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들의 눈이 경기 남양주 왕숙신도시에 쏠리고 있다. 신도시 건설로 ‘주민 10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뒀는데 아직 남양주 시내에 상급종합병원 수준의 대형병원이 없어서다. 여기에 정부가 ‘병상총량제’ 도입 움직임을 보이면서 대형병원들로선 수도권 내에서 병상을 늘릴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려대·경희대 ‘남양주 진출’ 검토

"수도권 병상 확대 마지막 기회"…대형병원들 왕숙신도시에 꽂혔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이르면 올해 말 왕숙신도시 민간사업자 모집 공고가 발표될 예정이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8월 승인한 왕숙 지구계획에는 병원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용지가 두 곳 포함됐다. 각각 3만9241㎡, 1만9241㎡로 대형병원이 들어설 만한 규모다.

의료 수요도 풍부하다. 왕숙 근처엔 한양대구리병원이 있지만, 자동차로 20분 거리여서 가깝지 않다. 왕숙신도시가 개발되면 남양주시 인구가 100만 명을 넘을 전망이어서 대형병원에 대한 의료 수요는 충분하다는 게 의료계의 시각이다. 부지 용도가 병원용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사업공고에 병원도 포함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대형병원들은 벌써부터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고려대의료원이 가장 적극적이다. 고려대의료원 산하 개발사업팀은 남양주 왕숙을 제4병원의 유력 후보지로 검토하고 있다. 최근 경기 하남의 ‘H2 프로젝트’에서 명지병원에 밀린 경희의료원도 남양주 진출에 관심을 두고 있다. 경희의료원은 수도권 내 병상이 1700여 개에 그친다. 병상이 3000개 이상인 연세대의료원, 서울대병원 등에 비해 뒤처진다. 의료계 관계자는 “이번 경기 하남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짜둔 계획을 바탕으로 도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전북 익산에 본원이 있는 원광대병원도 남양주 분원 설립을 검토 중이다.

이미 분원을 짓고 있는 서울아산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등 ‘빅4’ 병원은 이번 사업에선 빠질 전망이다. 서울아산병원은 최근 인천 청라의료복합타운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돼 병상 500개 이상 규모의 종합병원 착공을 앞두고 있다. 세브란스병원과 서울대병원은 각각 인천 송도, 경기 시흥 배곧신도시에 분원을 설립 중이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병원을 짓는 데 막대한 재원이 투입되고, 개원 후 투자금을 회수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최소 2~3년간은 외형 확장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남양주 왕숙은 빅4 병원을 제외한 대학병원들의 각축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수도권 확장 ‘마지막 기회’”

이번 사업은 상급종합병원엔 수도권 내에서 병상을 확대할 ‘마지막 기회’처럼 여겨지고 있다. 3기 신도시 중 대형병원을 지을 만한 위례(가천대길병원)·청라(서울아산병원)·하남(명지병원)은 이미 사업자 선정이 마감됐고, 왕숙만 남았기 때문이다. 인구가 많은 수도권에 병원을 세우면 자체 의료 수요가 풍부할 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방문하는 환자가 많아 수익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력 확보가 지방보다 수월한 것도 수도권 병상 확보에 열을 올리는 배경으로 꼽힌다.

여기에 정부가 수도권에 병상이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병상총량제 도입을 검토하면서 이번 사업권 확보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지금도 정부는 대형병원이 보건복지부와 사전협의 없이 병상을 한 개라도 늘리면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에서 페널티를 부여하는 식으로 병상 증설을 규제하고 있다. 이에 더해 지역 내 병상 개수를 정해두고 이를 넘지 못하게 하는 병상총량제를 시행하면 수도권 내에선 대형병원 신규 설립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란 분석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수도권에 분원을 더 설립하려는 병원들로선 남양주 왕숙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