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매입은 주주친화정책의 대표적 수단으로 꼽힌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유통 물량을 줄여 기존 주식의 가치를 높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재성 재료인 자사주 취득을 공시해놓고 계약한 금액만큼 매입하지 않는 사례가 빈번히 나타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상장사가 자사주를 취득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직접 취득과 증권사와의 신탁계약을 통해 간접적으로 사들이는 방법이다. 후자를 가리켜 ‘자사주취득신탁계약’이라고 한다. 공시 당시 계약한 금액만큼 취득하지 않아 소액주주가 피해 보는 사례는 대부분 신탁계약에서 발생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올 들어 자사주 매입 공시 당시 계약한 금액의 70%를 채우지 않고 자사주취득계약을 해지한 상장사가 24곳에 달했다. 전체 자사주신탁계약 해지 162건의 15%에 해당한다. 목표액의 90%에 미달한 상장사는 약 40곳으로 전체 공시의 25%에 육박한다.

이 중 공시만 해놓고 자사주를 거의 매입하지 않은 곳도 많았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두올은 지난달 24일 20억원 규모의 자사주취득신탁계약을 해지했다. 작년 9월 자사주 취득 공시 이후 매입한 금액은 4960만원으로 전체 계약 금액의 2.48%에 불과했다.

두올이 계약을 해지할 당시 주가는 급락하는 중이었다. 지난달 초 6800원을 넘었던 주가는 14일 현재 4900원대까지 떨어졌다. 소액주주들은 “경영진이 공시 당시 내세웠던 ‘주주가치 제고 및 주가 안정’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휴켐스는 지난달 2일 200억원 규모의 자사주취득계약을 해지했다. 휴켐스의 취득률은 0%로 한 푼도 자사주를 매입하지 않았다.

옵티시스도 10억원 가운데 1.89%만 취득한 뒤 계약을 해지했고, 텔레칩스는 30억원을 계약하고 14.71%만 매입했다. 이 밖에 쎄트렉아이, 휴네시온, 조선선재, 에스제이그룹, 아이원스, 삼화페인트공업 등이 계약 금액의 50%를 채우지 않고 자사주취득계약을 해지했다.

자사주취득신탁계약에서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직접 취득과 달리 공시 의무가 느슨하기 때문이다. 자사주를 직접 취득할 때는 일별 매수 수량, 주당 취득가액 등 근거를 구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하지만 신탁계약을 통하면 월별 취득 수량과 총 금액만 표시된다. 이마저도 취득상황보고서를 통해 사후적으로 알 수 있다.

자사주 취득 규정상 자사주신탁은 계약 체결일로부터 6개월이 지나면 해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공시를 통해 주가만 ‘반짝’ 올려놓고 실제로는 자사주를 매입하지 않는 상장사도 자주 나타난다. 많은 소액주주가 신탁계약 기간 자사주가 매입될 것으로 기대하고 들어오지만, 실제로는 매입이 이뤄지지 않고 주가가 하락해 손해를 보는 일이흔하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