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가죽과 모피는 인류가 아주 오랫동안 활용해온 소재다. 특히 럭셔리 분야에서 좋아하는 소재다. 그런데 이제 모피는 확실히 지는 해다. 가죽도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진짜 동물에서 얻은 가죽을 대신해 인조 가죽과 합성 가죽이 부상했고, 그중에서도 ‘비건 레더(vegan leather)’가 대세가 되고 있다. 비건 레더는 식물성 재료로 만든 가죽이다. 가장 동물적인 소재인 가죽을 식물로 만드는 시도는 왜 하는 것일까? 럭셔리 패션업계와 프리미엄 자동차업계가 왜 비건 레더를 개발하는 걸까? 비건 레더 트렌드 속에서 비즈니스의 방향이 보인다.

구찌는 왜 데메트라를 개발했을까

구찌 비건 레더 스니커즈
구찌 비건 레더 스니커즈
구찌는 2년간 자체 연구를 통해 목재 펄프와 비스코스 등 식물성 원료 기반의 비건 레더를 개발했고, 올해 6월 비건 스니커즈 라인을 출시했다. 기존의 가죽 원자재를 비건 레더로 대체한 것으로, 가죽과 같은 방식으로 무두질 처리해 신발만 보면 그냥 가죽이라고 여겨진다. 가격도 기존 가죽으로 만든 제품과 차이 없다. 사실 더 비싸면 비쌌지 쌀 이유는 없다. 구찌는 직접 개발한 비건 레더 소재를 ‘데메트라(Demetra)’로 상표 출원하고 이 소재를 스니커즈뿐 아니라 액세서리부터 핸드백 등 모든 컬렉션에서 활용할 계획이다. 구찌뿐 아니라 구찌의 모회사인 케링(Kering)그룹 내에 있는 발렌시아가, 생로랑, 보테가 베네타 등 럭셔리 패션 브랜드에서도 데메트라를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그리스 신화 속 농업과 수확의 여신 데메테르(Demeter)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현재 세계 패션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한 명인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직접 이 이름을 선택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인 가죽을 비건 레더로 바꾸는 과정에서, 왜 하필이면 농업과 수확의 여신 이름을 차용했겠는가? 동물성 가죽에서 식물성 가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선언적 메시지이면서 구찌 브랜드의 방향성과도 연관 있는 선택이다.

구찌는 그동안 젠더, 윤리, 환경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마케팅과 디자인에 반영해 왔다. 이런 노력들이 밀레니얼 세대에 이어 Z세대도 구찌를 애정하는 배경 중 하나기도 하다. 아무리 유명하고 비싼 브랜드여도 지금의 시대 정신과 동떨어지면 2030대에게 외면당하기 쉽다. 젠더, 윤리, 환경이라는 세 가지 축은 새로운 럭셔리의 기본이자, 힙(hip)의 필수다.

비건 레더를 받아들인 에르메스의 본심

럭셔리 중에서도 하이엔드 럭셔리로 꼽히는 에르메스는 비건 레더로 핸드백을 만들고 있다. 버섯 균사체를 이용해서 진짜 가죽과 비슷한 촉감과 내구성을 가진 비건 레더를 개발한 미국의 바이오테크 스타트업인 마이코웍스의 비건 레더를 에르메스가 3년여에 걸쳐 협업하며 테스트했고, 빅토리아백의 비건 레더 버전을 2021년 연말까지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에르메스의 핸드백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버킨백, 켈리백이고, 아마 그다음이 빅토리아백 아닐까? 진짜 가죽 대신 비건 레더를 쓰는 것 빼곤 빅토리아백 제조 공정은 기존과 동일하다. 장인들이 무두질과 마감 처리를 통해 에르메스 품질 기준에 맞게 가죽을 가공하고 가방을 제작하는데, 기존 가방과 가격이 비슷할 순 있어도 싸지는 않을 것이다.

진짜 가죽이라서 가격이 더 비싸고, 인조 가죽이라서 더 싼 건 예전 얘기다. 인조 가죽 중에서도 비건 레더는 원가가 높다. 사람들의 욕망에서도 동물이 아닌 식물로 만든 가죽이 더 럭셔리로 여겨질 수 있다. 에르메스는 명품 중에서도 상위 클래스이고, 버킨백과 켈리백은 웨이팅만 수년씩 걸리는 초고가 핸드백의 대명사로 악어 가죽으로 만들면 가격은 5000만원에서 1억원 정도 된다. 에르메스는 고품질의 악어 가죽을 얻기 위해 대규모 악어 농장을 여러 개 소유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동물보호단체들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는다. 에르메스도 가죽을 얻기 위해 악어를 키우고 죽이는 데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초고가 악어백 시장을 스스로 포기하긴 어렵다 보니 당장 비건 레더를 활용한 제품을 내놓으며 변화에 서서히 대비하는 것이다.

향후 버킨백, 켈리백에 비건 레더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그 시기가 언제일지가 두고볼 일이지 진짜 가죽을 계속 고집할 수 없다는 건 패션업계 모두가 안다. 샤넬, 루이비통도 비건 레더 트렌드를 외면하지 못한다. 이들도 조만간 제품을 출시할 것이다. 기존 가죽을 대신해 식물을 기반으로 한 가죽으로 넘어가는 건 패션계의 새로운 흐름 중 하나다.

자동차업계의 비건 프렌들리 카

패션업계만큼이나 자동차업계에도 가죽은 중요한 소재다. 특히 프리미엄 자동차에선 가죽의 품질이 중요하다. 자동차업계도 진짜 가죽을 인조 가죽, 합성 가죽으로 대체하는 시도를 한 지 꽤 됐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아티코(Artico)’, 페라리의 ‘마이크로 프레스티지(Mycro Prestige)’, 도요타의 ‘소프텍스(Softex)’ 등이 자동차업계가 만든 대표적인 인조 가죽이다. 하지만 플라스틱 합성 소재라는 한계는 명확하다. 동물 가죽을 안 쓴 건 비건이라 할 수 있지만, 공정 과정과 폐기할 때의 환경 오염과 미세 플라스틱 등의 문제로 인해 비거니즘에선 어긋나기 때문이다.

벤틀리 비건 레더 시트
벤틀리 비건 레더 시트
이 때문에 자동차업계에서 비건 레더 시도가 확산하기 시작했는데, 벤틀리가 100주년 기념 모델의 시트를 제작할 때 쓴 가죽이 와인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포도 껍질과 줄기로 만든 비건 레더였고, 폭스바겐이 2019년 상하이 모터쇼에서 선보인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콘셉트카는 사과 껍질에 폴리우레탄을 혼합해 만든 비건 레더로 시트를 제작했다. 테슬라는 모델3에서 천연가죽을 없애고 파인애플 잎과 줄기를 사용한 비건 레더로 시트를 만들기도 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식물성 비건 레더를 직접 개발 중이고, BMW 아우디 같은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도 비건 레더를 가죽 시트로 사용하기 위한 개발과 테스트를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도 비건 레더 적용을 시도하고 있는데, 현대차 사내 스타트업 중 버섯균으로 가죽을 만드는 비건 레더 사업을 하는 곳이 있기도 하다. 자동차업계 전방위적으로 비건 레더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이 중에서도 프리미엄급, 럭셔리급 자동차에서 더 적극적이다.

자동차에서 가죽은 시트에서 오랫동안 가장 인기 있고 중요한 소재였다. 하지만 비거니즘의 확산으로 진짜 가죽을 인조 가죽으로 대체하는 흐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인조 가죽 중에서도 식물성 비건 가죽이 대세가 되는 흐름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가죽산업으로부터 동물을 구하는 건 좋지만, 플라스틱이나 탄소 배출로 이어져선 안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이 자동차에서 가죽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 선택이다.

자동차 인테리어에서 가죽이 사라진다면?

볼보는 순수 전기차 모델 C40를 개발하면서 볼보 역사상 처음으로 가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자동차를 만들었다. BMW, 벤틀리, 아우디 등도 가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자동차 라인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장기적으론 자동차에서 가죽 소재는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BMW 미니 디자인 책임자인 올리버 하일머는 한 인터뷰에서 “자동차 기업들이 신형 모델에서 가죽 인테리어를 모두 없애고 있는 추세”라며 “가죽이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차량에 가죽 부품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일론 머스크는 “미래의 테슬라 모델을 비건 자동차로 만들겠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가죽이 주는 감성 품질은 분명 중요하지만, 동물 보호와 환경을 고려해 아예 가죽을 빼도 된다는 소비자가 계속 늘어난다면 자동차 제조사로서도 그 흐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에서 친환경 이슈가 전기차뿐 아니라 비건 레더로도 확산 중이다. 자동차의 구동 방식은 전기차이면서, 실내 내장재는 가죽이 없거나 쓰더라도 비건 레더를 사용하고, 폐차 후 재활용이 원활한 소재 선택과 설계가 이뤄지는 것이다. 자동차에서 비건 프렌들리는 점점 중요해지고 있고, 이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확산과도 연결된다. 소비자도 기업도 비거니즘을 외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왜 패션·자동차업계는 '비건 레더'를 주목하는가 [김용섭의 트렌드 빅 퀘스천]
패션·뷰티업계에선 기본이 돼버린 애니멀 프리(animal free),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가 자동차업계에서도 기본이 될 수 있다. 그동안 고급 제품에는 가죽이 필수적으로 쓰이다시피 했는데, 명품 핸드백이건 고급 자동차건 비건 레더를 사용하는 게 보편화할 수 있다. 우리의 욕망 속에 ‘진짜 가죽=고급’이라는 인식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결국 비건 레더가 동물 윤리와 환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면 진짜 가죽과 구별되지 않는 고품질에 1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내구성을 갖추고, 가격 경쟁력을 위해 대량생산까지 가능해야 한다. 아무리 윤리와 환경이 중요해도 소비자는 비싼 값을 치르고 산 프리미엄급 제품에서 저품질의 인조 가죽이나 플라스틱 소재를 감수하진 않는다. 프리미엄 비건 레더를 개발하는 건 필수다.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들은 한결같이 이 숙제를 풀고 있는 중이다. 고품질과 내구성을 갖춘 비건 레더로 당장 모두 대체되진 않겠지만, 방향은 그렇게 가고 있다. 물론 이런 트렌드가 가장 불편한 건 가죽산업계일 것이다.

가죽산업이 변화를 받아들여야 미래가 있다

가죽산업계로선 자신들이 윤리와 환경 문제로 지탄받고 대체돼야 할 적폐로 취급받는 게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들로선 전통적으로 물려받은 방식으로 일한 것뿐이고, 그 덕분에 패션과 자동차, 가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죽을 소재로 잘 활용하고 편리를 누렸는데, 이런 건 다 잊고 이제 와 문제 삼으니 속상하긴 할 것이다.

동물 가죽이 사라지고 다 비건 레더를 쓰면 좋을까? 아니다. 여기서도 적정한 선이 필요할 것이다. 가죽을 얻기 위해 잔인하게 동물을 죽이는 것은 문제지만, 우리가 고기를 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고 그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가죽은 활용해야 할 자원이다. 진짜 가죽을 다 몰아낸다면 오히려 이렇게 발생하는 가죽 자원의 활용을 없애 결국 자원 낭비가 된다. 그렇다고 진짜 동물을 안 잡아먹고 식물성 대체육만 먹을 수도 없다. 기존 축산업이 동물복지 기준을 충족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며 동물은 동물답게 살다 죽을 권리, 인간은 좀 더 안전하고 건강한 동물을 먹을 권리를 충족해 나가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죽산업에서도 기존 공정의 변화가 필요하다. 가죽을 얻는 과정에서 동물을 죽이는 방식, 가죽을 벗기는 방식, 무두질이나 제조 공정에서 비윤리적이고 반환경적인 방법들을 개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결국 프리미엄 비건 레더와 친환경적 리얼 레더가 공존하는 흐름이 방향성이 된다. 무조건 과거 방식이 문제니까 다 버리자는 게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무조건 뉴노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인류와 세상에 더 나은 선택인 베터노멀을 위해서 우린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모피와 가죽을 대하는 태도 변화는 패션, 자동차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의식주 전반으로 비거니즘은 계속 확대 중이고, 이는 기업에 위기이자 기회다.

비거니즘,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비건은 더 이상 식습관 문제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먹는 것이 우리 삶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고, 식습관에서 비건을 선택한 사람들은 의식주 전반에서 삶의 태도로서 비거니즘을 드러내게 된다. 동물 착취를 반대하고 채식하는 것부터 기후 위기와 탄소 배출, 일회용 플라스틱, 미세 플라스틱 등을 비롯한 환경 문제, 생태계 파괴, 인권과 차별의 문제 등으로 이어진다. 전방위적인 확장, 한마디로 ‘올라운드 비거니즘’이다. 비거니즘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기업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좀 더 빨리 과감하게 받아들이냐, 눈치 보며 조금씩 받아들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비거니즘 마케팅이 중요 소비 코드가 된 것은 분명하다.

■ 김용섭은

왜 패션·자동차업계는 '비건 레더'를 주목하는가 [김용섭의 트렌드 빅 퀘스천]
트렌드 인사이트&비즈니스 크리에이티비티(Trend Insight & Business Creativity)를 연구하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자 트렌드 분석가다.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대기업과 정부 기관에서 2500회 넘는 강연과 비즈니스 워크숍을 했고, 200여 건의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저서로 《라이프 트렌드 2022: Better Normal Life》 《결국 Z세대가 세상을 지배한다》 《프로페셔널 스튜던트》 《라이프 트렌드 2021: Fight or Flight》 《언컨택트》 《라이프 트렌드 2020: 느슨한 연대》 《요즘 애들, 요즘 어른들: 대한민국 세대분석 보고서》 《라이프 트렌드 2019 : 젠더뉴트럴》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