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기업이 2023년부터 디지털세 명목으로 외국에 수천억원의 세금을 더 낼 전망이다. 글로벌 기업이 외국에 사업장을 두지 않고 판매만 하더라도 해당 국가가 세금을 걷을 수 있도록 하는 디지털세가 채택됐기 때문이다. 당초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대형 온라인 업체만을 대상으로 논의하다가 불똥이 글로벌 대기업 전반으로 튀었다. 한국 정부는 삼성전자 등이 외국에서 내는 세금을 국내 법인세에서 빼주기로 했다.

초과 이익의 25% 해외에서 과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9일 OECD·주요 20개국(G20) 포괄적 이행체계(IF) 13차 총회를 열어 디지털세와 법인세 최저한세율에 대한 최종 합의문을 내놨다. IF에 참여하는 140개국 중 케냐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4개국을 제외한 136개국이 합의문에 서명했다.

합의문에 따르면 2023년부터 각국 대기업들은 ‘초과이익 중 25%’에 대한 과세 권한을 실제 매출이 발생한 시장 소재국에 배분하게 된다. 디지털세 부과 체계에서는 기업의 글로벌 매출을 모두 합산한 뒤 이익률 10%에 해당하는 이익을 통상이익으로, 나머지 이익을 초과이익으로 분류한다. 통상이익 전체와 초과이익 중 75%에 대한 세금은 기존과 같이 본사 또는 사업장 소재지에 납부하고, 초과이익 중 25%에 해당하는 세금을 시장 소재국에 나눠서 낸다는 얘기다.

과세권 배분 비율은 20~30% 선에서 논의되다가 이번 총회에서 25%로 정해졌다. 기획재정부는 “대부분 국가들이 배분 비율을 30%까지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20%를 제시하면서 중간인 25% 선에서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세금 부담 늘어나나

디지털세는 글로벌 연결매출 200억유로(약 27조원)와 이익률 10%를 모두 넘는 기업이 대상이다. 국내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상이 된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실적을 기반으로 과세권 배분량을 추정하면 수천억원의 세금이 해외로 이동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36조807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영업이익은 35조9939억원, 순이익은 26조4078억원이다. 디지털세 체계에서 삼성전자의 통상이익은 10%인 23조6807억원이다. 초과이익은 12조3132억원으로 계산된다.
이 중 75%인 9조2349억원과 통상이익 23조6807억원에 대해서는 기존 방식대로 세금이 부과된다. 나머지 3조783억원에 대해선 매출 비중에 따라 과세권이 세계 각국에 배분된다. 한국의 매출 비중이 16%인 것을 고려하면 초과이익 중 4925억원에 대한 세금은 여전히 한국에 내고, 나머지 2조5858억원은 해외 다른 국가에 배분될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가 지속가능보고서를 통해 공개한 작년의 조세공과금 총액 11조1000억원이 계속 유지되고, 국가별 세금 납부 비중 등이 같을 경우를 가정하면 삼성전자가 한국 정부에 내는 세금은 기존 8조1000억원에서 디지털세 도입 후 7조5000억원 선으로 줄어들게 된다. 약 6000억원의 세금이 한국에서 외국으로 넘어가는 셈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해외에서 낸 디지털세는 국내 세금에서 공제해준다”며 “기업으로선 기존에 내던 세금의 배분 방식만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이 추가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법인세 최저세율 15%

대기업이 내던 세금 일부가 해외로 이전되지만 국내 세수에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 해외에 주로 세금을 내던 기업들이 국내에 세금을 더 내게 되는 구조기 때문이다.

IF는 이와 함께 각국에서 도입할 예정이던 디지털 관련 개별 과세는 모두 철폐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유럽에서 추진하던 디지털 서비스세 등은 도입되지 않는다.

글로벌 최저한세율은 15%로 확정됐다. 특히 제조업의 실질활동에 관한 공제율을 높이면서 반대 입장이던 아일랜드와 헝가리 등 저세율국의 동참을 이끌어냈다고 OECD는 설명했다.

IF는 제조업의 경영 형태를 고려해 유형자산 장부가치의 8%와 인건비의 10%를 과세표준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단 첫 5년 동안은 해마다 0.2%포인트씩, 마지막 5년간은 매년 각각 0.4%포인트, 0.8%포인트 감소해 10년 후 공제율은 5%로 맞춰진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