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간 큰 개미
‘대박, 먹방, 오빠’ 등이 최근 영국 옥스퍼드사전에 새로 올랐다. 다음 업데이트 때 실릴 한국 관련 단어 0순위는 동학개미, 서학개미가 아닐까 싶다.

개인투자자들의 해외파생상품 거래액이 올 들어 8월 말까지 5144조원(약 4조3076억달러)에 달했다. 벌써 GDP(2020년 1933조원)의 2.5배라니 입이 안 다물어진다. 투자대상도 해외지수·원유·구리·통화 등으로 휘황찬란하다. 이쯤 되면 서학개미가 아니라 ‘서학공룡’이나 ‘서학매머드’의 면모다.

‘개미’라는 말은 1989년 무렵 등장했다. 코스피가 처음 1000을 찍자 논 팔고 소 팔아 증시로 몰려드는 이들을 지칭하면서 생긴 용어다. 얕잡아보는 뉘앙스가 강했지만 지난해 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외국인의 한국 주식 투매에 맞서 증시를 방어해 내는 모습에 동학개미라는 별칭이 붙었다. 반(反)외세를 내걸었던 동학농민운동에 빗댄 기대감의 표현이었다. 한국 증시 부진에 해외로 눈돌리는 투자자가 급증하면서 작년 8월부터는 서학개미라는 말도 생겨났다. 서학개미의 올 해외주식 매수도 9월까지 19조6000억원에 달한다.

주목할 건 동학개미, 서학개미 할 것 없이 바닥을 기는 수익률이다. 동학개미운동이 절정이던 작년 3월부터 1년간 동학개미 수익률은 평균 -1.2%(수수료·세금 포함)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70% 급등했다. 서학개미는 더 부진하다. 올 상반기 투자주체별 순매수 상위 10종목 수익률은 동학개미와 서학개미가 각각 -0.3%, -5.4%에 불과하다. 외국인과 기관이 6.3%, 5.0%로 저만치 앞서 달린다.

원인으로 몰빵투자와 단타매매를 빼놓을 수 없다. 한 종목에 올인하는 동학개미 비율이 32%에 달한다. 주식보유기간도 8.2일에 불과하다. 이런 리스크 선호가 레버리지에 유리한 해외파생상품베팅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대량 손실에 맞닥뜨렸다. 서학개미의 해외파생상품 손실은 작년 한 해에만 9126억원이다.

동학·서학개미에 20~30대가 많다는 점도 걱정이다. 국내 주식이 깨지자 코인을 찾고, 그도 안 되자 엘도라도를 구하듯 휴대폰 속 미지의 파생상품으로 빠져든 모습이다. 세계경제로 눈을 돌리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자칭 온라인 고수들의 말만 듣고 하는 ‘묻지마 투자’의 혐의가 짙다. “10년을 보유하지 않으려면 10분도 보유하지 말라”는 워런 버핏의 조언도 귀담아야 한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