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호 칼럼] 늘어나는 확진자, 사라지는 긴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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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2021년 7월 7일을 기점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1,000명을 넘겼고, 이후 4개월 넘게 1,000~3,000명대 사이를 기록하며 좀처럼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지난 해인 2020년 3월 대구에서 종교단체 발 코로나19가 폭증하여 한 달여 만에 확진자가 7,600명 이상 발생하면서 국민들은 불안에 떨었고, 정부는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단계로 올리며 코로나19의 확산을 저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아마도 생생히 기억하실거다. 단순 수치만 비교해도 작년보다 지금이 더 많은 확진자가 전국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에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물론 24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경험한 학습효과와 백신효과로 코로나19에 대해 상식적이고 일상적인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된 건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2008년 텍사스 주 갤버스턴 섬이 허리케인의 직격탄을 맞았다. 약 100년 전에도 갤버스턴은 비슷한 사태로 비슷한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당시 지역의 관료와 정치인들은 끔찍한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 도시를 재건할 때 충분한 예방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각종 증거에 따르면 시간이 지날수록 교훈은 현저히 퇴색해 갔다. 2008년 당시에는 도시를 방어하는 방조제가 특히 허술했다. 군데군데 노후가 심하기 진행되었고, 심지어는 새로 지어진 동네는 방조제를 처음부터 아예 생략하기도 했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허리케인이 다가올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기 경고를 무시했다. 지형적으로 재난에 취약한 지역인데도 피해를 입은 주민 수천 명 중에 필요한 보험에 가입은 사람은 39%뿐이었다. 이런 실책이 쌓여 끔찍한 인명과 재산 피해로 이어졌다.
2021년 하반기 코로나19 대처상황과 갤버스턴 섬 허리케인 재난 상황에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가 경험한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마음속 깊이 새기기 위해 기념물도 세우고 안전대책에 투자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심리적 외상은 서서히 흐려지게 된다. 즉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심리적으로 견딜 수 있는 수준으로 낮아진다는 거다. 이러한 인간의 행동을 ‘심리적 회귀 현상’이라고 한다.
이러한 심리적 회귀 현상 때문에 매일 매일 울려대는 재난 문자를 봐도 무시하며 미래에 닥칠 재난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다. 특히 질병이나 재난을 직접 겪지 않았다면 초기의 충격이 가신 뒤에는 재난에 대한 기억과 악화되는 수치가 전만큼 고통스럽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과거의 충격보다는 눈앞에 닥친 생생한 일상의 걱정거리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해 버린다.
가깝게는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촉발했던 상황에서도, 멀게는 중세시대 흑사병이 초래했던 상황에서도 코로나19에 대응하는 현대인들과 보인 양상이 매우 유사하다. 유럽 전역을 강타했던 흑사병이 진정되고, 세계를 강타한 스페인 독감이 퇴조하자 사람들은 아무일 없다는 듯 팬데믹 이전으로 회귀했다.
그렇다면 흑사병과 스페인 독감을 통해 질병에 대처하는 방법에 큰 변화가 있었을까? 최근에 미국의 ‘더글러스 아일랜드 뉴스’에 실렸던 당시 스페인 독감 예방법이 온라인에 공유되었다. 신문에는 103년이 지난 현재의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권고사항과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마스크 착용하기, 손 씻기 등 개인위생 관리, 개인 건강관리, 환기하기,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 피하기, 격리 수칙 지키기, 증상이 있을 때는 빠르게 병원에 가기 등 코로나19를 위해 쓰였다고 해도 될 만큼 동일한 수칙을 내세우고 있었다.
물론 ‘심리적 회귀 현상’이 부정적인 의미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스케이트를 타다 넘어지거나 축구 경기에서 지는 것처럼 일상 속에서 자주 겪는 자잘한 실패에는 무척 유용하다. 실패나 패배를 경험할 때마다 사사건건 정신적 충격에 빠진다면 새로운 시도도 못하고 역량도 키우지 못할 테니깐 말이다. 마찬가지로 질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고 도시가 파괴된 뒤 사람들이 다시는 질병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거나 도시를 짓지 않는다면 문명은 발달을 멈추고 정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당장은 동네 소비, 로컬 여행, 탈세계화가 두드러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코로나19에 대한 극복이 가시화되면 원거리 소비, 해외여행, 세계화에 대한 추세 쪽으로 돌아갈 것이다.
인간의 이런 양면성을 두고 체코 경제학자 세들라체크는 타조효과(ostrich effect)를 예를 들어 우리에게 경고한다. 참고로 타조효과는 맹수가 전속력으로 돌진해오면 타조는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고 머리를 모래에 박는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심리적 회귀 현상에만 기대어 위기가 구름처럼 몰려오는데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없고, 문제를 회피하기만 한다면 더 큰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경영평론가(ijeong13@naver.com)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2008년 텍사스 주 갤버스턴 섬이 허리케인의 직격탄을 맞았다. 약 100년 전에도 갤버스턴은 비슷한 사태로 비슷한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당시 지역의 관료와 정치인들은 끔찍한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 도시를 재건할 때 충분한 예방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각종 증거에 따르면 시간이 지날수록 교훈은 현저히 퇴색해 갔다. 2008년 당시에는 도시를 방어하는 방조제가 특히 허술했다. 군데군데 노후가 심하기 진행되었고, 심지어는 새로 지어진 동네는 방조제를 처음부터 아예 생략하기도 했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허리케인이 다가올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기 경고를 무시했다. 지형적으로 재난에 취약한 지역인데도 피해를 입은 주민 수천 명 중에 필요한 보험에 가입은 사람은 39%뿐이었다. 이런 실책이 쌓여 끔찍한 인명과 재산 피해로 이어졌다.
2021년 하반기 코로나19 대처상황과 갤버스턴 섬 허리케인 재난 상황에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가 경험한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마음속 깊이 새기기 위해 기념물도 세우고 안전대책에 투자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심리적 외상은 서서히 흐려지게 된다. 즉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심리적으로 견딜 수 있는 수준으로 낮아진다는 거다. 이러한 인간의 행동을 ‘심리적 회귀 현상’이라고 한다.
이러한 심리적 회귀 현상 때문에 매일 매일 울려대는 재난 문자를 봐도 무시하며 미래에 닥칠 재난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다. 특히 질병이나 재난을 직접 겪지 않았다면 초기의 충격이 가신 뒤에는 재난에 대한 기억과 악화되는 수치가 전만큼 고통스럽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과거의 충격보다는 눈앞에 닥친 생생한 일상의 걱정거리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해 버린다.
가깝게는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촉발했던 상황에서도, 멀게는 중세시대 흑사병이 초래했던 상황에서도 코로나19에 대응하는 현대인들과 보인 양상이 매우 유사하다. 유럽 전역을 강타했던 흑사병이 진정되고, 세계를 강타한 스페인 독감이 퇴조하자 사람들은 아무일 없다는 듯 팬데믹 이전으로 회귀했다.
그렇다면 흑사병과 스페인 독감을 통해 질병에 대처하는 방법에 큰 변화가 있었을까? 최근에 미국의 ‘더글러스 아일랜드 뉴스’에 실렸던 당시 스페인 독감 예방법이 온라인에 공유되었다. 신문에는 103년이 지난 현재의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권고사항과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마스크 착용하기, 손 씻기 등 개인위생 관리, 개인 건강관리, 환기하기,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 피하기, 격리 수칙 지키기, 증상이 있을 때는 빠르게 병원에 가기 등 코로나19를 위해 쓰였다고 해도 될 만큼 동일한 수칙을 내세우고 있었다.
물론 ‘심리적 회귀 현상’이 부정적인 의미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스케이트를 타다 넘어지거나 축구 경기에서 지는 것처럼 일상 속에서 자주 겪는 자잘한 실패에는 무척 유용하다. 실패나 패배를 경험할 때마다 사사건건 정신적 충격에 빠진다면 새로운 시도도 못하고 역량도 키우지 못할 테니깐 말이다. 마찬가지로 질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고 도시가 파괴된 뒤 사람들이 다시는 질병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거나 도시를 짓지 않는다면 문명은 발달을 멈추고 정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당장은 동네 소비, 로컬 여행, 탈세계화가 두드러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코로나19에 대한 극복이 가시화되면 원거리 소비, 해외여행, 세계화에 대한 추세 쪽으로 돌아갈 것이다.
인간의 이런 양면성을 두고 체코 경제학자 세들라체크는 타조효과(ostrich effect)를 예를 들어 우리에게 경고한다. 참고로 타조효과는 맹수가 전속력으로 돌진해오면 타조는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고 머리를 모래에 박는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심리적 회귀 현상에만 기대어 위기가 구름처럼 몰려오는데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없고, 문제를 회피하기만 한다면 더 큰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경영평론가(ijeong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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