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간) 뉴욕 금융시장은 우울한 소식으로 아침을 맞았습니다. 골드만삭스가 지난 주말 3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연 5.5%에서 4.5%로 낮추고 올해 성장률은 연 5.7%에서 5.6%로, 내년은 연 4.4%에서 4%로 하향 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골드만삭스는 미 정부의 재정 지원이 끝나고, 소비 회복이 늦어지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습니다. 또 반도체 공급난이 이어지면서 재고 비축도 내년까지 미뤄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얀 헤치우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테이퍼링은 오는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발표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기준금리는 2023년까지는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내년에 경기가 둔화하고 인플레이션도 하락하면 미 중앙은행(Fed)이 금리를 높이지 못할 것이란 뜻입니다.

여기에 국제유가도 아침부터 급등세를 이어갔습니다. 온종일 강세를 보인 끝에 이날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는 1.5% 오른 배럴당 80.52달러를 기록해 2014년 10월 이후 처음 80달러 윗선에서 마감됐습니다. 브렌트유는 1.5% 상승한 83.65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장중 한때 84.6달러까지 올라 85달러 선에 육박하기도 했습니다.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들은 소폭 내림세로 오전 중에는 상승세를 보였지만 오후 들어 다시 마이너스권으로 떨어졌습니다. 결국, 다우는 0.72%, S&P500지수는 0.69% 떨어졌고 나스닥은 0.64% 하락했습니다.
이날은 콜럼버스데이로 채권시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금리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지난 8일 1.63%에서 마감됨) 하지만 미친 유가가 유발할 수 있는 인플레이션 가능성은 전반적으로 증시에 부정적 영향을 줬습니다.

씨티그룹은 이날 브렌트유가 올해 말 배럴당 90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 상승으로 가스 발전이 석유 발전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 추운 겨울 날씨가 오면 배럴당 100달러로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도 연말 90달러, 뱅크오브아메리카도 추운 겨울이 나타나면 100달러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에 백악관도 또다시 나섰습니다. 로이터는 백악관 관료가 산유국들이 세계 경제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라고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관료는 미 행정부가 원유 가격을 자세히 감시하고 있으며 "미국과 세계 에너지 시장의 반경쟁 관행을 해결해 안정적 에너지 시장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이미 고위급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에 우려를 표명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기사가 나온 뒤 유가 상승 폭은 감소했지만, 유가는 어쨌든 상승세로 마감했습니다.

에너지 시장에서 잘 알려진 IHS마킷의 대니얼 예르긴 부회장은 이날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높은 유가가 현직 대통령에게 부정적이라는 걸 알고 있다. 백악관은 분명히 더 많은 요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바이든 행정부는 높은 에너지 가격에 조정할 만한 많은 도구를 갖고 있지 않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바이든 행정부가 우려만 표할 뿐 실제 유가 안정을 위해 힘을 쓰지는 않고 있다는 설이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미 에너지부의 제니퍼 그랜홈 장관이 지난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전략비축유 방출 검토 의사를 밝혔다가 번복한 뒤 이런 음모설이 더 횡횡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에너지 순수출국입니다. 유가가 오르면 산업별로는 이익과 손해가 갈리지만, 나라 전체로는 이익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세계 최대 에너지 수입국인 중국에는 에너지 가격이 가장 취약한 아킬레스건입니다. 호주와 갈등 속에 석탄 수입을 줄여 전력난까지 겪고 있는 가운데 유가가 오르고 달러까지 지금처럼 강세를 이어간다면 고통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이날 중국 내의 석탄 가격은 t당 1500위안을 넘어섰습니다. 올 초만 해도 600위안 수준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석탄이 부족한데, 지난주부터 주요 석탄 산지인 북부 산시성에 폭우가 이어지면서 176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겁니다. 성 내 682개 탄광 중 60개가 폐쇄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게다가 헝다사태는 중국 부동산 업계로 퍼지고 있습니다. 이미 헝다가 두 차례 이자 지급에 실패했고 이날 월스트리트저널은 당대부동산(Modern land China)이 이달 말 만기인 2억5000만 달러 규모의 달러 채권 일부에 대해 상환 연기를 요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신위안부동산은 오는 15일 만기가 되는 2억2900만 달러 채권을 새 채권으로 바꾸겠다고 투자자와 협의 중입니다. 화양년홀딩스(Fantasia Holdings Group)는 지난 4일 2억600만 달러의 채권을 상환하지 못했죠. 이 때문에 중국 정크본드 시장의 스프레드가 치솟고 있습니다.

에너지 위기에 부동산 가격까지 폭락한다면 중국에서는 사회적 불안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 인민은행이 유동성을 투입하고, 위안화 고시 환율을 높게 유지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씨티그룹의 트레이시 라오 분석가는 "중국이 전력난과 급등하는 전기료로 인해 짧은 기간의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을 수 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다만 월가 관계자는 "현재 에너지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올겨울 날씨"라며 "예년보다 기온이 떨어진다면 유가가 치솟을 것이고 이는 집권당(민주당)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라며 "결국은 시간문제일 뿐 사우디를 압박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월가도 내년에는 유가가 하향 안정될 것으로 봅니다. 시간이 흐르면 OPEC+가 증산을 할 것이고 핵 합의가 이뤄진다면 이란산 원유도 국제시장으로 쏟아져나올 수 있습니다. 모건스탠리는 브렌트유가 내년에는 9%, 앞으로 2년간 16%가량 하락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어쨌든 치솟는 유가는 커다란 물가 상승 요인입니다. JP모간에 따르면 유가가 100% 오르면 미국의 소비자물가(CPI)를 2.3% 끌어올리게 됩니다. 현재 유가는 연초부터 70%가량 오른 상태입니다. 오는 13일 발표될 9월 CPI가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현재 월가는 헤드라인 수치가 전년대비 5.3%, 근원 수치는 4.1%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 7, 8월 5.4%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는 겁니다. 또 전월 대비로는 각각 0.4%와 0.3%를 예상합니다.
게다가 높은 에너지 가격은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샌퍼드 번스타인은 "최근 에너지 비용 급증은 일시적인 것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1년 이상의 장기간의 에너지 비용 상승, 특히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으로 오르면 가계의 실소득이 줄어 세계 경제 성장이 둔화할 수 있다. 연간 기준으로 GDP에서 차지하는 석유 비용은 3~5%에 불과하지만 높은 석탄 및 가스 가격과 함께 배럴당 100달러 이상의 유가는 경제 성장을 훼손하는 수준이 될 수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실제 유가 폭등세는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촉발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월가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논란이 거셉니다.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코스틴 수석 주식전략가는 10일 보고서에서 "지난주 고객과의 대화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 가장 흔한 단어였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스태그플레이션은 골드만삭스의 기본 시나리오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지금은 미국 경제의 성장률이 장기 추세보다 높은 데다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일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골드만삭스는 하향 조정은 했지만, 여전히 올해 미국의 GDP가 연 5.6%, 내년에는 연 4% 성장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또 미국의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는 올해 말 4.25%까지 오르지만 내년 말 다시 2%로 낮아질 것으로 관측합니다.
뉴욕 증시에서 20%가량의 조정을 예상하는 모건스탠리도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논란은 미국 경기가 중간사이클 전환 직후에 나타난 적이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경기가 중간사이클로 바뀌면 초기의 빠른 성장률은 정체되기 시작하고, 증가한 수요에 의해 에너지 가격은 오르면서 그런 걱정이 나온다는 겁니다.
앤드루 시츠 모건스탠리 전략가는 "스태그플레이션은 중간사이클 전환이 이뤄졌던 지난 2004~2005년에도 매우 뜨거운 화두였다"라고 설명합니다. 2000년 닷컴버블이 터진 뒤 정체되어 있던 미국 경제의 성장과 증시는 2003년 급반등했습니다. 하지만 2004년 중반 성장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고(PMI가 정점을 치고 내려옴) 에너지 가격은 상승했습니다. 2005년 봄이 되자 시장은 최악의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4월 미국 CPI 상승률은 3.5%를 기록했고 PMI는 52로 떨어지는 등 성장 지표는 정체되었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이코노미스트 잡지 표지와 뉴욕타임스의 사설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시츠 전략가는 "2004~2005년 내내 기업 이익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식 가치는 그렇지 못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미국 증시의 수익률은 2003년 26%를 넘었지만 2004년 8.99%, 2005년 3.00%에 그칩니다. 하지만 물가가 내려가면서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사라지자 2006년 다시 13.6%로 올라갑니다.
시츠 전략가는 "우리는 2005년이 스태그플레이션 공포에 대한 유용한 기준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 조언을 했습니다. 과거 인플레이션 상승과 성장 둔화가 일어나던 시기에는 종종 공통점이 있는데 높은 에너지 가격이었다는 겁니다. 그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위한 최고의 헤지 중 일부는 에너지 분야에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분석은 골드만삭스도 비슷합니다. 골드만삭스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두 개 이상의 분기 연속으로 근원 소비자물가(CPI)는 장기 추세보다 50bp(1bp=0.01%포인트) 이상 높고,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추세보다 50bp보다 낮은 상태로 정의한 뒤 이런 시기를 찾았습니다. 미국에서는 1960년부터 전체의 17%인 41개 분기에서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 나타났는데 대부분 1960년대 후반,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에 몰려있고 21세기 들어선 거의 없었습니다.
이 기간 S&P500지수의 중간 실질 총수익률은 –2.1%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60년간 전체적으로는 2.5%였는데 그보다 훨씬 낮게 나온 겁니다. 또 낮은 성장률을 보인 분기(-0.5%)나 높은 인플레이션이 나타난 분기(-0.6%)보다도 좋지 않은 수익률입니다.

업종별로 보면 스태그플레이션 환경에서 에너지, 헬스케어 주식이 일반적으로 가장 높은 수익률을 보였습니다. 반면 소재와 산업주, 그리고 정보통신주 등은 수익률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나타냈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온다고 본다면 에너지에 투자하는 게 좋다는 뜻입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