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기 칼럼] 50억원이 없어도 행복한 이유
정말 지독하게 힘든 상황도 겪어 보았고, '상류사회의 인간들'과 어울리며 즐긴 시절도 있었다. 진짜 행복한 게 무슨 뜻인지 아직도 모르지만, 적어도 누군가를 죽인 적은 없고, 가슴에 피 멍 들게 한 적 없으며, 가끔 욕도 먹고 비난도 받았지만, 검찰의 조사를 받거나 교도소에 갈 일을 한 적은 없다.

요즘도 가끔, 힘들고 괴로운 적도 있지만, 그래도 때때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슈베르트와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을 듣거나 파가니니와 브람스의 바이올린을 들을 수 있다는 거,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들으며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정말 탁월한 기쁨이다. 특히, 고흐의 카페를 연상하며 찐한 커피를 마시면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협주곡을 듣거나 바흐의 무반주첼로 독주를 들을 때는, 만족을 넘어 희열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축복받을 일이다.

20대 초반에 사랑하는 여인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하며 최고의 피아노곡을 작곡한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1번과 2번”을 들을 때면, 그 순서가 바뀌었다고 해도, 그게 무슨 대수랴? 두 곡 모두 2악장으로 넘어갈 때는 화장실 가는 것도 아까운 것을.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의 “행복론”을 읽으며, 불행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음은 또 다른 행복이고, 반 룬이 지은 역작, “예술의 역사”를 두 번째 읽는 즐거움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 예술의 향기가 발생한 원천을 찾을 수 있어 기뻤다. 80여 년 전, 나폴레옹 힐이 20년 동안 연구해서 쓴 책, “성공의 법칙(Law of Success)”를 원서 두 번, 번역서 두 번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성공한 인생인 듯한 기분이다.

어쩌다 쓴 책이 3쇄를 찍었다는 소식을 듣거나, 한국경제신문에 쓴 글이 독자들의 인기를 얻어 높은 순위에 오를 때는 기쁨과 즐거움이 동시에 겹치는 느낌이 든다. 잊은 지 오래된 친구로부터 전화가 오거나, 책을 읽은 독자로부터 메일을 받을 때, 강의를 듣는 학생으로부터 고맙다는 문자가 올 때는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

박사학위도 없이 대학강의를 17년간 하면서 학생들에게 늘 미안하고 부끄러웠지만, 그래서 더욱 열심히, 부족함을 채우려고 애를 썼다. 간혹 학생들의 불만이 있거나 독자들의 비판적 평가가 있을 때는 즉시 사과를 하면서 보완하고 개선하는 모습을 보이고, 창피스러운 현장을 도망가지 않고, 외면하지 않았다. 잘못을 인정하면서 고마움을 전했다.

이런 삶의 방식이나 존재의 형식이 돈 많은 부자이면서 권력까지 겸비한 사람들에게는 우습게 보이겠지만, 가난하고 여린 내 친구들은 충분히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홍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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