대 초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UBS “가격 결정력 가진 종목 매수해라”

월가에서는 인플레이션 우려로 시장 변동성이 커진 때일수록 업종 내 가격 결정력을 가진 종목에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UBS는 최근 보고서에서 “금융, 에너지, 유틸리티 등에서 강력한 가격 결정력을 가진 대형주가 물가 상승기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보였다”며 “가격 결정력을 가진 종목은 물가 상승기 이후 12개월 동안 그렇지 못한 종목 주가를 20% 이상 웃돌았다”고 분석했다.

키스 파커 UBS 전략가는 “급증하는 운송 비용, 원자재 가격 상승, 공급망 문제, 임금 인상 등을 고려하면 ‘가격 결정력’ 테마는 앞으로 몇 분기 동안 계속 화두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3분기 실적 시즌에도 인플레이션 이슈는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UBS가 꼽은 물가 상승기 유망한 종목은 스타벅스, 퍼스트하와이안, 파퓰러, 모엘리스앤컴퍼니, 힐튼, 큐리그닥터페퍼, 솔라에지테크놀로지스, 제네락홀딩스, 도미니언에너지, 해즈브로 등이다.

파퓰러는 푸에르토리코 최대 은행이며, 퍼스트하와이안은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기반 은행이다. 브룩 밴더블리엣 UBS 애널리스트는 “두 회사 모두 지역 내에서 과점 지위를 가진 은행이라 압도적인 가격 결정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파퓰러와 퍼스트하와이안 주가는 올 들어 각각 40%, 25%가량 올랐다.

대체에너지 관련주로는 제네락홀딩스와 솔라에지테크놀로지스를 ‘톱픽’으로 꼽았다. 제네락은 올해 약 78% 뛴 종목이다. 식음료 회사인 큐리그닥터페퍼에 대해선 “청량음료는 저렴한 사치품”이라며 “소비자가 가격에 덜 민감할 상품군”이라고 설명했다.

인플레이션 시기 대안으로 배당주를 꼽는 이들도 있다. 더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더라도 배당액 인상으로 수익률 상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다. 미국 투자전문지 배런스는 물가 상승, 금리 인상기 추천주로 금융주를 제시했다.

빌 나이그렌 오크마크펀드 펀드매니저는 “은행주는 금리가 상승하면 예대마진 증가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씨티그룹을 최선호주로 지목했다. 이 밖에 에너지 업체인 코노코필립스도 배당 증액이 커 물가 상승기 헤지(위험 회피) 종목으로 꼽혔다.

데이비드 카츠 매트릭스애셋어드바이저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코로나19 이후 여행, 레스토랑, 스포츠 경기장 등이 다시 문을 열면서 필수소비재가 수혜를 볼 수 있다”며 코카콜라를 인플레이션 시기 톱픽으로 선정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