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부품기업 무라타제작소 CEO에게 듣는다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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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지마 노리오 무라타제작소 사장 단독인터뷰
'전자산업 쌀' MLCC 세계 1위
엔지니어 출신 CEO의 강점은?
"게임 체인저 되려면 고객 정의를 바꿔라"
"모노즈쿠리만으론 한계…新사업모델로 고객선택 받아야"
'전자산업 쌀' MLCC 세계 1위
엔지니어 출신 CEO의 강점은?
"게임 체인저 되려면 고객 정의를 바꿔라"
"모노즈쿠리만으론 한계…新사업모델로 고객선택 받아야"
“게임 체인저 시대를 맞아 고객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사업을 과감하게 재편하는 ‘포트폴리오 경영’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0년 후 무라타제작소는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카지마 노리오 무라타제작소 사장(사진)은 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약 70년간 가족경영 방식을 고수하던 무라타제작소는 지난해 6월 나카지마 사장을 선임해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나카지마 사장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라타는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부품기업이다. ‘전자산업의 쌀’로 불리는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와 각종 전자제품용 필터 및 센서, 와이파이 모듈(반제품)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교토 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나카지마 사장은 “게임 체인저(기존 산업의 구도를 완전히 바꾸는 새로운 기술과 기업) 시대에 사업을 성장시키려면 먼저 고객의 정의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삼성전자 LG화학 애플 등 기존 고객뿐 아니라 원격의료를 시작하는 의사,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재고 관리에 나선 공장, 자율주행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와 스타트업 등을 새로운 고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선 “무라타도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단순 제조업체에서 벗어나 ‘솔루션(문제해결형) 사업모델’을 추가해야 한다”며 “새로운 고객은 모듈이나 소프트웨어 결합상품 같이 활용하기 쉬운 제품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이 업계 판도를 단숨에 바꾸는 초대형 M&A를 선호하는 것과 달리, 무라타는 소규모 M&A를 통해 새로운 기술을 확보하거나 고객과의 접점을 마련하고 있다. 조금씩 필요한 부분을 채워나간다고 해서 ‘니지미다시(스며듦) 전략’이란 이름이 붙었다.
나카지마 사장은 게임체인저 시대의 두 번째 생존 전략으로 포트폴리오 경영을 제시했다. 과감한 사업 재편을 통해 주력 사업 구성(포트폴리오)을 상황 변화에 맞춰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는 “LG그룹처럼 경쟁에서 밀리는 사업을 과감하게 잘라내고 남은 자원을 이기는 분야에 집중하는 접근법이 한·일 기업 모두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기업과 기술이 기존의 산업구도를 완전히 바꾸는 게임 체인저의 시대가 열리면서 교토 기업들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수십 년간 키운 기술과 제품이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일본뿐 아니라 세계 제조업계가 세라믹 부품이란 한 우물만 판 무라타제작소의 대응 전략을 주목하는 이유다. 나카지마 사장은 1985년 무라타제작소에 입사한 이후 줄곧 엔지니어의 길을 걸었다. 전자업계에서 나카지마 사장은 한때 ‘벽돌폰’으로 불릴 정도로 크기가 컸던 휴대폰을 손바닥만 하게 줄이는 데 기여한 인물로 유명하다. 35세이던 1996년 꼬치구이집 회식자리에서 휴대폰 소형화에 쓰이는 ‘스위치 플렉서’라는 부품 회로도를 개발했다. 나카지마 사장은 “로봇 사업도 주목하고 있다”며 “인간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체할 분야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라타제작소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요.
“먼저 고객의 정의를 바꿔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고객은 삼성전자 등 대형 제조사였습니다. 앞으로의 고객은 의사, 공장설비 설계자, 자율주행기술 연구자 등입니다. 기업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단순 제조업에서 벗어나 솔루션(문제해결형) 사업모델을 갖춰야 새 고객들로부터 선택받을 수 있습니다.”
▷일본 기업은 게임 체인저 시대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기업의 신진대사를 중시해 사업구조를 빠르게 전환하는 포트폴리오 경영이 매우 중요합니다. LG그룹은 1위가 되기 어렵다고 판단한 스마트폰 사업부를 접고, 남은 자원을 가전으로, 자동차로 돌리는 사업구조 전환에 능합니다. 반면 일본 기업들은 사업 재편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무라타가 압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수직통합, 일관생산 사업모델입니다. 무라타는 재료와 생산설비 구축, 제조를 모두 스스로 합니다. 이 때문에 웬만해선 다른 기업이 모방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는 10~20년 뒤를 내다보고 설비투자를 하는 중장기적 시선입니다. 전기차의 경우 800V 고전압을 사용하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하고 상당히 이른 시간부터 준비해왔습니다.”
▷수직통합, 일관생산은 수익률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변화가 있을 때마다 항상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익을 내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수평분업 체계에서는 새 기술을 상품화하려면 분업을 담당하는 기업에 제조법을 하나하나 가르쳐야 합니다. 여기서 초기 손실이 발생합니다. 수직통합형은 초기 손실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생산공정을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기 때문에 업계 조류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무라타는 수익률이 업계 1위입니다. 비결이 무엇입니까.
“무라타는 성장의 기회가 대략 30년에 한 번꼴로 왔습니다. 마지막 기회는 스마트폰 시장이 열린 2010년이었습니다. 이 주기대로라면 다음 번 성장 기회는 2040년에 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장기적인 시선으로 미래사업을 준비하는 것이 수익률의 비결입니다.”
▷시장점유율도 유지될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최첨단 상품 분야는 절대 져서는 안됩니다. 삼성전기 등과는 기술적으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최첨단 상품에서는 수년의 격차를 유지하도록 연구개발에 힘을 쏟을 겁니다. 반면 중국과 대만 업체들이 범용제품을 저가에 양산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요. 적어도 최첨단 기기, 높은 신뢰성이 요구되는 자동차 부품 등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생산시설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는 공급망 재편이 세계적으로 과제입니다.
“무라타는 연구개발 거점과 생산 거점이 가깝기 때문에 국내에서 최첨단 제품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노동인구 감소로 해외 생산을 늘리고 있지만 범용제품이어서 기술 유출 위험이 적습니다.”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5세대(5G) 이동통신과 자율주행차, 전기차 등 전자산업에서 지금껏 경험한 적 없는 변화가 10년 사이 일어났습니다.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속도와 투명성을 중시하려는 결정으로 이해합니다."
▷엔지니어 출신 최고경영자(CEO)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내년이나 3년후를 예상하는 건 어렵지만 10~20년 뒤의 기술혁신 조류는 예상이 가능합니다. 엔지니어 출신 경영인은 'A기술은 개발에만 10년이 걸리니 지금부터 준비하자'하는 식으로 기술 이해도 부분에서 좀 더 능숙하다고 생각합니다."
▷엔지니어를 육성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까.
"입사 1년차 신입직원 전원이 5~11월 반 년간 생산공장에서 3교대로 생산활동을 합니다. 반년간 생산현장을 체험하면 어떻게 해야 품질을 개선할 지, 가격을 낮출수 있을 지 고민하는 현장개선활동에 참가하는 수준이 됩니다. 대학은 기술을 개발만 하면 되지만 기업은 생산성을 따져야 합니다. 공장실습은 생산성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데도 좋은 경험이 됩니다." ▷간사이지역 기업이 불리한 점은 무엇입니까.
"이제 겨우 일본 전역의 학생들이 일하기를 원하는 기업이 됐지만 여전히 도쿄나 도호쿠 지방의 학생은 잘 오지 않습니다. 나를 포함해서 간사이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가득하기 때문인 듯 합니다. 간토 지방에는 소프트웨어 기술자가 많습니다. 지난해 요코하마에 이노베이션센터를 연 것은 간토 지역 학생들을 많이 채용하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한국도 소재 및 부품기업 육성이 과제로 지적됩니다.
“일본인과는 다른 한국인의 기질에 한국의 강점과 약점이 동시에 들어 있습니다. 한국 기업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속도로 새 기술을 제품화하고, 전체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과제를 완수해냅니다. ‘모노즈쿠리’(일본의 장인정신)가 중시되는 소재와 부품 분야에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국인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봅니다.”
▷한·일 관계 악화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까.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는 3개월에 두 번 정도 한국에 출장을 갔습니다. 삼성그룹과 LG그룹에 친구도 많습니다. 소주는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지만 회식도 자주 했습니다. 그런 덕분인지 한·일 관계 악화가 사업에 영향을 준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수출규제는 영향이 있지 않습니까.
“결국 영향을 받은 건 일본의 소재 회사입니다. (수출규제 조치는)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정책이 됐습니다.”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주목하는 분야는 무엇입니까.
"고온이나 신체에 접촉해서 사용하는 웨어러블 제품용 전고체배터리 사업을 키우고 있습니다. 과열과 발화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전고체배터리의 장점을 살리면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으로 봅니다, 로봇 사업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체할 수 있는 분야가 여전히 많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만 무라타는 로봇제조사가 아니기 때문에 부품과 소프트웨어, 모듈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을 겁니다."
▷주가가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라타의 주가는 현재의 재무적 가치와 미래 성장에 대한 기대치가 절반씩 반영돼 있다고 봅니다. 미래의 기업가치를 높여 성장에 대한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것이 무라타의 역할입니다."
교토=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MLCC는 전자제품 회로에 전류가 안정적으로 흐르도록 도와주는 부품이다. 휴대폰, PC, 자동차 등 대부분의 전자제품에 MLCC가 사용된다. 5세대(5G) 이동통신망을 쓰는 스마트폰엔 1000개, 신형 전기차엔 1만3000개 정도의 MLCC가 들어간다. 5G 등 고급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초소형, 고용량 제품은 무라타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는 평가다. 제품 두께는 머리카락 굵기(0.3㎜) 수준이고 가로가 0.4㎜, 세로가 0.2㎜에 불과해 흔히 쌀알에 비유된다. 무라타는 대표적인 ‘코로나19 반사이익 기업’이기도 하다. ‘집콕 소비’로 전자제품 판매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MLCC의 수요가 크게 증가하자 일본과 중국, 필리핀 공장의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나카지마 노리오 무라타제작소 사장은 “연 10%씩 MLCC 공급량을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1조5340억엔이던 매출이 지난해 1조6302억엔으로 늘었다. 올해는 1조7300억엔으로 예상된다. 영업이익은 매년 20% 증가하고 있다. 2019년 2532억엔, 지난해 3132억엔에서 올해는 3650억엔으로 예상된다.
올해 영업이익률은 21.1%로 동종업계 1위로 예상된다. 일본 부품회사로는 드물게 자본의 효율성도 중시한다. 영업 활동에 투자한 자본으로 이익을 얼마나 거뒀는지 보여주는 투하자본이익률(ROIC)을 공개하고 있다. 지난해 ROIC는 18.5%로 역시 업계 1위였다. 무라타는 2~3년 내에 ROIC를 20% 이상으로 높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무라타는 생산설비의 65%를 일본 내에 보유하고 있다. 지난 8월 25~31일 코로나19 집단 발병으로 최대 MLCC 생산시설인 후쿠이현 에치젠시 공장이 멈추기도 했다. 나카지마 사장은 “재고를 적극 방출해 고객기업에 조업 중단과 같은 피해를 끼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교토=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나카지마 노리오 무라타제작소 사장(사진)은 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약 70년간 가족경영 방식을 고수하던 무라타제작소는 지난해 6월 나카지마 사장을 선임해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나카지마 사장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라타는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부품기업이다. ‘전자산업의 쌀’로 불리는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와 각종 전자제품용 필터 및 센서, 와이파이 모듈(반제품)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교토 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나카지마 사장은 “게임 체인저(기존 산업의 구도를 완전히 바꾸는 새로운 기술과 기업) 시대에 사업을 성장시키려면 먼저 고객의 정의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삼성전자 LG화학 애플 등 기존 고객뿐 아니라 원격의료를 시작하는 의사,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재고 관리에 나선 공장, 자율주행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와 스타트업 등을 새로운 고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선 “무라타도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단순 제조업체에서 벗어나 ‘솔루션(문제해결형) 사업모델’을 추가해야 한다”며 “새로운 고객은 모듈이나 소프트웨어 결합상품 같이 활용하기 쉬운 제품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이 업계 판도를 단숨에 바꾸는 초대형 M&A를 선호하는 것과 달리, 무라타는 소규모 M&A를 통해 새로운 기술을 확보하거나 고객과의 접점을 마련하고 있다. 조금씩 필요한 부분을 채워나간다고 해서 ‘니지미다시(스며듦) 전략’이란 이름이 붙었다.
나카지마 사장은 게임체인저 시대의 두 번째 생존 전략으로 포트폴리오 경영을 제시했다. 과감한 사업 재편을 통해 주력 사업 구성(포트폴리오)을 상황 변화에 맞춰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는 “LG그룹처럼 경쟁에서 밀리는 사업을 과감하게 잘라내고 남은 자원을 이기는 분야에 집중하는 접근법이 한·일 기업 모두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핸드폰 소형화 주역, 韓언론과 첫 인터뷰
MLCC 세계 1위 무라타제작소, 세계 최대 모터 제조사 일본전산(NIDEC), 정밀 세라믹 부품으로 세계를 제패한 교세라 등은 일본 교토 기업이란 공통점이 있다. 나카지마 노리오 무라타제작소 사장은 7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교토에는 한 우물만 파는 기업이 많다”며 “규모가 크진 않지만 한 가지 기술에 천착한 결과 세계적으로 성공한 회사들”이라고 강조했다.새로운 기업과 기술이 기존의 산업구도를 완전히 바꾸는 게임 체인저의 시대가 열리면서 교토 기업들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수십 년간 키운 기술과 제품이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일본뿐 아니라 세계 제조업계가 세라믹 부품이란 한 우물만 판 무라타제작소의 대응 전략을 주목하는 이유다. 나카지마 사장은 1985년 무라타제작소에 입사한 이후 줄곧 엔지니어의 길을 걸었다. 전자업계에서 나카지마 사장은 한때 ‘벽돌폰’으로 불릴 정도로 크기가 컸던 휴대폰을 손바닥만 하게 줄이는 데 기여한 인물로 유명하다. 35세이던 1996년 꼬치구이집 회식자리에서 휴대폰 소형화에 쓰이는 ‘스위치 플렉서’라는 부품 회로도를 개발했다. 나카지마 사장은 “로봇 사업도 주목하고 있다”며 “인간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체할 분야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라타제작소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요.
“먼저 고객의 정의를 바꿔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고객은 삼성전자 등 대형 제조사였습니다. 앞으로의 고객은 의사, 공장설비 설계자, 자율주행기술 연구자 등입니다. 기업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단순 제조업에서 벗어나 솔루션(문제해결형) 사업모델을 갖춰야 새 고객들로부터 선택받을 수 있습니다.”
▷일본 기업은 게임 체인저 시대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기업의 신진대사를 중시해 사업구조를 빠르게 전환하는 포트폴리오 경영이 매우 중요합니다. LG그룹은 1위가 되기 어렵다고 판단한 스마트폰 사업부를 접고, 남은 자원을 가전으로, 자동차로 돌리는 사업구조 전환에 능합니다. 반면 일본 기업들은 사업 재편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무라타가 압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수직통합, 일관생산 사업모델입니다. 무라타는 재료와 생산설비 구축, 제조를 모두 스스로 합니다. 이 때문에 웬만해선 다른 기업이 모방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는 10~20년 뒤를 내다보고 설비투자를 하는 중장기적 시선입니다. 전기차의 경우 800V 고전압을 사용하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하고 상당히 이른 시간부터 준비해왔습니다.”
▷수직통합, 일관생산은 수익률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변화가 있을 때마다 항상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익을 내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수평분업 체계에서는 새 기술을 상품화하려면 분업을 담당하는 기업에 제조법을 하나하나 가르쳐야 합니다. 여기서 초기 손실이 발생합니다. 수직통합형은 초기 손실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생산공정을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기 때문에 업계 조류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무라타는 수익률이 업계 1위입니다. 비결이 무엇입니까.
“무라타는 성장의 기회가 대략 30년에 한 번꼴로 왔습니다. 마지막 기회는 스마트폰 시장이 열린 2010년이었습니다. 이 주기대로라면 다음 번 성장 기회는 2040년에 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장기적인 시선으로 미래사업을 준비하는 것이 수익률의 비결입니다.”
▷시장점유율도 유지될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최첨단 상품 분야는 절대 져서는 안됩니다. 삼성전기 등과는 기술적으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최첨단 상품에서는 수년의 격차를 유지하도록 연구개발에 힘을 쏟을 겁니다. 반면 중국과 대만 업체들이 범용제품을 저가에 양산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요. 적어도 최첨단 기기, 높은 신뢰성이 요구되는 자동차 부품 등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생산시설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는 공급망 재편이 세계적으로 과제입니다.
“무라타는 연구개발 거점과 생산 거점이 가깝기 때문에 국내에서 최첨단 제품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노동인구 감소로 해외 생산을 늘리고 있지만 범용제품이어서 기술 유출 위험이 적습니다.”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5세대(5G) 이동통신과 자율주행차, 전기차 등 전자산업에서 지금껏 경험한 적 없는 변화가 10년 사이 일어났습니다.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속도와 투명성을 중시하려는 결정으로 이해합니다."
▷엔지니어 출신 최고경영자(CEO)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내년이나 3년후를 예상하는 건 어렵지만 10~20년 뒤의 기술혁신 조류는 예상이 가능합니다. 엔지니어 출신 경영인은 'A기술은 개발에만 10년이 걸리니 지금부터 준비하자'하는 식으로 기술 이해도 부분에서 좀 더 능숙하다고 생각합니다."
▷엔지니어를 육성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까.
"입사 1년차 신입직원 전원이 5~11월 반 년간 생산공장에서 3교대로 생산활동을 합니다. 반년간 생산현장을 체험하면 어떻게 해야 품질을 개선할 지, 가격을 낮출수 있을 지 고민하는 현장개선활동에 참가하는 수준이 됩니다. 대학은 기술을 개발만 하면 되지만 기업은 생산성을 따져야 합니다. 공장실습은 생산성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데도 좋은 경험이 됩니다." ▷간사이지역 기업이 불리한 점은 무엇입니까.
"이제 겨우 일본 전역의 학생들이 일하기를 원하는 기업이 됐지만 여전히 도쿄나 도호쿠 지방의 학생은 잘 오지 않습니다. 나를 포함해서 간사이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가득하기 때문인 듯 합니다. 간토 지방에는 소프트웨어 기술자가 많습니다. 지난해 요코하마에 이노베이션센터를 연 것은 간토 지역 학생들을 많이 채용하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한국도 소재 및 부품기업 육성이 과제로 지적됩니다.
“일본인과는 다른 한국인의 기질에 한국의 강점과 약점이 동시에 들어 있습니다. 한국 기업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속도로 새 기술을 제품화하고, 전체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과제를 완수해냅니다. ‘모노즈쿠리’(일본의 장인정신)가 중시되는 소재와 부품 분야에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국인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봅니다.”
▷한·일 관계 악화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까.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는 3개월에 두 번 정도 한국에 출장을 갔습니다. 삼성그룹과 LG그룹에 친구도 많습니다. 소주는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지만 회식도 자주 했습니다. 그런 덕분인지 한·일 관계 악화가 사업에 영향을 준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수출규제는 영향이 있지 않습니까.
“결국 영향을 받은 건 일본의 소재 회사입니다. (수출규제 조치는)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정책이 됐습니다.”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주목하는 분야는 무엇입니까.
"고온이나 신체에 접촉해서 사용하는 웨어러블 제품용 전고체배터리 사업을 키우고 있습니다. 과열과 발화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전고체배터리의 장점을 살리면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으로 봅니다, 로봇 사업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체할 수 있는 분야가 여전히 많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만 무라타는 로봇제조사가 아니기 때문에 부품과 소프트웨어, 모듈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을 겁니다."
▷주가가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라타의 주가는 현재의 재무적 가치와 미래 성장에 대한 기대치가 절반씩 반영돼 있다고 봅니다. 미래의 기업가치를 높여 성장에 대한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것이 무라타의 역할입니다."
교토=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무라타제작소는 어떤 회사?
무라타제작소는 세계 최대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제조사다. 올 1분기 기준 세계 시장점유율은 34%로 24%의 삼성전기와 14%의 다이요유덴, 11%의 TDK를 여유 있게 앞섰다.MLCC는 전자제품 회로에 전류가 안정적으로 흐르도록 도와주는 부품이다. 휴대폰, PC, 자동차 등 대부분의 전자제품에 MLCC가 사용된다. 5세대(5G) 이동통신망을 쓰는 스마트폰엔 1000개, 신형 전기차엔 1만3000개 정도의 MLCC가 들어간다. 5G 등 고급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초소형, 고용량 제품은 무라타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는 평가다. 제품 두께는 머리카락 굵기(0.3㎜) 수준이고 가로가 0.4㎜, 세로가 0.2㎜에 불과해 흔히 쌀알에 비유된다. 무라타는 대표적인 ‘코로나19 반사이익 기업’이기도 하다. ‘집콕 소비’로 전자제품 판매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MLCC의 수요가 크게 증가하자 일본과 중국, 필리핀 공장의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나카지마 노리오 무라타제작소 사장은 “연 10%씩 MLCC 공급량을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1조5340억엔이던 매출이 지난해 1조6302억엔으로 늘었다. 올해는 1조7300억엔으로 예상된다. 영업이익은 매년 20% 증가하고 있다. 2019년 2532억엔, 지난해 3132억엔에서 올해는 3650억엔으로 예상된다.
올해 영업이익률은 21.1%로 동종업계 1위로 예상된다. 일본 부품회사로는 드물게 자본의 효율성도 중시한다. 영업 활동에 투자한 자본으로 이익을 얼마나 거뒀는지 보여주는 투하자본이익률(ROIC)을 공개하고 있다. 지난해 ROIC는 18.5%로 역시 업계 1위였다. 무라타는 2~3년 내에 ROIC를 20% 이상으로 높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무라타는 생산설비의 65%를 일본 내에 보유하고 있다. 지난 8월 25~31일 코로나19 집단 발병으로 최대 MLCC 생산시설인 후쿠이현 에치젠시 공장이 멈추기도 했다. 나카지마 사장은 “재고를 적극 방출해 고객기업에 조업 중단과 같은 피해를 끼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교토=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