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천연가스 가격이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농산물 재배의 필수품인 비료 가격까지 고공행진하면서 에너지발(發)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상 최고가 찍은 천연가스…비료·농산물값도 고공행진
5일(현지시간) 유럽 천연가스 벤치마크인 네덜란드 TTF의 11월물 가격은 장중 전날보다 23% 상승한 ㎿h당 117.5유로를 기록했다. 6개월 전(18유로 수준)에 비해 6배 넘게 뛰어오른 것이다. 다가오는 겨울철, 천연가스 공급난이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가격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다.

영국에서도 천연가스 가격이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날 사상 처음으로 섬(therm·열량 단위)당 3파운드를 돌파했다. 영국에서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 두 달 사이 세 배 급등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과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을 원유 가격으로 환산하면 배럴당 200달러 이상”이라며 “현재 원유 가격의 세 배 가까운 수준”이라고 전했다.

천연가스 가격 급등은 실물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다. 천연가스 도매가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한 영국 에너지업체는 최근 두 달여간 10곳에 이른다. 영국 에너지업체는 도매가와 상관없이 정부가 설정한 상한선 내에서 소비자에게 천연가스를 판매해야 하기 때문에 손실이 커질 수 있다. FT에 따르면 1년 동안 영국 일반 가정에 가스와 전기를 공급하는 비용은 가격 상한선(1277파운드)을 웃도는 1800파운드 이상으로 치솟았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되면서 영국 국채 금리는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이날 영국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2019년 5월 이후 최고치인 1.09%를 기록했다. 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내년 초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국채 수익률이 최근 몇 주간 급격히 상승했다.

비료 가격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비료의 원재료인 암모니아가 천연가스에서 추출되기 때문이다. 운송비 상승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업계가 치솟는 비료 값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높은 천연가스 가격 탓에 유럽에서만 암모니아 생산량이 40%가량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농작물 가격 인상도 우려된다. 미국에선 옥수수 농사에 투입되는 비료 가격이 전체 비용 가운데 최대 44%를 차지한다. 러시아 투자은행 VTB캐피털의 엘레나 사흐노바 애널리스트는 “비료 가격은 세계 식량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면화 가격은 10년 만의 최고치로 상승했다. 이날 뉴욕국제선물거래소(ICE)에서 12월물 미국 면화 가격은 약 4% 상승한 파운드당 1.0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2011년 9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면화 최대 수출국인 미국에 내린 폭우로 면화 생산이 감소한 영향을 받았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