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갈이와 어장관리의 중요성[김태엽의 PEF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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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FO insight]
김태엽 어펄마캐피탈 한국대표 taeyub.kim@affirmacapital.com
김태엽 어펄마캐피탈 한국대표 taeyub.kim@affirmacapital.com
이제 가을이다. 저녁 날씨도 이제 제법 쌀쌀하고, 잊을만 했던 뱃살도 슬슬 올라온다. 골프 약속도 꽉 찼고 할로윈 파티도 준비해야 할 때다. 휴일도 많다. 역시 가을이 제일 바쁘다.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바쁜 가을'이란 말에 격하게 동감할 것이다. 왜냐고? 바로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내년도 사업 계획 작성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예산은 필연 당해년도 예상 실적 및 목표대비 달성률을 전제로 한다. 이런 평가는, 다시 한 번 필연적으로 인사평가를 불러 온다. 자, 오늘의 본론이다. 경영진 쇄신, 혹은 이른바 '물갈이'는 언제 해야 하나, 그리고 이를 위한 '어장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필자가 사모투자를 운영하면서 개인적으로 제일 스트레스 받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단연코 "선수교체"라고 답할 것이다. 운용사 자체의 팀원 교체도 힘들고, 투자한 회사의 임직원 교체도 이른바 감정적 소비가 너무 크다. 게다가 소수 지분을 투자한 기업의 경우, CEO를 포함함 핵심 임원의 교체시에는, 계약서에 적힌 권리보다 훨씬 많은 노가다와 협의, 읍소 그리고 조르기 기술이 필요하다. 아, 이 글을 쓰면서도 벌써 지친다.
그러면 이런 선수 교체를 결정할 때 필요한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지난 십 수년간의 얄팍한 경험을 비추어 말해보면, (1) 성과 (혹은 "숫자", 즉 목표 대비 달성율), (2) 향후 전략 방향에 대한 적합성 (혹은 "fit", 즉 얼마나 합이 맞는지), (3) 교체 대안과의 비교 결과가 있겠다. 아, 독자들이 또 그러겠구만 - "이 피도 눈물도 없는 펀드같으니라구." 어느 동생이 이야기했다, 숫자가 인성이라고. 냉혹한 전장에서 결과 앞에 장사가 없는 것이다.
물론 1~3번의 요소들은 상당한 상호 작용을 한다. 예를 들어 실적은 미달인데 대안은 없고 사람은 괜찮다. 그럼 1년 더 기회를 주려고 할 것이다. 반대로 실적은 좋은데 실상 까보면 시장이 좋았던 거고 사람은 별로다 근데 대안은 또 없다. 그럼 사람을 고쳐보려고 할 것이다(근데 사람은 안변한다). 실적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갑자기 에이스가 나타났다. 그럼 바꿀지말지 머리가 터질 것이다(바꿔야지…당연).
자, 자, 이제 기다리던 맛집 비법 공개의 순간이다. 이런 저런 요소를 고려했을 때 선수교체 혹은 이른바 "물갈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 바로 "타이밍"과 "대안". 어, 쓰고 나니깐 투수 교체랑 비슷하다. 좀 오래되긴 했지만 참고할 만한 사례를 나눠보자.
피투자회사 A는 소비재 관련 'top 3'에 들어가는 회사였다. 기존 B 창업주가 건강 및 나이를 이유로 경영권을 우리에게 매각하면서 안정적인 경영진의 전환을 도와주기 위해 1년 정도 대표이사로 남아서 경영해 주고 일부 지분을 유지하는, 아주 일반적인 계약을 체결했다. 회사는 이런 저런 위기를 겪고 있었지만 충분히 극복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창업주를 제외하면 2세대 경영진들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의 착각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이른바 cash-out을 한 B 대표 즉 창업주는, 통상적으로는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고 이미 '내것이 아닌' 회사에 대하여 애정은 있지만 몸은 없고싶은 시점이 온다. 그간 경험을 보면 이른바 힘빠지는 시간이 3~6개월 정도이다. 실적은 슬슬 빠지기 시작했고, 단단해 보였던 2세대 경영진들도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12개월 뒤 교체를 예상하던 나에게는 '멘붕'의 시간이 왔던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100점은 아니지만 훌륭한 90점짜리 CEO 후보인 C씨를 B 창업주가 추천하면서 당초 예상보다 훨씬 앞서 첫 번째 대표이사 교체를 이루어냈다. 그리고 회사를 6개월 정도 먼저 들어온 B임원이 CFO이자 CSO로 고군분투하면서 합을 잘 맞추어갔다.
두번째인 C 대표가 자리를 잡으면서 실적은 회복되기 시작했다. 고객 수도 늘고 매출도 늘고, 이익도 그럭저럭 늘고. 버는 대로 투자해서 매출을 다시 만드는 C대표 스타일에 적응을 할 무렴, 직업병인지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다 좋은데 뭔가가 좀 빠진 듯한 느낌. 불안할 때는 분석이 최고다. 첫 1년간의 실적을 가지고 잘게잘게 다져보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지?
몇 개월 꼼꼼히 보니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매출과 EBITDA는 느는데 영업이익은 정체인 점. EBITDA는 느는데 회사의 현금은 늘지 않는 점. 외생적으로 봐도, 회사의 실적회복은 전략의 성공이라기 보다는 산업 전반의 개선에 있었던 점. 대표이사가 약속했던 신사업 매출 부분의 영업 이익 기여도는 훨씬 낮았고, 반면 신사업별 Capex 금액은 거의 매번 예산을 초과했다. 인력 이탈률도 살짝 올라갔고, 고객사의 컴플레인도 아주 살짝 올라가는 데이터가 발견되었다.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바꿔야겠다는 확신은 있었지만 대안이 없었다. 반면 회사의 실적은 그럭저럭 회복해 갔다. 뇌세포가 게을러지기 좋은 환경이었다.
여기서 나는 첫 번째 실기를 했다. 차라리 과감히 이 타이밍에 회사를 매각했었다면 나쁘지 않은 실적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조금만 더, 1년만 더를 반복했고, 결국 산업 사이클이 바뀌면서 회사의 이익은 정체되기 시작했다. 대안의 부재와 물갈이의 실기라는 두가지 실수를 한 후에야 서둘러 CFO였던 B본부장을 대표이사 대행으로 올리고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한 1년반 정도 늦은 타이밍이었다.
회사는 불안불안했지만 수익성 위주로 빠르게 전환해갔다. 대표이사가 아니고 대표이사 대행 체제로 둔 것은 대안을 적극적으로 찾기 위함이었다. 세 번째 대표이사 교체가 이루어지고 나서 첫 1년간 정말 열심히 내 맘에 쏙드는 120점짜리 대표이사 후보를 찾기 시작했고, 1년이 조금 넘은 후에야 네 번째이자 마지막 대표이사를 찾아서 교체할 수 있었다. 나는 이 고통스런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을까?
첫 번째, 물갈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점이다. 국내 유수의 기업에 2대 주주로 투자한 X회사에서도 비록 지분율로 보면 20%도 안되는 소수지분이었지만 정말 회장님, 회장님 친척, 사모님, 홀딩스 사장님, 홀딩스 사장님 오른팔 왼팔 다 동원해서 대표이사를 두 번이나 바꾼 적이 있다. 골골하던 회사는 대표이사가 바뀌자마자 새로운 시각으로 사업을 바라보고, 그간의 고인물들도 청소가 된다. 지금은 3배 이상 수익을 낸 투자로 기록되어 있지만 엑시트하는 마지막 한 해만 이익을 내고 계속 적자를 지속하던 '후덜덜한 투자'였다. 아니다 싶을 때, 혹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될 때 다음 투수를 염두해둬야 한다. 반박자 빠른 게 반박자 느린 것보다 항상 나았다. 나의 경우, 1년 반 정도 지나면 '냉정한' 판단을 반드시 내려야했다.
두 번째, 항상 어장관리, 즉 교체의 대안을 마련해 두어야한다는 점이다. 잘 나갈 때 그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하물며 어떤 산업에 투자를 한다면, 끊임없이 그 산업에서 잘 나가는 대표님들, 창업주들, 월급 임원들, 그리고 임원을 꿈꾸는 팀장들을 습관처럼 만나둔다. 이른바 내가 주 투자 전략으로 삼고 있는 Bolt-on도 실상은 이렇게 끊임없이 경쟁사들, 밸류체인 앞뒤로 있는 회사들, 고객사들을 투자 전후에 만나면서 얻어걸리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지금 잘하는 임원도, 시장에서 더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what-if를 생각해 보는게 펀드매니저로서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탐나는 임원들, CEO들은 반드시 누가 채가기 때문이다. 경쟁사로 막상 가버리면 얼마나 아깝겠는가?
마지막으로, '숫자가 인격'인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투자업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같은 회사를 오래 보고 같은 경영진들을 오래 만나면 정들고 냉철한 판단이 흐려진다. 월별, 분기별 실적을 냉철히 분석하고, 대표이사 혹은 CFO가 분석하는 실적의 원인을 반드시 같이 새로운 시각으로 검증해봐야 한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그들 밑에 있는 임원들, 팀장들, 사원들이 '의도를 갖고' 만들어 주는 자료를 믿을 수밖에 없다. 이런 선입견이 오판을 만들고, "한 번만 더"를 양산한다. 그럼 어떻게 숫자를 판단해야할까? 나는 냉철한 판단의 기초는 정확한 사업계획 설정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예산을 얼마나 달성할 수 있는지 1년 정도 지켜보면 경영진의 실력을 알 수 있다. 고객사의 주문을 얼마나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지, 영업조직을 어느 정도 키워야 할지, capex를 얼마나 더 넣으면 매출이 몇 개월 뒤부터 나올 수 있을지, 인센티브는 얼마 정도 더 줘야 내년에도 핵심 인력들이 남아 있을지, 이런 세세한 것들을 미리 예측하지 못하고 '전년 대비 10% 성장' 이딴 식의 예산이 올라오면 나는 바로 물갈이를 준비한다. 사업 계획을 정확히 뽑을 수 있다는 점은, 회사 안팍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는 방증이다!
흠, 쓰고 나니 오늘은 왠지 너무 정없는 이야기만 한 것 같다. 그래서 하나 더 사족을 붙이겠다. 만약 이글을 읽는 독자가 다양한 자회사를 관리하거나 투자한다면 꿀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 유능한 CXO를 다른 투자사의 햇병아리 임원들에게 소개하라(식사, 골프, 술, 등산, 낚시 등등). 그럼 우리의 스타 CXO들은 신나게 자기 비법을 공개해 준다. 그러면 B급 햇병아리들이 A급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우리의 유능한 CXO들이 "어 이 친구는 쭉정이에요"라고 이야기 해준다.
(2) 재활용, 재배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한 회사의 A급 인재면 다른 회사의 S급 인재가 될 수도 있다. 특히 fit과 경험은 좋은데 산업이랑 딱 스타일이 안맞거나 경영진들과 궁합이 좀 그런 임직원은 다른 환경에서 한 번 더 기회를 줘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경영진들도 '당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두번째 기회를 부여받은 그 임직원은 절치부심해서 더 열심히 할 것이고, 최소한 우리 팀들과 커뮤니케이션은 아주 잘 될 것이기 때문에.
(3) 헤어지더라도 잘 헤어져야 한다. 임원으로 우리와 인연이 되었다가 실적 이슈로 우리 투자 회사에서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게 되더라도, 그게 그 임원이 실패자라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처음 조인했을 때의 성장 단계에서는 가장 맞는 임원이었으나 회사가 그 다음 레벨로 커가면서 좀 더 다른 역량과 역할을 할 수 있는 임원으로 교체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렇게 우리 투자사와 헤어지게 되는 임직원들이 어디서 어떻게 또 우리와 인연을 맺을지 모른다. 나의 경우, 정말 별 일들이 다 있었다. 우리 고객사 대표가 된 적도 있고, 창업을 해서 성공을 해서 내가 오히려 투자하고 싶다고 만난 적도 있고, 우리 투자회사를 인수하려는 대기업으로 옮겨가서 다시금 경영진으로 재입성 하려는 경우도 있었다.
인사는 만사이고,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가장으로서, 나와 함께 일해 준 사람에게 또 가장에게 회사를 나가달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정말 뼈를 깎는 것만큼, 살을 자르는 것만큼 고통스럽다. 그래도 해야 한다. 그러니 잘 하자. 그리고 미리미리 하자. 그러면 그 회사에서 일하는 100명, 1000명의 직원들, 그리고 300명, 3000명의 그 가족들이 더 여유를 갖게 된다. 우리의 인연은 자고로 끝났을 때 끝난게 아니다. 어장관리를 하자, 그리고 기꺼이 어장 속의 물고기가 되어 주자. 그렇게 우리의 인연을 이어 나가자.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필자가 사모투자를 운영하면서 개인적으로 제일 스트레스 받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단연코 "선수교체"라고 답할 것이다. 운용사 자체의 팀원 교체도 힘들고, 투자한 회사의 임직원 교체도 이른바 감정적 소비가 너무 크다. 게다가 소수 지분을 투자한 기업의 경우, CEO를 포함함 핵심 임원의 교체시에는, 계약서에 적힌 권리보다 훨씬 많은 노가다와 협의, 읍소 그리고 조르기 기술이 필요하다. 아, 이 글을 쓰면서도 벌써 지친다.
그러면 이런 선수 교체를 결정할 때 필요한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지난 십 수년간의 얄팍한 경험을 비추어 말해보면, (1) 성과 (혹은 "숫자", 즉 목표 대비 달성율), (2) 향후 전략 방향에 대한 적합성 (혹은 "fit", 즉 얼마나 합이 맞는지), (3) 교체 대안과의 비교 결과가 있겠다. 아, 독자들이 또 그러겠구만 - "이 피도 눈물도 없는 펀드같으니라구." 어느 동생이 이야기했다, 숫자가 인성이라고. 냉혹한 전장에서 결과 앞에 장사가 없는 것이다.
물론 1~3번의 요소들은 상당한 상호 작용을 한다. 예를 들어 실적은 미달인데 대안은 없고 사람은 괜찮다. 그럼 1년 더 기회를 주려고 할 것이다. 반대로 실적은 좋은데 실상 까보면 시장이 좋았던 거고 사람은 별로다 근데 대안은 또 없다. 그럼 사람을 고쳐보려고 할 것이다(근데 사람은 안변한다). 실적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갑자기 에이스가 나타났다. 그럼 바꿀지말지 머리가 터질 것이다(바꿔야지…당연).
자, 자, 이제 기다리던 맛집 비법 공개의 순간이다. 이런 저런 요소를 고려했을 때 선수교체 혹은 이른바 "물갈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 바로 "타이밍"과 "대안". 어, 쓰고 나니깐 투수 교체랑 비슷하다. 좀 오래되긴 했지만 참고할 만한 사례를 나눠보자.
피투자회사 A는 소비재 관련 'top 3'에 들어가는 회사였다. 기존 B 창업주가 건강 및 나이를 이유로 경영권을 우리에게 매각하면서 안정적인 경영진의 전환을 도와주기 위해 1년 정도 대표이사로 남아서 경영해 주고 일부 지분을 유지하는, 아주 일반적인 계약을 체결했다. 회사는 이런 저런 위기를 겪고 있었지만 충분히 극복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창업주를 제외하면 2세대 경영진들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의 착각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이른바 cash-out을 한 B 대표 즉 창업주는, 통상적으로는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고 이미 '내것이 아닌' 회사에 대하여 애정은 있지만 몸은 없고싶은 시점이 온다. 그간 경험을 보면 이른바 힘빠지는 시간이 3~6개월 정도이다. 실적은 슬슬 빠지기 시작했고, 단단해 보였던 2세대 경영진들도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12개월 뒤 교체를 예상하던 나에게는 '멘붕'의 시간이 왔던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100점은 아니지만 훌륭한 90점짜리 CEO 후보인 C씨를 B 창업주가 추천하면서 당초 예상보다 훨씬 앞서 첫 번째 대표이사 교체를 이루어냈다. 그리고 회사를 6개월 정도 먼저 들어온 B임원이 CFO이자 CSO로 고군분투하면서 합을 잘 맞추어갔다.
두번째인 C 대표가 자리를 잡으면서 실적은 회복되기 시작했다. 고객 수도 늘고 매출도 늘고, 이익도 그럭저럭 늘고. 버는 대로 투자해서 매출을 다시 만드는 C대표 스타일에 적응을 할 무렴, 직업병인지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다 좋은데 뭔가가 좀 빠진 듯한 느낌. 불안할 때는 분석이 최고다. 첫 1년간의 실적을 가지고 잘게잘게 다져보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지?
몇 개월 꼼꼼히 보니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매출과 EBITDA는 느는데 영업이익은 정체인 점. EBITDA는 느는데 회사의 현금은 늘지 않는 점. 외생적으로 봐도, 회사의 실적회복은 전략의 성공이라기 보다는 산업 전반의 개선에 있었던 점. 대표이사가 약속했던 신사업 매출 부분의 영업 이익 기여도는 훨씬 낮았고, 반면 신사업별 Capex 금액은 거의 매번 예산을 초과했다. 인력 이탈률도 살짝 올라갔고, 고객사의 컴플레인도 아주 살짝 올라가는 데이터가 발견되었다.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바꿔야겠다는 확신은 있었지만 대안이 없었다. 반면 회사의 실적은 그럭저럭 회복해 갔다. 뇌세포가 게을러지기 좋은 환경이었다.
여기서 나는 첫 번째 실기를 했다. 차라리 과감히 이 타이밍에 회사를 매각했었다면 나쁘지 않은 실적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조금만 더, 1년만 더를 반복했고, 결국 산업 사이클이 바뀌면서 회사의 이익은 정체되기 시작했다. 대안의 부재와 물갈이의 실기라는 두가지 실수를 한 후에야 서둘러 CFO였던 B본부장을 대표이사 대행으로 올리고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한 1년반 정도 늦은 타이밍이었다.
회사는 불안불안했지만 수익성 위주로 빠르게 전환해갔다. 대표이사가 아니고 대표이사 대행 체제로 둔 것은 대안을 적극적으로 찾기 위함이었다. 세 번째 대표이사 교체가 이루어지고 나서 첫 1년간 정말 열심히 내 맘에 쏙드는 120점짜리 대표이사 후보를 찾기 시작했고, 1년이 조금 넘은 후에야 네 번째이자 마지막 대표이사를 찾아서 교체할 수 있었다. 나는 이 고통스런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을까?
첫 번째, 물갈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점이다. 국내 유수의 기업에 2대 주주로 투자한 X회사에서도 비록 지분율로 보면 20%도 안되는 소수지분이었지만 정말 회장님, 회장님 친척, 사모님, 홀딩스 사장님, 홀딩스 사장님 오른팔 왼팔 다 동원해서 대표이사를 두 번이나 바꾼 적이 있다. 골골하던 회사는 대표이사가 바뀌자마자 새로운 시각으로 사업을 바라보고, 그간의 고인물들도 청소가 된다. 지금은 3배 이상 수익을 낸 투자로 기록되어 있지만 엑시트하는 마지막 한 해만 이익을 내고 계속 적자를 지속하던 '후덜덜한 투자'였다. 아니다 싶을 때, 혹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될 때 다음 투수를 염두해둬야 한다. 반박자 빠른 게 반박자 느린 것보다 항상 나았다. 나의 경우, 1년 반 정도 지나면 '냉정한' 판단을 반드시 내려야했다.
두 번째, 항상 어장관리, 즉 교체의 대안을 마련해 두어야한다는 점이다. 잘 나갈 때 그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하물며 어떤 산업에 투자를 한다면, 끊임없이 그 산업에서 잘 나가는 대표님들, 창업주들, 월급 임원들, 그리고 임원을 꿈꾸는 팀장들을 습관처럼 만나둔다. 이른바 내가 주 투자 전략으로 삼고 있는 Bolt-on도 실상은 이렇게 끊임없이 경쟁사들, 밸류체인 앞뒤로 있는 회사들, 고객사들을 투자 전후에 만나면서 얻어걸리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지금 잘하는 임원도, 시장에서 더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what-if를 생각해 보는게 펀드매니저로서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탐나는 임원들, CEO들은 반드시 누가 채가기 때문이다. 경쟁사로 막상 가버리면 얼마나 아깝겠는가?
마지막으로, '숫자가 인격'인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투자업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같은 회사를 오래 보고 같은 경영진들을 오래 만나면 정들고 냉철한 판단이 흐려진다. 월별, 분기별 실적을 냉철히 분석하고, 대표이사 혹은 CFO가 분석하는 실적의 원인을 반드시 같이 새로운 시각으로 검증해봐야 한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그들 밑에 있는 임원들, 팀장들, 사원들이 '의도를 갖고' 만들어 주는 자료를 믿을 수밖에 없다. 이런 선입견이 오판을 만들고, "한 번만 더"를 양산한다. 그럼 어떻게 숫자를 판단해야할까? 나는 냉철한 판단의 기초는 정확한 사업계획 설정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예산을 얼마나 달성할 수 있는지 1년 정도 지켜보면 경영진의 실력을 알 수 있다. 고객사의 주문을 얼마나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지, 영업조직을 어느 정도 키워야 할지, capex를 얼마나 더 넣으면 매출이 몇 개월 뒤부터 나올 수 있을지, 인센티브는 얼마 정도 더 줘야 내년에도 핵심 인력들이 남아 있을지, 이런 세세한 것들을 미리 예측하지 못하고 '전년 대비 10% 성장' 이딴 식의 예산이 올라오면 나는 바로 물갈이를 준비한다. 사업 계획을 정확히 뽑을 수 있다는 점은, 회사 안팍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는 방증이다!
흠, 쓰고 나니 오늘은 왠지 너무 정없는 이야기만 한 것 같다. 그래서 하나 더 사족을 붙이겠다. 만약 이글을 읽는 독자가 다양한 자회사를 관리하거나 투자한다면 꿀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 유능한 CXO를 다른 투자사의 햇병아리 임원들에게 소개하라(식사, 골프, 술, 등산, 낚시 등등). 그럼 우리의 스타 CXO들은 신나게 자기 비법을 공개해 준다. 그러면 B급 햇병아리들이 A급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우리의 유능한 CXO들이 "어 이 친구는 쭉정이에요"라고 이야기 해준다.
(2) 재활용, 재배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한 회사의 A급 인재면 다른 회사의 S급 인재가 될 수도 있다. 특히 fit과 경험은 좋은데 산업이랑 딱 스타일이 안맞거나 경영진들과 궁합이 좀 그런 임직원은 다른 환경에서 한 번 더 기회를 줘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경영진들도 '당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두번째 기회를 부여받은 그 임직원은 절치부심해서 더 열심히 할 것이고, 최소한 우리 팀들과 커뮤니케이션은 아주 잘 될 것이기 때문에.
(3) 헤어지더라도 잘 헤어져야 한다. 임원으로 우리와 인연이 되었다가 실적 이슈로 우리 투자 회사에서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게 되더라도, 그게 그 임원이 실패자라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처음 조인했을 때의 성장 단계에서는 가장 맞는 임원이었으나 회사가 그 다음 레벨로 커가면서 좀 더 다른 역량과 역할을 할 수 있는 임원으로 교체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렇게 우리 투자사와 헤어지게 되는 임직원들이 어디서 어떻게 또 우리와 인연을 맺을지 모른다. 나의 경우, 정말 별 일들이 다 있었다. 우리 고객사 대표가 된 적도 있고, 창업을 해서 성공을 해서 내가 오히려 투자하고 싶다고 만난 적도 있고, 우리 투자회사를 인수하려는 대기업으로 옮겨가서 다시금 경영진으로 재입성 하려는 경우도 있었다.
인사는 만사이고,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가장으로서, 나와 함께 일해 준 사람에게 또 가장에게 회사를 나가달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정말 뼈를 깎는 것만큼, 살을 자르는 것만큼 고통스럽다. 그래도 해야 한다. 그러니 잘 하자. 그리고 미리미리 하자. 그러면 그 회사에서 일하는 100명, 1000명의 직원들, 그리고 300명, 3000명의 그 가족들이 더 여유를 갖게 된다. 우리의 인연은 자고로 끝났을 때 끝난게 아니다. 어장관리를 하자, 그리고 기꺼이 어장 속의 물고기가 되어 주자. 그렇게 우리의 인연을 이어 나가자.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