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과학의 모든 역사' 번역 출간

헨리 몰레이슨은 아홉 살 때 자전거 사고 여파로 끔찍한 뇌전증 발작에 시달렸다.

약물치료도 효과가 없어 수술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는 양 측두엽을 절제해 양측 해마 대부분과 편도체, 내후각 피질 부위를 파냈다.

뇌전증은 회복됐다.

그러나 어떤 부분은 영원히 회복하지 못했다.

극심한 기억 장애가 생긴 것이다.

그는 수술받기 이전의 사건들은 기억할 수 있었지만, 죽을 때까지 어떤 새로운 기억도 만들어내지 못하며 영원히 현재만 살았다.

고작 한 시간 정도 전에 일어난 일도 기억하지 못했다.

몰레이슨은 "마치 꿈에서 깨어나는 듯했고, 내가 어떤 즐거운 일을 겪었든, 어떤 슬픈 일을 겪었든 하루하루가 그저 그때뿐이었다"고 회고했다.

몰레이슨 개인에게는 커다란 불행이었던 이 사건은 아이러니하게도 과학 발전에 커다란 도움이 됐다.

몰레이슨은 반세기 동안 뇌 기능에 관한 유일무이한 장기 연구에 참여했고 그 결과, 해마가 기억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구조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영국 맨체스터대 생명과학부 교수이자 동물학자인 매튜 코브가 쓴 '뇌 과학의 모든 역사'(심심)에 나오는 내용이다.

책은 선사시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생각과 마음의 기원을 탐색하는 뇌 과학의 방대한 역사를 담았다.

저자는 당대 뛰어난 과학자들의 치열한 논쟁과 실험을 살펴봄으로써 그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뇌가 생각을 만들어내는 기관이라는 사실을 규명하고, 뇌의 기능을 증명했는지 살펴본다.

저자에 따르면 고대인들은 생각과 감정의 원천을 심장에서 찾았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만 해도 "쾌락과 고통을 포함한 모든 감각은 심장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400년이 지난 서기 129년에 갈레노스가 해부학 실험을 통해 뇌가 행동과 사고의 기본이 되는 기관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사고의 중추가 심장이라는 생각은 근대 과학이 태동한 17세기까지도 과학계에서 주류를 차지했다.

18세기에 이르러서야 뇌와 행동의 연결고리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전기의 발견과 함께 동물과 인체를 대상으로 한 비윤리적인 전기 실험이 공공연하게 이뤄지면서다.

19세기 중반에는 복잡한 뇌의 구조가 기능과 인간의 성격에 관련되어 있다는 가설이 대중에게까지 널리 퍼졌다.

마크 트웨인부터 카를 마르크스까지 19세기 대표적인 지성들은 두개골의 모양으로 개인의 정신 능력을 유추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골상학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인간의 가장 깊은 비밀…뇌에 대한 거의 모든 것
특히 모든 유기체가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는 세포 이론 수립이 성립하면서 뇌도 신경세포의 일부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이는 뇌 연구에 커다란 진전을 가져왔다.

19세기 말에는 신경해부학자 카할과 폰 쾰리커가 마침내 신경세포들의 개별독립체 '뉴런'을 발견하며 뇌 과학을 진일보시켰다.

20세기에는 뇌에 수학적 사고와 알고리즘이 도입됐고, 노벨상을 받은 엄청난 발견들이 쏟아졌다.

대규모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뉴런 수백만 개가 포착됐으며 신경망의 활동을 통제하는 데 화학물질의 역할이 차지하는 중요성도 알려지게 됐다.

2012년에는 뇌졸중을 앓았던 사지마비 환자가 자신의 뇌에 이식된 컴퓨터 칩을 활용해 생각만으로 자신의 옆에 있던 로봇 팔을 움직일 수 있는 데까지 발전했다.

"허친슨은 로봇 팔로 병을 잡아 천천히 입으로 가져가 빨대를 통해 커피를 마시고는 다시 병을 탁자 위로 가져다 놓을 수도 있었다.

14년 만에 처음으로 나 자신의 자유의지만으로 무엇인가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는 대단한 성과에 허친슨이 느꼈던 기쁨은 논문에 별첨 된 영상과 사진에 뚜렷이 나타나 있다.

"
이처럼 기술이 발전하고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뇌에 대한 비밀은 상당 부분 밝혀졌지만, 뇌를 이해하기 위한 연구는 이제 교착상태에 다다르고 있다는 분석도 학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저자는 뇌를 완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과학자들이 이런 꿈 같은 일을 반드시 이뤄낼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리고 그 첫출발은 과거의 연구를 탐구하며 당대 과학자들이 봉착했던 어려움과 이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살펴보는 일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다.

"구성하는 세포의 수가 수백억 개이고 마음이라는 신비로운 감각을 만들어내는 믿을 수 없는 기이한 능력을 갖춘 인간의 뇌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과학은 이러한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며 결국은 이루어내고야 말 것이다.

"
이한나 옮김. 620쪽. 3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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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