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산하 행정기관 위원회가 올해 사상 처음으로 600개를 돌파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부 주도의 국정과제가 많아지고, 각종 규제가 확대되면서 새 위원회가 대거 추가된 결과로 분석된다. 하지만 위원회 9개 중 1개는 지난 1년간 회의를 한 차례도 열지 않는 등 제대로 운영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우후죽순 생기는 위원회

5일 행정안전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전국 행정기관 위원회 수는 622개로 집계됐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 22개, 국무총리 소속 60개, 부처별 540개 등이다. 1년 전 585개에서 37개(6.3%) 증가했다. 올해 들어서만 2050탄소중립위원회, 수소경제위원회, 납세자보호위원회, 중앙소음대책심의위원회,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등 29개가 늘어났다.

역대 정권 중 600개가 넘는 위원회를 운영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처음이다.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노무현 정부는 임기 중 579개 위원회를 가동했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530개로 줄였고, 박근혜 정부 때도 28개만 늘려 558개를 운영했다.

행정기관 위원회는 정부가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주로 전문성을 보완하거나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다. 탄소중립위원회는 전자, 최저임금위원회는 후자에 해당한다. 하지만 위원회가 정부 정책과 반대로 가는 경우는 드물다는 평가다. 정부가 위원회에 결정을 위임하는 형식을 취하면서도 실제로는 임명권 등을 앞세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정권 입맛대로 정책을 좌우하면서도 비판을 피해가기 위한 면피용으로 위원회를 설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탄소중립·최저임금도 위원회가 결정

지난 8월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한 2050탄소중립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던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탄중위가 결론을 정해놓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전문가와 관계부처 공무원들이 포함된 기술작업반이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 상황에서 위원회가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3안을 시나리오에 포함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전문가 의견보다는 정권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안을 밀어붙이는 데 위원회라는 조직이 이용되고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현 정부 들어 급격하게 오른 최저임금과 건강보험료율 결정도 위원회를 통해 이뤄졌다. 경제계 관계자는 “최저임금위원회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근로자와 사용자 또는 공급자와 가입자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에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이 사실상 결정을 주도한다”고 말했다.

221개 1년간 대면회의 ‘0회’

622개 위원회 중 개점 휴업 중인 곳이 많은 것도 문제다. 부동산가격안정심의위원회, 국가식생활교육위원회, 만화진흥위원회 등 71개는 지난 1년간 회의를 한 차례도 개최하지 않았다.

한 부처 관계자는 “회의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 열리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정부가 판단을 유보하고 싶을 때도 위원회에 사안을 넘기고 회의를 자주 하지 않는 방식을 이용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국립공원위원회, 수산물유통발전위원회, 소상공인시장진흥기금운용위원회, 청소년정책위원회, 뿌리산업발전위원회 등 150개는 회의를 개최하기는 했지만 대면회의를 한 적은 없었다.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위원회는 매년 정비 대상에 이름을 올린다. 하지만 위원회가 폐지되거나 통폐합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올해는 84개가 정비 대상에 올라 9개가 폐지 결정됐다. 9개는 통폐합을 추진 중이고, 나머지 66개는 계속 운영하도록 했다. 지난해는 4개, 2019년엔 5개, 2018년엔 7개만이 폐지 또는 통폐합됐다.

위원회가 정치에 참여하려는 교수들의 활동 무대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수천 명에 이르는 위원회 소속 위원 중 교수 등 학계 인사가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A부처의 한 사무관은 “교수 출신 장관이 수개월의 짧은 임기 동안 친분이 있는 교수들을 대거 산하 위원회 위원으로 임명했다는 소문이 돌아 논란이 된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