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자랑하는 무선(OTA)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는 국내에선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중고차 매매업계 반대에 막혀 있다.

코로나19 속에서도 한국 기업들은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국내에선 노동조합, 정부 규제, 기득권, 지역 이기주의, 정치권의 입법 폭주 등 기업의 기(氣)를 꺾는 5적(敵)에 신음하고 있다. “외국보다 리스크가 더 커진 국내 사업은 접고 해외로 옮기는 게 답인 것 같다”(한 자동차 부품업체 대표)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1) 노조 불법 파업에 괴로운 기업들

문재인 정부 들어 급격히 세를 불린 노조의 위세에 기업은 신음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71만여 명이던 조합원을 2019년 104만여 명으로 크게 늘리며 전국 곳곳에서 불법 파업을 주도하고 있다. 파리바게뜨 등을 운영하는 SPC그룹은 한 달 넘게 빵 운송을 거부하는 민주노총 화물연대 때문에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건설사들은 노·노(勞勞) 갈등에 치이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상대방 노조원 채용을 반대하며 작업을 중단하는 탓이다. 최근 한 달 새 경기 지역에서만 용인 서희건설·현대건설 현장, 수원 대우건설 현장 등 세 곳에서 노조의 작업 거부로 공사가 지연됐다.

(2) 낡은 규제에 무너지는 산업

낡은 규제는 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온라인 유통이 대세가 된 요즘, 대형마트 월 2회 의무휴업과 밤 12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시간 제한 등을 규제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은 “과거 유물이 됐다”는 지적에도 개정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신산업도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지방 흡입수술로 빼낸 인체 폐지방은 ㎏당 1억~2억원에 달하는 고부가가치 신소재다. 그러나 타인의 폐지방 활용을 금지하는 폐기물관리법 때문에 상용화 길이 막혀 있다. 재생의학 전문기업 엘앤씨바이오 관계자는 “규제가 풀리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해외에서 사업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신설·강화된 규제(규제개혁위원회 심사 기준)만 1515건에 이른다. 규제 급증은 현 정부 들어 100만 명을 돌파한 공무원 숫자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3) 신산업은 기득권 이익집단에 막혀

‘원격의료’는 코로나19 사태로 도입 필요성이 커졌지만 의사와 약사들의 반발에 부딪혀 진퇴양난이다. 대한약사회는 원격으로 약을 배달해주는 스타트업인 닥터나우를 ‘약물 오남용을 조장한다’며 약사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변호사 광고플랫폼 ‘로톡’은 대한변호사협회의 반발에 발목이 잡혔다. 변협은 지난달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 징계에 들어갔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프리미어의 권도균 대표는 “국내 스타트업은 정치인, 공무원 등 심판의 편향성에 더 고통받고 있다”며 “심판들이 기존 이익집단에 휘둘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4) 지역 이기주의에 사업 줄줄이 좌초

미래에셋금융그룹이 전남 여수에 대규모 리조트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은 지역 시민단체 반대에 부딪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이 사업은 1조5000억원을 들여 호텔, 콘도, 레지던스 등을 짓는 프로젝트다. 그러나 여수YMCA, 여수환경운동연합 등 지역 시민단체가 자연경관 훼손 등을 이유로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이 경기 하남에 지으려던 최첨단 물류센터 ‘네오’도 “혐오 시설은 안 된다”는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 신세계 관계자는 “네오는 지역 주민에게 더 빠르게 상품을 배송할 수 있지만 혐오 시설로 비쳐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5) 반기업 정서에 CEO 처벌 만능주의

근로자 사망 때 사업주에게 1년 이상 징역형을 부과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 1월 제정 과정부터 졸속이었다. 당시 일부 기업에서 중대 산업재해가 연이어 발생하자 여론에 밀려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법안을 처리했다는 지적이다.

거대 여당은 가뜩이나 힘이 센 노조엔 날개를 달아줬다. 해고자의 노조 가입과 활동을 허용하는 노동조합법이 대표적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등은 취지와 달리 중소기업과 직원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유압실린더 공장을 운영하는 김모 대표는 “정치인에게 공장을 내줄 테니 직접 사업해보라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일규/선한결/민경진/이선아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