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옥스퍼드 사전에 오른 'K단어' 그리고 한국학
한국은 17세기 초 지도에 영어로 표기됐다. ‘한국의’란 영어 형용사는 1614년 동인도회사 일본지사인 리처드 콕스가 처음 사용했다. ‘한국 사람’이란 명사는 피터 헤일린이 1621년 저술한 지리서 《작은 세계(Microcosmus)》에서 처음 사용했다.

한국어 단어 26개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실렸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K팝의 BTS와 블랙핑크, K드라마의 ‘오징어 게임’과 영화 ‘기생충’을 소개하면서 “우리 모두가 한국의 파도(Korean wave) 꼭대기에 올라타, 영어의 바다에서 큰 물결을 만들고 있다”고 옥스퍼드 연구진의 말을 인용했다.

K팝, 드라마, 뷰티, 푸드, 스타일 등은 최근 세계적으로 성장해온 한국 문화의 핵심이다. 1999년 10월 빌보드차트에 처음 소개된 K팝은 2016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됐다. K드라마는 2002년 싱가포르 일간지 스트레이트 타임스가 소개한 뒤 20년 가까이 흐른 올해 실렸다. 이번에는 한류(hallyu), 한식의 반찬(banchan), 불고기(bulgogi), 김밥(kimbap), 잡채(japchae)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치맥(chimaek), 먹방(mukbang)과 파이팅(fighting), 피시방(PC bang), 스킨십(skinship), 한복(Hanbok), 오빠(oppa) 등이 등재됐다.

한국인으로서 무한한 영광과 자부심을 느끼지만, 이곳 현실은 다르다. 옥스퍼드대에 1981년 닛산 자동차가 지원한 닛산 일본학연구소가 개원했다. 세인트안토니 칼리지에 건물을 짓고, 수십 명의 일본학자가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중국학은 홍콩 거부 딕 푼이 1000만파운드(약 170억원)를 기증해 2014년 세인트휴즈 칼리지에 연건평 5500㎡, 5층 건물의 중국센터를 열었다. 반면 한국학은 중국·일본학 전공 학부생의 제2외국어로 선택될 뿐이다. 게다가 석사 과정에는 교수요원이 절대 부족한 실정이다. 미국인 학과장인 제임스 루이스와 조지은, 지영해 교수 세 분이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중국·일본학에 비해 너무 열악하다. 옥스퍼드에 재직할 때 영국을 방문하는 기업인과 국회의원 등을 한국 보물전, 컬리지 전통만찬에 초대해 한국학 지원을 호소했으나 별 반응이 없었다. 유학 온 언론사 기자에게 한국학 소개를 부탁하고, 주요 일간지 기자를 한국학과 방문교수로 초빙해 지원을 요청했지만 다들 외면했다. 다행히 ‘한국학’에 관심이 많은 박은하 전 주영국 대사가 한국으로 돌아가 뭔가 새로운 물꼬가 터지길 기대하고 있다.

옥스퍼드대에는 1300만 권의 장서와 천년 역사의 보들리안도서관이 있다. 시야를 압도하는 래드클리프 카메라, 마그나 카르타 원본, 1455년 구텐베르크 성경, 그리스 시인 사포의 흔적을 처음 밝힌 파편들과 현미경을 발견한 로버트 훅의 저서 등 수많은 보물이 있다. 1890년 마크 트로로프 주교가 기증한 국보급 영조대왕의 장례행렬도, 1880년 존 로스의 최초 한글 성경, ‘do 동사’를 120여 개 한글로 해석한 최초의 한·영 사전 등 많은 한국 보물도 있다.

한국관 책임 사서 민충은 《한국의 보물》 책을 두 권 발간해 홀로 한국 보물들을 지키고 있다. 도서관장 오벵돈 박사는 한국에서 VIP들이 방문할 때마다 특별전시를 도왔다. 이런 노고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진전이 없어 민충, 오벤든 박사와 한국학의 루이스, 조지은 교수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이 한글날 “옥스퍼드 사전에 한류, 대박 등 우리 단어가 실린 게 매우 뿌듯한 일”이라고 밝혀 묵묵히 이 일을 지원한 한국학과에 도움이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