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계란과의 전쟁 260일…가격은 못잡고 시장은 왜곡
연초부터 시작된 정부의 계란 가격 잡기가 260일을 넘기고 있다. 정부는 올해 1월 25일 미국산 계란 수입을 시작으로 계란값 안정을 위해 갖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에도 계란가격 하락폭은 미미한 가운데 오히려 계란 수요는 늘어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올 하반기 계란 한판(30개)의 평균 가격은 7200원선을 나타내고 있다. 상반기 7900원 대비 조금 떨어지기는 했지만 지난해 9~10월 3990원과 비교하면 여전히 2배 가까이 비싸다. 통계청 조사에서도 지난달 달걀 가격은 8월과 비교해서는 3.6% 떨어지기는 했지만, 작년 9월과 비교하면 43.4% 높았다.

작년 11월부터 조류독감(AI)이 유행하며 계란을 낳을 닭 1671만 마리(전체의 22.6%)가 살처분된 것이 근본 원인이다. 공백을 메우기 위해 병아리와 중병아리 등이 농가에 공급됐지만 시중에 공급되는 크기의 달걀을 낳는데는 6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6월말 기준 국내 산란계도 전년 동기 대비 12.1% 감소한 수준에 머무는 등 달걀 공급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공급감소로 달걀값이 치솟는 동안 계란 수요는 오히려 늘었다. 소비자단체인 소비자시민모임이 최근 6개월 이내에 계란을 구입한 소비자 96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2.2%가 1년 전보다 계란 소비가 늘었다고 답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서도 올해 1분기 가구당 평균 달걀 구매량은 137.7개로 전년 동기 대비 6.7% 증가했다.

이같은 기현상의 원인으로 유통 및 양계업계에서는 정부가 1660억원의 예산을 들여 발행한 농축산물 할인쿠폰을 지목했다. 마트 등에서 계란을 구입하면 10% 할인해주는 쿠폰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가격이 급등한 계란 구입에 상당수 할인쿠폰이 사용됐다"며 "할인쿠폰이 있을 때 사두자는 심리를 자극해 높은 가격에도 계란 구입이 오히려 늘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시민단체 설문에서도 응답자의 67.5%가 소비쿠폰으로 계란 가격 부담이 줄었다고 답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계란 품귀를 해소하기 위해 수입에도 예산을 대거 집행했다.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정부는 15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3억8538만개의 계란을 수입했다. 이들 계란은 도매 시장에 475억원에 판매되며 정부는 1023억원의 손실을 떠안았다. 정부의 소비쿠폰 지급으로 늘어난 계란 수요를 메우기 위해 정부가 다시 재정을 동원해 계란을 수입하는 악순환이다.

철새철이 다가오면서 정부의 계란값 잡기는 더욱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어렵게 늘린 산란계들이 AI 재확산으로 살처분 될 수 있어서다. 농림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국 등 아시아의 AI 발생 건수는 44건으로 작년 대비 3배 늘어 국내 AI 발생 가능성도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물가 상승이 각종 농축산물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비슷한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김성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농축산물은 사육 및 재배를 늘리는 시점과 실제 산출물이 나오기까지 시차가 있어 정부 정책을 통해 가격을 잡는 것이 어렵다"며 "공급 감소를 예상해 미리 대응하는 것이 답이지만 예상이 빗나가 공급 과잉이 되면 농가 피해에 따른 정치적 부담까지 져야 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