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사상 최악의 자금난을 겪고 있는 서울 지하철이 유동성에 숨통을 트이게 됐다. 공사채 발행으로 7000억원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다만, 이 같은 조치는 '빚 돌려막기'에 불과해 내년 이후에도 자금난이 반복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이달중 공사채 발행 허용 논의

4일 관련부처에 따르면 지방공기업의 재무건전성을 관리·감독하는 행안부는 서울교통공사의 7000억원 규모의 공사채 추가 발행을 승인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이를 위해 행안부는 이달 중 지방공기업정책위원회와 공사채발행심의위원회를 잇따라 열어 관련 내용을 논의할 예정이다.

서울교통공사는 만성적인 적자구조에 코로나19에 따른 승객감소로 올해 부족자금이 1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자금상황이 악화하면서 연말에 갚아야할 기업어음(CP) 7200억원도 갚지 못할 위기에 처해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서울교통공사의 모라토리엄(지불유예)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 자금난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선 공사채 발행이 유일하다"며 "공사 노사간 잠정합의에 따른 자구노력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초 행안부는 '서울교통공사의 자구노력이 있어야 공사채 발행을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공사측은 1500명의 인력감축을 골자로 하는 자구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노조의 총파업 압박에 결국 구체적인 인력감축 수치는 빠진 채로 '노사공동협의체를 구성해 경영정상화 방안을 진행한다'는 내용의 노사 잠정합의안이 지난 달 13일 마련됐다.

공사채 발행기준 잇딴 완화

하지만 서울교통공사가 공사채 발행으로 올해 유동성 위기를 넘어간다해도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사는 그동안 공사채, CP를 찍거나 서울시의 단기융자를 빌려 빚을 돌려막기해왔다. 이번에 서울교통공사가 7000억원의 공사채를 발행하려는 것도 오는 12월 만기가 돌아오는 CP를 갚기 위한 것이다.

서울교통공사의 7000억원 공사채 발행은 오는 12월 만기가 돌아오는 CP를 갚기 위한 것이다. 단기채를 장기채로 바꿔 상환부담을 미래로 넘기겠다는 것이다.

서울교통공사의 공사채 발행잔액은 6월 말 기준 2조380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41.7% 급증했다. CP까지 합치면 공사의 채권 발행액은 2조7580억원으로 부채 비율이 행안부의 규제상한선(130%)에 근접한 120%에 달한다.

공사의 재무건전성을 위해 엄격하게 관리해야할 공사채 발행·운영기준의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행안부는 전국 6개 교통공사 중 서울교통공사에 대해서만 부채비율 한도를 100%에서 130%로 높여준 데 이어 공사채 발행 허용범위를 잇따라 완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원칙적으로 공사채 발행은 전동차 구매 등 사업투자비에 한해서만 가능하도록 규정돼 있다.

행안부는 지난해 코로나19 등 재난으로 발생한 운영비에 대해 공사채 발행을 허용했다. 이번에는 공사채 발행 항목에 ‘요금 인상 유예에 따른 운영비 부족’을 신설해 달라는 서울시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서울교통공사의 자금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만 65세 이상 무임승차에 대한 국비 지원과 대중교통 요금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고흥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최근 도시철도 정책포럼에서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무임승차를 포함한 원가 이하 요금에 따른 손실을 분담해야한다"며 "원가상승률이 요금의 일정 비율이 되는 경우 시의회 동의와 물가대책심의위원회 과정을 생략하고 공사가 운임수준을 결정하도록 절차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