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줄이기 위해선 연평균 감축률을 주요 선진국의 두 배로 높여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이 1990년대부터 단계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여온 것과 대조된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이 ‘과속’ 논란을 빚고 있다.

8일 윤순진 2050탄소중립위원회 위원장은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2018년 대비 26.3% 감축에서 40% 감축으로 대폭 상향하면서 “2050 탄소중립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국제사회의 규범이 됐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이 2026년부터 탄소 국경세를 도입하는 등 세계 시장에서 강화되고 있는 환경규제의 흐름을 한국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취지다.

이번에 새로 제시된 목표에 따르면 한국은 매년 4.17%씩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량 7억2760만t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2018년이 기준이다. 주요 선진국도 탄소배출량이 정점을 기록한 해를 기준으로 감축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영국은 1990년을 기준으로 2030년까지 연평균 2.81%를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다른 주요국의 연평균 감축률도 미국 2.81%, 일본 2.19%, EU 1.98% 등으로 한국보다 훨씬 낮다.

선진국들은 이미 30년 전부터 천천히 탄소배출량을 줄여왔다. 반면 한국은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산업구조 특성상 2018년까지 탄소배출량이 계속 증가했다. NDC를 선진국 수준으로 갑자기 끌어올리면 탄소감축 비용이 급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탓에 무리한 온실가스 감축 계획은 산업경쟁력에도 큰 부담을 줄 전망이다. 특히 제조업 경쟁국인 중국은 206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제시하면서 2030년까지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도록 계획을 짰다. 향후 10년간 국내 제조업체들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맞추기 위해 상당한 비용을 치르는 동안 중국은 추가 비용 없이 지금보다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경제단체들은 정부가 최고 강도의 탄소 감축 목표를 고집하면 국내 기업들이 탄소 감축 목표가 낮은 외국으로 설비를 옮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기 부진,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인한 탄소배출량 감소 ‘착시현상’도 한국이 극복해야 할 과제라는 평가다. 2019~2020년 산업부문에서의 탄소배출량이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 일시적 현상이란 얘기다. 실제 수출이 회복세를 보인 올해부터 탄소배출량도 다시 예전 증가세를 회복하고 있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국내 탄소배출량은 계속 늘어났을 것”이라며 “제조업 기반의 산업구조를 감안할 때 현행 감축 목표는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