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국에 대해 고율관세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이 미·중 간 기존 합의를 지키지 않으면 슈퍼 301조(무역법 301조)를 발동할 수 있다고 압박했다. 통상분야에서 트럼프 전 행정부의 대중 강경 방침을 거의 그대로 이어갈 뜻을 선언한 셈이다.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4일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이같은 내용의 대중 통상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 8개월만에 대중 통상정책의 세부 내용을 공개한 것이다.

타이 대표는 이날 중국에 "미·중 1단계 무역합의를 준수하라"고 촉구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지난해 1월 체결된 1단계 무역합의다. 중국이 2020~2021년에 미국의 제품과 서비스를 2017년 대비(2000억달러)보다 더 많이 구입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중국이 1단계 무역합의 목표에 40% 가량 모자란 미국 제품 등을 구입했다고 전했다. 올들어 8월말까지도 이행 목표의 30% 못 미친다고 했다.

타이 대표는 "우리는 1단계 무역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1단계 무역합의에서 다루지 않은 중국의 국가 중심적이고 비시장적인 무역 관행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하고 있다"며 "이러한 광범위한 정책 문제를 중국 정부에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하고, 필요할 경우 새로운 수단도 개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타이 대표는 '무역법 301조를 새로 발동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는 질문에 "상황에 달려 있다.
가능한 모든 수단이 내게 있다"며 "301조는 아주 아주 중요한 수단이고 모든 가능한 수단을 살필 것"이라며 그 가능성을 열어뒀다.

무역법 301조는 트럼프 전 행정부가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고율관세 등 보복조치를 위한 무기로 썼던 조항이다. 미국은 이 법에 따라 불공정무역 관행에 해당되는 사안을 대상으로 상대국에 대해 시정 요구와 보복 조치를 할 수 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고위 당국자가 이날 브리핑에서 타이 대표가 중국과의 화상 회담을 곧 추진할 것이라면서 대중 고율관세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당국자는 1단계 합의 준수 압박을 위한 신규 관세 부과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지만 미국이 2단계 합의를 위한 협상을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타이 대표는 중국과의 무역 긴장 심화가 미국의 목표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표적 관세 배제 절차'(targeted tariff exclusion process)를 재개할 뜻을 내비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표적 관세 배제 절차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중국산 수입품을 대체할 방안을 찾지 못한 기업에 대해 관세 적용을 예외로 해주던 제도다. 작년말 시한이 만료된 상태였지만 바이든 행정부 들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타이 대표는 문답에서 "내가 이전 행정부의 시도를 실패한 것으로 규정했다고 하는 건 온당하지 않다고 본다"면서 "우리가 갈 곳으로 이끌지 못했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미국과 중국의 탈동조화(decoupling·디커플링) 여부에 대해서는 "국제 경제의 관점에서 현실적 결과라 보지 않는다"면서 미국이 추진하는 건 일종의 '재동조화'(recoupling·리커플링)'이라고 했다.

로이터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무역정책은 트럼프 시절을 연상시킨다고 평가했다. WSJ는 "주미 중국대사관은 타이 대표 연설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며 "바이든 정부는 중국에 덜 의존하는 형태로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중국에 맞서 동맹국들을 규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