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말로만 경제안보…뒷북만 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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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반도체 공급망 정보 요구
中, 기술자립 의지 불태우고
日, 수출규제로 후방 압박
美 공급망 강화 이후가 더 문제
한국의 전략가치 흔들릴 우려
핵심기술 경쟁력에 올인해야
안현실 AI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中, 기술자립 의지 불태우고
日, 수출규제로 후방 압박
美 공급망 강화 이후가 더 문제
한국의 전략가치 흔들릴 우려
핵심기술 경쟁력에 올인해야
안현실 AI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안현실 칼럼] 말로만 경제안보…뒷북만 치는 정부](https://img.hankyung.com/photo/202110/07.23097481.1.jpg)
미국 행정부가 삼성전자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민감한 영업정보 제출을 요구했다. 정부는 ‘대외경제안보 전략회의’를 열어 논의하겠다지만 뾰족한 대응책이 나올지 의문이다. 다음달 8일까지 공급망 정보를 제출하라고 통보받은 기업들만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정보 요구 대상에 국내 기업이 들어간 이유는, 한국의 독보적인 반도체 생산기술 우위가 공급망을 강화하려는 미국으로선 전략적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도체 굴기’를 포기하지 않는 중국 입장에서도 그렇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남중국해 등 민감한 사안이 논의됐는데 중국이 반응을 자제한 이유도 미국의 공격을 받는 형국에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한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정부가 좋아하는 ‘전략적 모호성’은 미·중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할 때나 유효하다. 어느 한쪽에서 더 이상 아니라고 하면 전략적 모호성의 수명도 다할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이 국내 공급망 강화를 끝낸 뒤가 더 두렵다.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유지될 것이란 보장이 없어서다. 반도체 공장 건설이 한국에서는 온갖 장애물로 지연되고 있지만, 공급망 확충이 국가 최우선 과제인 미국에서는 신속히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3년, 늦어도 5년 안에 반도체 공장이 건설돼 돌아간다면 한국에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정부가 강대국들과 똑같은 조치로 맞대응에 나서라고 주문하는 게 아니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이 거대한 자국시장을 레버리지로 활용하는 미·중의 안보 논리를 그대로 차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안다. 그렇다고 이게 무기력한 정부 대응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 미·중 충돌로 상황이 꼬일수록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 고도의 전략으로 헤쳐나가야 한다. 정부와 기업 간 신뢰 관계가 지금처럼 최악인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놀란 정부는 뒤늦게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 투자에 다시 불을 붙였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정보 요구는 향후 더 큰 후폭풍의 예고탄일지 모른다. 백 번을 생각해도 미국과 중국이 한국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전략적 핵심기술을 확보하는 것 말곤 다른 선택지가 없다. 국가 생존이 걸린 과학기술에 정면 승부를 걸고 통상외교 전략도 이에 맞춰 새로 짜야 할 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