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배 "혁신은 사소한 변화부터 시작…넘어져도 앞으로 넘어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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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창간 57th 미래를 말한다
릴레이 인터뷰 (4)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한한령·코로나…거품 걷히자 약점 드러났다"
실적 곤두박질…좋은 제품 만들면 팔리는 시대 지나
모두 디지털을 말하지만 '어떻게' 바꿀지 몰라 망설여
아모레, 1등 성공방정식 버리고 '全社의 디지털화'
배트 짧게 쥐고, 일단 시도하고 실행하는 조직으로
반바지 입고 메타버스 올라타며…리더가 솔선수범
창의·역동·융통성이 기업 바꿀 21세기 비즈니스 덕목
릴레이 인터뷰 (4)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한한령·코로나…거품 걷히자 약점 드러났다"
실적 곤두박질…좋은 제품 만들면 팔리는 시대 지나
모두 디지털을 말하지만 '어떻게' 바꿀지 몰라 망설여
아모레, 1등 성공방정식 버리고 '全社의 디지털화'
배트 짧게 쥐고, 일단 시도하고 실행하는 조직으로
반바지 입고 메타버스 올라타며…리더가 솔선수범
창의·역동·융통성이 기업 바꿀 21세기 비즈니스 덕목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과의 인터뷰는 여러 차례의 고사와 설득 끝에 이뤄졌다. 그는 “아직 성과를 세상에 공개할 준비가 안 됐다”고 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주가(12일 종가 17만4500원)는 한창때에 크게 못 미치고, 실적(올 상반기 기준)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가까스로 회복해가는 형편이라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한국경제신문은 ‘비즈니스의 미래’에 대한 답변자로 서 회장을 적임이라고 판단했다. 아모레퍼시픽만큼 격랑의 바다에 ‘강제’로 밀려 나온 기업도 드물기 때문이다.
서 회장은 2018년 초부터 약 3년 반을 전사의 디지털화에 매진하고 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조직 문화를 송두리째 바꾸고 있는 그는 “시대 흐름을 바로 보고 비즈니스를 다시 설계하는 근본적 재설계 전략을 펼쳐야 변화하는 경영 환경을 기회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서 회장은 임직원에게 “우리 눈을 가렸던 성공이라는 거품이 모두 걷혔다”며 “고객과 시장이 변했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해졌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무엇(what)’은 ‘디지털 전환’이었다. 하지만 ‘어떻게(how)’가 문제였다. 격랑 위에 있기는 선장이나 선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서 회장은 조직 문화를 완전히 바꿔야겠다고 판단했다. 선대부터 시작해 한국 화장품산업을 지배했던 자신의 성공 방정식부터 버렸다.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팔 것이냐’를 뿌리에서부터 바꿔야 했다. 빠르게 변하지 않으면 기업의 존속이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위기의식이 팽배했다고 한다.
왜 디지털 전환을 화두로 삼았는지에 대해 서 회장은 “모두가 변화를 쉽게 말하지만 중요한 건 변화의 ‘방식’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깨닫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과 소비자의 선호가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는 잘하던 일에만 집중해 좁은 영역에서의 혁신을 도모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기업이 기존에 갖추고 있는 핵심 역량에서 변화의 해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먼저 뛰어든 후 필요한 역량을 덧붙여서 계속 발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 회장은 자칫 조직이 디지털과 아날로그로 분리되는 일을 가장 우려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박 전무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서 회장이 보인 또 하나의 ‘행동’은 솔선수범이다. 그는 어떤 회의에서건 디지털이란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했다. 박 전무는 “임원들이 수익성과 디지털 전환 중 어느 것을 택할지 등의 딜레마 상황을 아예 고민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리더의 의지가 워낙 강하다”고 전했다.
서 회장은 얼마 전 반바지를 입고 출근한 것에 대해서도 “세상을 움직이는 혁신은 때로 아주 사소한 변화에서 시작된다”며 “남들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모두가 사소하게 생각했던 일상 속 작은 관성부터 바꿔보는 계기를 경영진 스스로가 먼저 만들기를 바랐다”고 설명했다.
현재진행형인 아모레퍼시픽의 변화는 ‘선크림을 꼭 튜브에 담아야 하는가’와 같은 엉뚱한 질문을 만들어냈다. 전 세계 화장 문화를 변화시킨 쿠션 파운데이션형 선크림이 나온 배경이다. 서 회장은 “근면, 성실, 규율이 20세기의 중요한 덕목이었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창의성’, 안 될 것 같아도 과감하게 시도하고 부딪치는 ‘역동성’, 계획과는 다르더라도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움직이는 ‘융통성’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됐다”며 “사고하는 방식과 일하는 방식의 전환이 모두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보수적인 기업 문화를 바꾸기 위해 서 회장이 강조하는 원칙은 세 가지다. “배트를 짧게 쥐고(스몰 배팅), 일단 시도해보고 실행에 옮기며(테스트&런), 넘어지더라도 앞으로 넘어져라(폴포워드)”는 것이다. 서 회장은 “연대기적인 21세기가 아닌, 진정한 21세의 대전환은 팬데믹과 함께 이제 본격화됐다”며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자칫 길을 잃기 쉽지만 ‘사람을 아름답게, 세상을 아름답게’라는 우리의 소명을 매 순간 되새기며 철저히 디지털의 관점에서 지난 70여 년간 쌓아온 강점과 핵심 역량을 오늘의 경영 환경에 맞게 새롭게 설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과거 성공 방정식을 버리는 과감한 전환
변화를 위한 서 회장의 결단은 2018년 시작됐다. 아모레퍼시픽이 창사 이후 최대 위기를 겪을 때였다. 2017년부터 사드 사태로 인한 중국발 한한령(한류 제한령)의 직격탄을 맞으며 실적이 곤두박질쳤다. 2017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15%, 38% 떨어졌다. 그해 초 아모레퍼시픽은 최고디지털책임자(CDO) 자리를 신설하고, 네이버 출신인 박종만 전무를 영입했다.당시 서 회장은 임직원에게 “우리 눈을 가렸던 성공이라는 거품이 모두 걷혔다”며 “고객과 시장이 변했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해졌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무엇(what)’은 ‘디지털 전환’이었다. 하지만 ‘어떻게(how)’가 문제였다. 격랑 위에 있기는 선장이나 선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서 회장은 조직 문화를 완전히 바꿔야겠다고 판단했다. 선대부터 시작해 한국 화장품산업을 지배했던 자신의 성공 방정식부터 버렸다.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팔 것이냐’를 뿌리에서부터 바꿔야 했다. 빠르게 변하지 않으면 기업의 존속이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위기의식이 팽배했다고 한다.
왜 디지털 전환을 화두로 삼았는지에 대해 서 회장은 “모두가 변화를 쉽게 말하지만 중요한 건 변화의 ‘방식’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깨닫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과 소비자의 선호가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는 잘하던 일에만 집중해 좁은 영역에서의 혁신을 도모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기업이 기존에 갖추고 있는 핵심 역량에서 변화의 해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먼저 뛰어든 후 필요한 역량을 덧붙여서 계속 발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리더는 마라톤과 100m 경주에 모두 능해야”
서 회장은 디지털 전환이 전사적 차원에서 이뤄지길 원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첫 CDO인 박 전무는 서 회장으로부터 특명과 특권 한 가지씩을 부여받았다. “디지털화된 조직을 당신 밑에 두는 걸 원하는 게 아니다. 전사를 디지털화 해달라. 어느 부서가 디지털화에 진전을 보이면 그건 CDO 덕분이든 아니든, 당신이 한 일로 알겠다.”서 회장은 자칫 조직이 디지털과 아날로그로 분리되는 일을 가장 우려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박 전무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서 회장이 보인 또 하나의 ‘행동’은 솔선수범이다. 그는 어떤 회의에서건 디지털이란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했다. 박 전무는 “임원들이 수익성과 디지털 전환 중 어느 것을 택할지 등의 딜레마 상황을 아예 고민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리더의 의지가 워낙 강하다”고 전했다.
서 회장은 얼마 전 반바지를 입고 출근한 것에 대해서도 “세상을 움직이는 혁신은 때로 아주 사소한 변화에서 시작된다”며 “남들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모두가 사소하게 생각했던 일상 속 작은 관성부터 바꿔보는 계기를 경영진 스스로가 먼저 만들기를 바랐다”고 설명했다.
현재진행형인 아모레퍼시픽의 변화는 ‘선크림을 꼭 튜브에 담아야 하는가’와 같은 엉뚱한 질문을 만들어냈다. 전 세계 화장 문화를 변화시킨 쿠션 파운데이션형 선크림이 나온 배경이다. 서 회장은 “근면, 성실, 규율이 20세기의 중요한 덕목이었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창의성’, 안 될 것 같아도 과감하게 시도하고 부딪치는 ‘역동성’, 계획과는 다르더라도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움직이는 ‘융통성’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됐다”며 “사고하는 방식과 일하는 방식의 전환이 모두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보수적인 기업 문화를 바꾸기 위해 서 회장이 강조하는 원칙은 세 가지다. “배트를 짧게 쥐고(스몰 배팅), 일단 시도해보고 실행에 옮기며(테스트&런), 넘어지더라도 앞으로 넘어져라(폴포워드)”는 것이다. 서 회장은 “연대기적인 21세기가 아닌, 진정한 21세의 대전환은 팬데믹과 함께 이제 본격화됐다”며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자칫 길을 잃기 쉽지만 ‘사람을 아름답게, 세상을 아름답게’라는 우리의 소명을 매 순간 되새기며 철저히 디지털의 관점에서 지난 70여 년간 쌓아온 강점과 핵심 역량을 오늘의 경영 환경에 맞게 새롭게 설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